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6(일)
 

002-내 친구


친구는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이럴 만큼 가까운 친구가 내 삶에 있었던가를 물어본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은 어려서 헤어졌고, 학교에서는 한 반에 68명이나 되어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국민학교 5학년일 때, 우리 학급에 한 아이가 전학왔다. 그 아이는 키가 컸고, 골격과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어떤 계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친구와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는 우리집에 놀러와 엄마가 만들어 준 찐빵을 맛있게 먹었다. 그의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도화동 꼭대기였고, 우리집은 같은 도화동이었지만 학교에서 조금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놀았고, 서로 의지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마포중학교에 진학했지만, 나는 그 무렵 유래 없는 홍수에 우리집이 물에 잠겨 결국 누나가 살고 있던 시흥으로 이사하면서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이사하고 곧바로 나와 동생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14살부터 소년노동자로 살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가기는 했어도 한달에 한두번은 만났다. 친구는 학생으로, 나는 노동자로 삶의 배경이 달라지고, 물리적 거리도 멀어지면서 우리는 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쌓았다.

내가 공장노동자에서 건설노동자로 전국을 떠돌며 현장 생활을 할 때, 친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대우그룹 계열사에 취업을 한 다음 아주대학교를 다녔다. 아주대학교가 당시 대우그룹 계열이어서 대우의 노동자들은 야간에 대학을 다닐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나는 그 무렵, 지방을 전전하며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고, 서울 현장에서 일하다, 운좋게 독서회를 알게 되었다. 독서회는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계기였다. 그곳에서 훌륭한 선배들을 만났고, 검정고시를 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도 그 선배들을 통해서였다.

우리가 가는 길은 국민학교 졸업 이후 갈라졌지만, 우리는 서로 소식을 끊지 않았고, 주로 편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직장에 얼마간 다니다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때 공군 사병은 36개월 근무였고, 나 역시 현역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복무했다. 그때 공군 현역병이던 친구가 일부러 화천까지 면회를 오기도 했다.

그는 군복무가 끝나고 다시 원래 다니던 회사에 다니며 대학 공부도 계속했다. 그 사이 나도 1984년에 군복무를 마치고 당장 일을 해야 해서 구로공단에 있는 공장엘 다녔다. 그 무렵에는 독서회도 가끔 나갔고, 대학 다니는 선배들과 함께 사회과학 공부도 했다. 

잡지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글쓰고 책만드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공장은 열네 살 때 잠깐 다니고, 절대 다시는 공장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결국 노동조합은 만들지 못했고, 나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공장을 나왔다.

독서회에서 알게 된 형이 출판사를 차렸고, 나는 그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무렵 산본 신도시 아파트의 공모 청약에서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당첨되었다. 내 친구가 사는 곳도 산본이어서 꽤 기분 좋았지만, 1990년, 어느 날, 친구가 기숙사 창문으로 들어가려다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상 못한 충격이어서 지금도 그때가 생생한데, 나는 그때 친구와 함께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 추락사로 처리되었고, 시골의 어느 땅에 묻혔다.

우리 둘은 전역하고 강화도를 2박3일 동안 걸었다. 텐트 하나와 배낭만 가지고, 강화도를 크게 한바퀴 걸으며 잠은 길가에 텐트를 치거나 교회 안에서 잤다. 우연이지만, 사고가 나기 전, 그는 나에게 자기 고민을 이야기했다. 썩 마음데 들지 않는 여성이 있다고. 어떻게 끝을 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제 그 친구의 나이만큼을 더 살았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땅벌의 침에 여러 번 쏘여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이 어떤 느낌인지 분명히 느꼈다. 살면서 여러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지만, 내 친구의 죽음은 첫 번째 죽음이자 가장 강렬한 죽음이었다. 내 삶에서 유일한 친구였던 그가 세상을 떠나고, 이후 그만큼 가까운 친구는 군대 동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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