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19금 마리아

 

나귀를 끌고 하루 거리에 있는 아풀라에서 돌아온 요셉이 창고에 목공 도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못보던 어린아이가 찾아왔다. 

요아킴이 보자고 전하랍니다.

그러잖아도 보름이나 나사렛을 떠나 있어서 돌아오는대로 곧 장인이 될 요아킴을 찾아갈 생각이었던 요셉은 일부러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 보자고 한 것이 의아했다. 요아킴은 점잖은 사람으로, 그의 딸과 혼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요셉은 내심 반가웠다.

창고 정리를 마치고,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은 뒤, 빵 한덩이를 가지고 요아킴의 집으로 향했다. 요아킴은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으로, 수십 마리의 말과 수레를 가지고 사람을 부려 나사렛은 물론 멀리 다마스커스, 예루살렘, 베르세바, 텔아비브까지 다니며 교역을 하는 상인이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없는 것을 두고 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요아킴 어르신, 평안하셨습니까.

요셉이 집안으로 들어서 인사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요아킴이 반갑게 일어났다.

어서오게. 이번에는 어디에서 일하고 왔나?

요아킴이 요셉을 반대편 소파로 안내하며 물었다.

네, 아풀라에서 다르한 씨 마굿간을 지었습니다. 이번에 말을 두 마리 더 샀는데, 마굿간이 좁아서 옆으로 늘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요아킴은 요셉의 말을 들으며 그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요셉은 요아킴이 따라주는 물을 마셨다. 물이 달고 맛있었다. 요셉은 낡은 옷을 입었지만 체격이 좋고, 근육이 발달했다. 그가 목수로 일하면서 단련된 단단하고 구릿빛으로 반들거리는 갈색의 피부를 가진 것이 보기 좋았다.

마을에서 목수 요셉은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가난한 목수였지만 요아킴이 자기 딸과 혼인시키기로 작정한 까닭이 그 이유였다.

요셉이 말을 끝내고 잠시 말이 끊겼다. 요아킴은 바닥을 바라보다 무겁게 고개를 들고 요셉을 바라봤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요셉은 내심 혼인에 관해 이야기할 것으로 짐작했다.

마리아가 임신했네.

요아킴의 말을 듣고 요셉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네에게 숨길 수 없는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딸을 바르게 살피지 못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으니, 나를 원망하게. 자네 얼굴을 볼 면목이 없네. 

요아킴은 요셉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요셉은 당황해서 요아킴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황한 요셉은 마음 속에서 분노와 의아함이 들끓는 걸 참으며 물었다.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는 아시나요?

요아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요아킴이야말로 요셉보다 더한 마음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이고, 애지중지 기른 고명딸이어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은 아내 안나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요아킴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제가 마리아와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요셉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자네도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파혼을 하겠네. 죄많은 딸을 둔 애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면목 없을 뿐이네.

요셉은 안채로 들어가 마리아가 지내는 작지만 깨끗한 방 앞에서 마리아를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안나가 나왔다. 

어서오게. 자네가 올 줄 알고 있었네. 지금은 자네가 몹시 화가 났겠지만, 마리아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길 바라네. 

안나가 바깥채로 나가고, 요셉이 마리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마리아는 양털로 짠 러그 위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로 배를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버님에게 말씀들었소. 어찌된 일인지 내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요셉이 마리아를 보며 물었다. 마리아는 요셉을 잠깐 바라보고 다시 눈을 아래로 향했다.

거기 좀 앉으세요.

마리아가 말했고, 요셉은 마리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실내는 시원했다.

당신이 나와 혼인하지 않아도 좋아요. 나도 팔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혼인하고 싶지 않고요. 내가 임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가 누구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이 파혼하겠다면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은 끝나는 것이고, 나와 혼인하겠다면 내가 임신한 것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줘요.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겠어요.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처죽여도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요셉의 생각은 달랐다. 게다가 요아킴은 마리아와 혼인하면 지참금을 넉넉하게 주겠노라고 귀뜸했다. 요셉은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지참금이 필요했다.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를 잘 하기 바라오. 

요셉은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날이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할 때, 요셉은 당나귀에 마리아를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새집을 짓는 일을 시작해서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야 한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면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 두려워서 멀리 떨어진 베를레헴으로 갈 것을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요셉과 다른 목수들 몇이 합류해 두 달 정도 집을 짓기로 했다.

요셉이 간단한 살림도구를 수레에 싣고, 양털로 짠 담요를 두른 마리아를 태우고 천천히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을 지날 때 마리아가 진통을 시작했다. 하늘은 흐리고, 눈발이 조금 휘날리고 있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몸을 풀 장소를 찾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고, 당나귀의 발걸음은 느렸다. 하는 수 없이 요셉은 길가에 있는 마굿간 앞에 당나귀를 세우고, 마리아를 부축해 마굿간의 짚더미 위에 눕혔다. 진통을 하던 마리아는 힘겹게 아이를 낳았는데, 쌍동이였다. 딸이 먼저 나왔고, 잠시 뒤에 아들이 나왔다. 요셉은 아이들을 받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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