• 최종편집 2023-11-08(수)
 

판사 무용론      


      

최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있는 직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는 미래가 불과 30년 이내라고 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요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대부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자동화에 기인한다.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한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측면은 부정적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어떤 면에서는 인간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는 세계 전체의 바람직한 합의가 없는 한, 자본주의의 과잉 생산체제-지구 자원의 낭비와 인간 노동력의 착취-로 인한 파괴는 계속될 것이고, 그만큼 인류의 종말은 가까워질 것이다.


인간의 직업 역시 자동화, 기계화에 의해 무수히 사라지게 될 터인데, 그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에 없어져도 좋고, 빨리 없어질수록 좋은 직업이 바로 ‘판사'다. ‘판사'라는 직업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행위를 ‘심판’ 하는 역할인데, 이 직업이 아직까지 유효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권위 있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 수준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해 매우 미개한 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엊그제 뉴스에서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이 중국의 프로바둑 기사와 대국을 한 결과가 나왔는데, 인공지능이 프로바둑기사를 이긴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이 개발한 것이므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인간 두뇌의 특정한 활동-바둑-을 이기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도한 두뇌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할 수는 있어도, 미래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특정한 능력-바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프로그램이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지능을 높여 나가는 방식인데, 인류의 상위 0.000000001%도 안 되는 초고도 두뇌를 가진 프로바둑기사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은 매우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인공지능이 그렇듯, 지능을 생성하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해당 분야-바둑, 법률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기본이다. 법률은 바둑보다 훨씬 단순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도 쉬운 분야여서,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판사를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법체계에서 경찰과 검사는 필요하겠지만 판사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것은, 판사의 역할이 매우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해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기능적이고 데이터에 근거한 결과를 내놓는 것은 컴퓨터가 가장 잘 하는 일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인간 판사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편견과 부족한 지식, 무능으로 인한 오판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권력자의 입김이 반영되는 경우에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언론이나 권력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판사는 보수적이고, 보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으며,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인간이 기계에게 판결을 받다니! 하면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률 자체가 매우 딱딱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오히려 합리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완벽하게 구축하고, 그 안에서 모든 판례를 분석해 내놓는 인공지능의 결과가 훨씬 합리적이고 보편적이며 논리적이다.


‘심판관’은 고대 제사장의 역할에서 시작되었으며, 제사장은 무당이었다. 그들의 출현은 인류가 농경시대로 들어서면서 잉여생산물이 확보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잉여생산으로 다양한 기능의 직업군이 생길 수 있었고, 신과 가장 가까운 무당은 제사장이 되어 지배계급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판사’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법률을 토대로 인간의 행위를 판단한다. 법률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 사회질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보수적인 내용을 규정한 것이고, 법률에 규정하지 않은 모든 행위는 자유롭고, 처벌받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법률이 복잡하고, 사회의 구성원을 얽매는 내용이 많을수록 판사의 역할은 중요해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인민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합하는 기재가 되는 것이다. 푸코의 말처럼, 인민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진짜 감옥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한 왜곡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은 단순하고 적을수록 좋지만,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럴 가능성은 적어졌다. 복잡한 법률을 판단하는 데 있어 인간 판사의 능력보다는 인공지능의 판단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컴퓨터는 인간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큰 데이터에서 나오는 분석과 결과는 인간 판사가 내리는 결론보다 당연히 훨씬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판사가 사라진 법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조서는 컴퓨터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하고, 판결은 컴퓨터가 출력한 문서로 받아보게 될 것이다. 판사의 권위 따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어야 한다. * 2016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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