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노인의 날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하다 오늘이 ’노인의 날‘인 걸 알았다. ’노인의 날‘이지만 특별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인들이 각양각색의 옷과 장신구를 하고 거리를 행진한다든가, 지역별로 노인이 주인되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를 연다든가 하는 행사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노인의 날‘을 제정했겠으나, 실속도, 형식도 보이지 않는 이런 날을 왜 제정했는지 의아하다.

한국도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노인 인구가 청년, 어린이 인구보다 더 많아지는 역피라미드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노인의 질적 구성이다. 이렇게 말하면 듣는 노인들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노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노인의 정치, 이념적 성향의 분류는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동하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노인은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분단, 군사쿠데타를 모두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세대다. 아직 노인이라고 말하기 이른 내 세대(50대)만 해도 저 모든 경험을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군사쿠데타를 두 개나 겪었고, 어린 시절을 독재사회에서 자랐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와 함께 병영문화, 일본 제국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격심한 남녀차별과 가부장의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우리 세대의 남성들도 무지와 미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하물려 우리 부모 세대인 지금의 노인들을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인 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비록 간접 경험일지라도 다양한 정보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노인 세대가 ’꼰대‘라고 멸칭을 당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이다. 즉, 스스로의 동굴 속에 갇혀 바깥에서 비추는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미개인인 것이다.

노인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도 분명 있다. 내 주위에도 얼마 전 돌아가신 어르신은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셨는데,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일상에서는 인자하고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분이셨다. 우리 뒷집 사시는 최교수님도 보수적이지만 마음이 열려 있고, 늘 대화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실수한 것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멋진 분이시다. 

나는 지역의 일을 하면서 노인들을 자주 만나는데, 내가 만나는 노인들은 보수적이기는 해도 젊은 사람과 말이 통하는, 생각이 유연한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소위 ’태극기 부대‘의 주류를 이루는 노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정치적 확신에서 오는 자발적 행동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고립되어 마땅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기에 유일하게 받아주는 곳이 태극기 부대여서 그런지 궁금하다.

노인이 된다는 건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늙어가고 결국 죽지만, 몸은 비록 늙어가도 정신은 늘 청년처럼 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되면 삶의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도 젊어서부터 그런 삶을 지향한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일 뿐, 배우지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노인은 젊었을 때 쓰레기였던 인간이 다만 늙은 쓰레기가 될 뿐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 무지하고, 가난한 노인들은 정부가 보살피고 돌봐야 할 대상이다. 노인은 젊어서 열심히 살았고, 그들의 노동이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인이 벼슬은 아니다. 지하철도 무료, 노약자석도 지정, 거의 모든 공공 시설의 입장료도 무료로 노인을 우대하는 정책은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런 무료 정책을 좋아하겠지만, 올바른 생각을 하는 노인이라면, 자신이 누리는 그 무료의 혜택이 자식, 손자 세대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자신의 특혜를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옳은 태도다.

정부는 노인에게 생활비도 안 되는 연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지원하면서, 노인들이 지하철 요금을 비롯해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하던 시설에 대해 정당하게 할인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이 되어서 자존심과 자부심조차 내팽개치고 무조건 노인이니까 무료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노인 세대가 매우 고생을 많이 한 세대니까, 이제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노인 세대에게 고생을 떠맡기거나 떠넘기지 않았다. 노인들이 살아온 세상이 그랬던 것 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극심한 실업, 취업 문제에 대해 노인들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노인 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세대간 갈등은 더 격렬해질 것이고, 노인들이 존경받을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오히려 지금 노인은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고 경멸당하고,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태극기 부대‘의 노인들 아니던가. 노인이 앞장서서 양보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젊은 세대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취급을 당하는 것은 필연이다.

내가 속한 세대도 머지 않아 노인 세대에 편입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 불과 십여년 남았다. 우리가 노인이 되면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임산부에게 쌍욕을 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패륜을 저지르는 그런 천박하고 양아치 같은 늙은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문화 생활을 좀 더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고,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뒷집 최교수님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혼자서 어린이 놀이터에 나가 잡초를 뽑는 노인이 되고 싶다. 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하게 일상의 평안함을 만들어 가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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