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혐오 감정의 스펙트럼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특정 집단을 혐오하게 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그것을 의식할 수도 있고,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보면 '혐오하다'는 '미워하고 꺼리다' 또는 '싫어하고 미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 사람(개인)은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집단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혐오 감정을 그 대상자에게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혐오 감정의 시작은 '나와 다르다'에서 나온다. 이때 '나와 다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말한다. 가치관, 철학,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의 세계관은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되는데, 올바른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회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감정적 혐오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혐오 감정은 다분히 주관적(나와 다름)이고 감정적(기분나쁘다)인 멘탈을 바닥에 깔고 있으므로, 보통의 지식인이라면 이런 낮은 단계의 혐오 감정에 동의하거나 감정이입 하지는 않는다.


혐오 감정은 또한 상대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면, 혐오의 대상자 역시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문제는, 기득권(다수)과 소수자의 사이에 혐오 감정이 발생할 때, 지식인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소위 '태극기부대'라고 하는 극우세력이 있다. 이들은 소수집단이지만 매우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극우들은 세계적으로도 혐오의 대상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확신하는 세계관이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몰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소수이건 다수이건 상관 없이, 그들은 올바르지 못한 역사, 정치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숫자로는 남성과 여성은 지구에서 거의 절반씩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며 여성 개인이든, 사회속 여성이든, 한 가정의 여성이든 차별받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여성은 숫자와 관계 없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한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마초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은 남성에게 끊임없이 혐오대상자가 된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흐름과 동일하며, 폭력의 대상을 약자에게 돌리는 체제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이해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은 가해자이며,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도, 경계도 없으므로 남성 일반은 여성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남성 혐오'는 정당하며,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워마드'와 같은 패륜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접어두자.


여기 게이나 레즈비언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적어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자기 앞에 있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혐오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가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천부의 인권을 가진 인간인 이상, 그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혐오하거나 비웃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성애자가 다수인 세상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그들의 성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삼아 혐오하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으며, 반감을 드러내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고해서, 성소수자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패륜 페미니즘의 행동이 오히려 정당하고 건강한 여성운동을 파괴하는 극우적 행동이라는 것을 지적했지만, 성소수자들이 보여주는 일탈-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골적인 성 묘사-을 보면서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혐오 감정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며, 그들의 성적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벌이는 퀴어 퍼레이드가 보기 싫을 수 있는 것이다. 대낮에 음란한 외모와 행동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성소수자가 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와 주장에 동조, 동의해야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극우 집단의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 개개인의 성향을 들여다보면서 극우 집단의 몰역사, 반사회성을 비난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선량한 사람이 많겠지만, 더러는 사악하고 야비하며 폭력적인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관계 없이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성향의 다양성에 비추어 개인의 호불호를 판단한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 성소수자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그들의 인권은 물론이고-그들이 보여주는 '행위'가 불편한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동성애자 연락처를 적어 놓는 것이나, 화장실 벽에 구멍을 내서 그 구멍을 통해 동성애를 하는 짓이 '당연'하다고 보여지는가 말이다. 보기에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그걸 말하는 것이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이성애자와 성소수자의 차이이고 간극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성소수자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감정도 없다. 그냥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할 뿐이다. 내가 '홍석천'에 대해 갖는 감정이 보통의 남성을 보는 감정과 똑같은 것처럼. 다만 그들이 집단으로 보여주는 특정한 '행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고,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말조차도 '혐오'라고 한다면, 나는 지극히 당연하게 '혐오하는 사람'이 될 용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소수자(그것이 성이든 장애든)'에 대한 배려나 옹호도 '혐오'라고 말한다. 즉, 어떠한 비교도 '혐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인 나는(그리고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해 어떠한 '태도'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자신들이 '소수자'라고 강조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핍박과 억압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옹호하고, 배려하려는 사람들(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 여기서는 이성애자로만 국한하자)이 정작 지지, 배려, 옹호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수자를 차별한다고 하고, 성소수자가 하는 특정 '행위'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혐오'라고 주장할 때, 과연 누가 '소수자'의 입장에 설 것인지 의문이다. 극단적 페미니즘이 오히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극단적 입장은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성애자들로 하여금 경계를 하게 만들고, 심하게는 진짜 성소수자를 '혐오'하게 만든다. 적과 동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천박한 인식으로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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