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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석 피디의 의도
    나영석 피디의 의도 -스페인하숙을 보고 집에 텔레비전 없이 지낸 시간이 15년이다. 여기 집을 짓고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아예 텔레비전을 들여놓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무엇보다 광고가 너무 많아서 두 가지 면에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현재 텔레비전에서 편성해 방송하는 내용들의 99.9%는 안 봐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내용일 뿐아니라, 오히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텔레비전 방송의 편성은 사회의 체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의 숫자는 많지만, 거기에서 방송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잡담을 하거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밥을 먹거나 여행을 한다. 그리고 광고를 한다. 시청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리모콘으로 어느 방송국을 선택해도 광고를 피할 수 없다. 홈쇼핑 방송은 마치 일반 방송처럼 상품 판매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방송하고, 사람들은 상업광고 방송을 보면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누른다.텔레비전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태도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할 수 있는 행위는 무언가를 먹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뜨개질은 할 수 있지만, 생각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는 못한다.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정보가 머리를 채우면, 다른 정보를 받아들일 여유가 사라진다. 뇌는 그 정보의 질을 판단하지 못한다. 정보가 고급인지, 쓰레기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이성'인데, '이성'의 발달은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결국 텔레비전의 대부분 쓰레기같은 정보가 뇌를 통해 들어오면, 뇌는 그것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저장과 삭제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니, 쓰레기 정보가 들어가면, 그가 알게 되는 정보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텔레비전 대신 그 시간만큼 책-당연히 좋은 책-을 읽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1인당 독서량이 1년에 한 권이 채 안된다는 통계가 있는 걸 보면, 한국사람 대부분은 책을 읽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기는데, 이번에는 '스페인 하숙'이다. 나영석 피디가 예전에 만들었던 일련의 프로그램들-삼시세끼, 윤식당-을 봤는데, 이 프로그램 역시 그가 만들었다. 나영석 피디의 이 작품들은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르 면이 있다. 나영석 피디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그건 나중으로 미루고, '스페인 하숙'이 기존의 '삼시세끼'와 '윤식당'을 콜라보한 것이라는 세간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삼시세끼'의 성공은 프로그램 포맷이 신선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의 찰떡궁합이 빚어낸 환상의 조합 때문이었다. '스페인 하숙' 역시 차승원과 유해진의 콤비가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차승원이 만드는 요리와 유해진의 설비가 결합했으며,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부부를 연상케 하는데, 이는 다시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차승원이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의 관행에 따르면 '여성' 또는 '주부'의 역할을 맡는다. 반대로 유해진은 주로 바깥 일을 하면서 '남성'의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남성이기 때문에 동성의 관계 즉 성소수자들의 역할 분담 같은 느낌도 주게 된다. 이것은 나영석 피디나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리얼리티 방송을 분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스페인 하숙'에서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요리와 설비가 내용의 핵심을 이루지만, 하숙집 있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것은 단지 순례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숙을 하겠다는 의도에서 확장해, '길을 떠나 낯선 곳에 서 있고자 하는 사람들 로망'이라는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기획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방송은 그런 많은 사람의 욕망을 반영하고, 상품(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판매(방송)한다. 떠나는 것에 대한 로망과 함께, 떠났을 때 생기는 향수병과 귀향의 욕망 또한 만만치 않으며, 사람은 이 이중의 감정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여기에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음식이 등장하거나, 낯선 사람들의 낯선 음식에 관한 반응은 그 음식에 익숙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영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선정적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에 담긴 시대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사회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사회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는 '마약'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뉴스나 여론은 분명 '마약'이 사회에 해로운 물건이고,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규정해 인신을 구속한다. 지금까지 마약은 부르주아 세계는 물론이고 서민의 삶에도 깊숙히 침투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마약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현대 이전에는 주로 '진통제'로 쓰였기에 마약이 큰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마약은 천연재료에서 추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학물질로 제조하면서 종류와 양이 급격히 늘어났다. 마약은 범죄집단에게 가장 큰 부의 근원이 되었다. 마약이 사람들 사이로 흘러들어가면서, 마약은 사람들의 정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범죄집단은 과거에 총과 칼 같은 무기로 자신들이 원하는 돈을 빼았앗지만, 이제는 마약으로 더 쉽고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마약 공급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마약 카르텔의 힘이 그 사회의 공권력을 능가할 정도가 되고, 마약 범죄집단을 소탕하려고 내전 수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약은 '적당히 즐기는' 수준으로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약은 반드시 중독을 일으킨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처음 마약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의지였겠지만-강제로 또는 모른 채 마약중독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중독이 된 다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 의견이다. 마약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도 끊임없이 유통되는 것은 그것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요를 만들어 내는 범죄집단의 의지와 의도 때문이다. 마약을 생산, 유통, 판매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마약은 일반 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즉,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생필품의 가격은 정부가 적절하게 통제하고, 경쟁의 원리에 의해 가격이 폭등할 확률이 매우 낮다. 하지만 마약은 'All or Nothing'이다. 마약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모 없는 물건이지만, 마약 중독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 반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마약의 가격은 필요한 사람에게 무한대의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마약을 공급하는 쪽에서는 초기 투자를 통해 중독자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일단 중독이 되면 반대로 중독자가 공급자에게 매달리는 현상을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법률은 마약의 제조, 유통, 공급,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그것이 불법일 경우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만큼 마약으로 인한 사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 '마약'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약김밥' '마약베개' '마약매트리스' '마약국수' 등 마약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물건이나 음식이 더 맛있거나 훌륭한 제품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광고라고 보기에는 몹시 위험한 현상이다. '마약'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면, 자라나는 세대는 마약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고, 마약으로 큰 돈을 버는 범죄집단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며, 마약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어떤 음식이나 물건 앞에 '마약'을 붙이는 순간, 그 광고는 거짓, 과장 광고에 해당한다. 그 음식이나 물건에 진짜 '마약'이 들어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거짓 광고한 것이고, 사회에서 범죄로 규정한 마약을 '좋은 것'으로 포장한 왜곡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마약을 앞에 붙이는 단어를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에서 출연하는 사람들이 종종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그들의 언행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별 생각 없이 말을 한다는 걸 반증한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라도 방송에서는 잘못된 언행을 바로 잡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해야 하는데도 방송국의 관련자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경우를 보기 드물다. 언어(말과 글)는 무의식을 반영한다. '마약00'을 별 생각 없이 쓰는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서 마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각종 광고에서 '마약00'은 이윤을 위한 업자들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의도해서 드러내는 것이므로, 정부는 이런 광고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 방송과 언론에서는 '마약00'을 쓰는 출연자를 제재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며, 마약의 불법성, 중독성, 거대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에서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아주 작은 틈으로 시작해 댐이 붕괴하듯, 마약을 긍정으로 소비하는 단어가 마약 중독 사회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나친 걱정이라고? 그러면 좋겠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3
  • 나는 누굴까
    나 이 글을 쓰는 나는 사회적 기준에서 평범, 평균보다 낮은 정도의 수준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고 평균의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부족하고 어리석게 살았다. 그 기준을 두고 말하자면 꽤나 복잡하겠지만, 경제적인 면, 학벌이나 인맥 등과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학력도 보잘 것 없고, 가난하게 자랐고, 그래서 사회의 인맥도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은 2003년 지금 살고 있는 시골로 내려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래서 평균 이하의 내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거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체로 봐서는 평균 이하지만 한두 가지는 평균보다 조금 웃도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글도 쓰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또 말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등 주위 사람이라고. ‘나’의 본모습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는 나를 주관으로 보고 있고, 주위 사람은 나를 객관으로 보고 있다. 나를 바라보며 해석하는 것은 나 자신이거나 주위 사람이거나 모두 정확하게 보겠지만 일부만을 보고 있을 것이다. 50년 넘게 살다보니 내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이 첫 번째 인식이고, ‘나’의 존재에 대한 이중성, 불명확성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인식이다. 내가 ‘나’라는 것은 알겠고,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잘 하는 것, 못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의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내용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전혀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내 경험이나 생각으로 미루어, 사람들은 저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거나,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하기 난감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두려운, 거북한, 자존심 상하는 내용이기도 할 것이고, 말을 꺼내본들 다른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절박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말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유별나고 중뿔나게 고민과 갈등과 속앓이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유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보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의식은 모두 유치하고 가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저마다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모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치가 있다고 해서 모두 알곡처럼 쓸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듯이 꼭 필요한 사람, 있으면 좋은 사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 필요 없는 사람 등으로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인간을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므로 사람의 가치를 낮게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만, 어떤 사회에서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도 유형이 다양한데,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범죄자부터 단순한 잉여 인간까지 ‘쓸모없는’ 인간들은 필연으로 생기기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지만, ‘인간(人間)’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나이 들어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변한다. 나이에 따라 외모가 바뀌듯이,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눈으로 보는 사물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판단과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고, 늘 회의(懷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스무 살 중반에 시작한 공부로 인해 내 삶의 전반기와 후반기가 분명하게 갈리는 경험을 했다. 삶의 전반기가 유아에서 청소년의 시기였다면 후반기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첫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 단계가 서른 중반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얻은 것이라고 하겠다. 작은 단계로 나누면 더 많아지겠지만,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끊임없이 어리석음을 깨닫는, 어리석은 자신을 돌이키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다짐하는 시간들이었다. 나이가 많아진다고 저절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력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현명하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상태로 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관없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이 들어도 어리석고 한심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개인의 삶이 높은 문화 수준을 영위하며, 지성과 예술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걱정하지 않고 지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의료, 교육, 주거가 그것이다. 몸이 아프면 누구나 걱정없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입원할 수 있어야 하고, 4살부터 대학까지, 또는 평생 교육까지 입학금,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 은행빚을 얻어 쓰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도 없어야 한다. 말하기 쉬워서 세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 세 가지를 해결하려면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즉, 현재의 착취구조형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행복은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글쎄...’하면서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잃을 것이 전혀 없는 가난한 사람들도 선뜻 옳다고 말하지 못한다. 너무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쇄뇌되어 왔기 때문에, 행복한 조건들이 눈앞에 있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고 있어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오면,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욕망 덩어리의 인간이자,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존재다. ‘개인’의 자유와 결정과 책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수의 사람들이 부자로 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난하게 사는, 공빈공락共貧共樂의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불편한 까닭
    불편한 까닭 '막노동 부모를 둔 아나운서 딸'이라는 제목으로 공유되는 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물론 나도 읽었다. 사람들은 이 글에 감동했다면서 공유하고, 글쓴이를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왜일까. 여성이 아나운서가 된다는 건,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전문직으로 사회에서 일하는 건 아나운서 뿐아니라 훨씬 폭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특히 도드라지는 여성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자란 자신(여성)이 '용'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그것이 막노동을 하는 부모의 덕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 한국의 전통 이데올로기인 유교적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태도인데, 왜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걸까. 아나운서가 된 여성은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이 배우지 못한 분이고, 평생을 막노동을 하며 자식을 키우셨다고 했다. 그런 부모를 보며 여성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공부하고, 집안일을 하고,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좋은 직업과 신분의 상승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했노라고 말한다. 자신이 아나운서가 되었을 때, 주변의 동료들 집안이 대개 의사, 교수의 부모를 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부모 직업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말한다. 글의 내용에서 흠잡을 부분은 없다. 문제는 이 글을 쓴 의도에 있다.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의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전직 아나운서 여성은 자신을 키운 부모님을 고맙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글에서 읽히는건, 자신의 부모, 그것도 배우지 못한 부모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스스로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지칭할 때, 그건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왜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의 부모가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자신이 그 부모의 삶에서 많이 벗어나 '용'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도였을까. 자신의 부모는 비록 지금도 '개천'에 있지만, 자신은 그 '개천'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용'이 되어 더러운 개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니, 그런 우월감을 드러내고 싶어서였을까.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지금도 무수히 많은 부모들이 '개천'에서 살고 있고, 그 분들은 여전히 한글도 잘 모르고, 말하고, 글쓰기를 잘 못한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산나물을 채취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그 분들에게는 그런 삶이 너무나 당연해서 자신들이 '개천'에서 사는 줄 조차 인식,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며 사는 삶이 '개천'에서 사는 삶이라는 규정은 누가 하는 걸까. 이 여성은 너무도 도식적이고 고정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개천'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삶에서는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포함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부모가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들이지만, 나는 내 부모가 '개천'에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학력과 경제력을 기준으로 '개천'과 '용'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그 여성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흑백으로만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세상-자본주의 사회-이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그런 체제의 구조와 논리를 내면화하여, 자기 부모의 삶과 자기의 삶을 구분 짓고, '개천'과 '용'으로 나누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거의 본능적으로 그 여성의 글이 불편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글은 반듯하고 올바른 전통사회의 이념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수의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민중' 그 자체인 부모-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대상화하고 그 분들의 삶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부모부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지인, 친구, 친척들의 부모님 역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분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부모들 가운데 대부분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분들인데, 그들의 자식들은 거의 모두 부모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전직 아나운서 여성의 부모님만 특별한 경우도 아니고,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온 것이 이 여성뿐만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삶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미화'한 글이 불편한 건 나만 그런 걸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심석희 선수를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천재 쇼트트랙 선수'라는 극찬을 받은 심석희 선수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비인기종목 스포츠인 동계스포츠 쇼트트랙에서 뛰어난 재능과 실력으로 청년의 열정과 투혼을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얼음 위를 달리는 심석희 선수의 모습은 빠르고, 날카로우며, 부드럽고, 유연한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였습니다. 경쟁하는 선수를 앞지르며 가장 먼저 결승선에 도달할 때의 그 환희와 벅찬 감정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끼며 기뻐하고 환호했습니다. 엘리트 스포츠선수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심석희 선수는 여러 번 보여주었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했습니다.심석희 선수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의 팀워크와 동료애, 경쟁하는 팀과 선두를 다투는 전략과 전술의 흐름, 탁월한 기량으로 경쟁 선수를 앞지르며 달려나가는 놀라운 순발력은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심석희 선수가 지금까지 이룩한 수많은 신기록들은 나이 어린 선수가 해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고, 훌륭한 기록들입니다. 한국의 동계스포츠 쇼트트랙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졌지만, 심석희 선수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선수입니다.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청소년 올림픽, 주니어 세계선수권 등에서 금메달만 무려 21개를 획득했고, 지금도 여전히 기량이 성장하고 있는 놀라운 선수입니다. 심석희 선수는 한국의 보물입니다. 지금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이며, 미래의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니 심석희 선수. 앞으로도 한국의 빙상스포츠, 쇼트트랙의 미래를 위해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심석희 선수를 바라보며, 심석희 선수를 롤모델 삼아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 선수들을 위해 심석희 선수의 능력을 펼쳐주시기 바랍니다. 심석희 선수가 보여준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그동안 겪었던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세상은 모두 심석희 선수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심석희 선수의 아픔에 공감하며,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생각해보니, 심석희 선수는 제 아들보다 한 살이 많더군요. 심석희 선수처럼 훌륭하고 대견한 딸을 둔 부모님은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믓하고, 대견합니다. 심석희 선수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딸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딸입니다. 마음을 담아 응원합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19금 마리아
    19금 마리아 나귀를 끌고 하루 거리에 있는 아풀라에서 돌아온 요셉이 창고에 목공 도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못보던 어린아이가 찾아왔다. 요아킴이 보자고 전하랍니다. 그러잖아도 보름이나 나사렛을 떠나 있어서 돌아오는대로 곧 장인이 될 요아킴을 찾아갈 생각이었던 요셉은 일부러 심부름 하는 아이를 시켜 보자고 한 것이 의아했다. 요아킴은 점잖은 사람으로, 그의 딸과 혼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요셉은 내심 반가웠다. 창고 정리를 마치고, 우물에서 길어온 물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은 뒤, 빵 한덩이를 가지고 요아킴의 집으로 향했다. 요아킴은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으로, 수십 마리의 말과 수레를 가지고 사람을 부려 나사렛은 물론 멀리 다마스커스, 예루살렘, 베르세바, 텔아비브까지 다니며 교역을 하는 상인이었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없는 것을 두고 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요아킴 어르신, 평안하셨습니까. 요셉이 집안으로 들어서 인사하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요아킴이 반갑게 일어났다. 어서오게. 이번에는 어디에서 일하고 왔나? 요아킴이 요셉을 반대편 소파로 안내하며 물었다. 네, 아풀라에서 다르한 씨 마굿간을 지었습니다. 이번에 말을 두 마리 더 샀는데, 마굿간이 좁아서 옆으로 늘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요아킴은 요셉의 말을 들으며 그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요셉은 요아킴이 따라주는 물을 마셨다. 물이 달고 맛있었다. 요셉은 낡은 옷을 입었지만 체격이 좋고, 근육이 발달했다. 그가 목수로 일하면서 단련된 단단하고 구릿빛으로 반들거리는 갈색의 피부를 가진 것이 보기 좋았다. 마을에서 목수 요셉은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가난한 목수였지만 요아킴이 자기 딸과 혼인시키기로 작정한 까닭이 그 이유였다. 요셉이 말을 끝내고 잠시 말이 끊겼다. 요아킴은 바닥을 바라보다 무겁게 고개를 들고 요셉을 바라봤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요셉은 내심 혼인에 관해 이야기할 것으로 짐작했다. 마리아가 임신했네. 요아킴의 말을 듣고 요셉은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네에게 숨길 수 없는 일이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딸을 바르게 살피지 못한 책임은 모두 나에게 있으니, 나를 원망하게. 자네 얼굴을 볼 면목이 없네. 요아킴은 요셉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요셉은 당황해서 요아킴을 부축해 일으켰다. 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당황한 요셉은 마음 속에서 분노와 의아함이 들끓는 걸 참으며 물었다.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는 아시나요? 요아킴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요아킴이야말로 요셉보다 더한 마음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이고, 애지중지 기른 고명딸이어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은 아내 안나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요아킴은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제가 마리아와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요셉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자네도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자네가 원한다면 파혼을 하겠네. 죄많은 딸을 둔 애비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면목 없을 뿐이네. 요셉은 안채로 들어가 마리아가 지내는 작지만 깨끗한 방 앞에서 마리아를 불렀다. 그러자 안에서 안나가 나왔다. 어서오게. 자네가 올 줄 알고 있었네. 지금은 자네가 몹시 화가 났겠지만, 마리아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길 바라네. 안나가 바깥채로 나가고, 요셉이 마리아의 방으로 들어섰다. 마리아는 양털로 짠 러그 위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로 배를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버님에게 말씀들었소. 어찌된 일인지 내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요셉이 마리아를 보며 물었다. 마리아는 요셉을 잠깐 바라보고 다시 눈을 아래로 향했다. 거기 좀 앉으세요. 마리아가 말했고, 요셉은 마리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실내는 시원했다. 당신이 나와 혼인하지 않아도 좋아요. 나도 팔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혼인하고 싶지 않고요. 내가 임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가 누구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이 파혼하겠다면 그것으로 나와의 인연은 끝나는 것이고, 나와 혼인하겠다면 내가 임신한 것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아줘요.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변명은 하지 않겠어요.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처죽여도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요셉의 생각은 달랐다. 게다가 요아킴은 마리아와 혼인하면 지참금을 넉넉하게 주겠노라고 귀뜸했다. 요셉은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지참금이 필요했다.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를 잘 하기 바라오. 요셉은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두 달 뒤, 날이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할 때, 요셉은 당나귀에 마리아를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떠났다. 베들레헴에 새집을 짓는 일을 시작해서 그곳에서 한동안 지내야 한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면 소문이 퍼지게 될 것이 두려워서 멀리 떨어진 베를레헴으로 갈 것을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요셉은 베들레헴에서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요셉과 다른 목수들 몇이 합류해 두 달 정도 집을 짓기로 했다. 요셉이 간단한 살림도구를 수레에 싣고, 양털로 짠 담요를 두른 마리아를 태우고 천천히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을 지날 때 마리아가 진통을 시작했다. 하늘은 흐리고, 눈발이 조금 휘날리고 있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몸을 풀 장소를 찾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고, 당나귀의 발걸음은 느렸다. 하는 수 없이 요셉은 길가에 있는 마굿간 앞에 당나귀를 세우고, 마리아를 부축해 마굿간의 짚더미 위에 눕혔다. 진통을 하던 마리아는 힘겹게 아이를 낳았는데, 쌍동이였다. 딸이 먼저 나왔고, 잠시 뒤에 아들이 나왔다. 요셉은 아이들을 받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있다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있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 과학에서는 '차원'을 말한다. 1차원은 점, 2차원은 선, 3차원은 면, 4차원은 3차원에 시간을 더한 것이다. 인간은 분명 4차원을 살아가고 있지만, 4차원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3차원을 이해한다. 아주 어린아이도 3차원의 삶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즉 바닥을 걷고, 벽을 구분하며, 공간을 입체로 인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은 태어나서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 유전자로 물려받은 공감각 능력이고 본능으로 알고 있다. 반면, 작은 곤충을 보면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인간이 보기에 매우 단순하고 의미 없는 행동을 할 뿐이다. 곤충류는 사람이 얼마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뻔히 보인다. 인간은 곤충의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다. 같은 인간이라도 사람에게는 수준이 있다. 인간은 평등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존재'가 평등하다고 해서 개개인의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고, 바로 그 수준 차이 때문에 사회에 계층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층은 계급과는 다른 개념이고, 계급 사회에서도,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도 계층은 존재할 것이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계층에 속한 집단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준 낮은 인간'이란 개인을 말한다. 그리고 수준 낮은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 존재한다. '수준이 낮다'는 개념은 논리적, 과학적 근거가 있는 표현일까. '수준이 낮다'는 문장만으로도 여러 종류의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사회적 합의에 필요한 논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다. 천천히 질문을 따라가보자. 우선, '수준'의 개념과 정의는 무엇일까. '수준이 낮다'고 할 때, 당연히 수준이 높은 상대적 개념이 있을테고, 높고 낮은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수준'의 개념은 개인의 세계관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다시 '세계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즉 '세계관'은 무엇이며, 세계관에도 높고 낮은 것이 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가치관'은 개인의 주관적 성격이 강하므로 사회에서 합의한 기준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가치관보다 넓고 다양한 개념으로 개인의 사상을 규정하는 것이 '세계관'이라면, '수준'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은 그 사람의 출생부터 부모의 성향, 성장 과정, 교육의 정도, 살면서 겪은 다양하고 결정적 경험들에서 만들어진다. 단 한 사람도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수준이 높은 사람과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갈린다. 또한 수준 차이는 언제나 상대적 개념이어서, 사회에 존재하는 수준 낮은 사람들을 솎아내면, 다시 전체 집단에서 일정 부분의 수준 낮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 수준 낮은 인간이란, 바꿔 말하면 반민주, 비도덕, 비윤리적 인간이다. 즉 세계관이 건강하지 않은 인간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공동의 윤리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고, 정의보다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해서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인다. 세계관의 기준이 '나의 이익'에 있기 때문에 이들 수준 낮은 인간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친일매국을 해도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선택한다. 그들은 '양심'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수준이 낮은 인간은 싸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 본능은 자신의 생존이다.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 옹호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가장 철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수준 낮은 인간이 볼 때, 가장 위대한 인간형은 '자본가'다.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이념의 화신이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가이며,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다.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사람은 주어진 환경-자본주의 체제-을 절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공산주의 사회나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가장 열렬한 체제옹호자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루쉰이 말한 '아Q'와 닮은 유형이다. 이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권력-부패한 권력-의 냄새를 맡는 본능이 있다. 부패한 권력에 기대는 심리는 자신의 내부가 단단하지 못해서 스스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강한 힘에 의존하려는 이유 때문이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가난하게 자라서 배우지 못한 무지랭이 인민이 있고, 약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할 능력은 안 되는 어리석은 인민이 있고, 교육을 많이 받고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이지만, 뇌회로에 문제가 있어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민이 있고, 엘리트 집단의 일부는 자신이 반사회 범죄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철저하게 거짓말과 조작을 하는 인민이 있다. 가장 단순한 예로, 공중도덕을 지키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집단이 약속한 이 최소한의 규율 조차도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 바로 수준 낮은 인간인 것이다. 거리에서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행위는 분명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필요없는 사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낮은 수준은 적은 사회적 비용만 치루면 되지만, 지식과 권력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국가 재정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뿌리를 썩게 만들고, 사회의 줄기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다. 지난 9년간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바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악하고 저열하며, 야비한 공작과 탐욕으로 나라를 이렇게 망가뜨린 것을 확인했다. 수준 낮은 인간은 우물안 개구리와 같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가 고작 우물 위 동그란 하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굴 속에 사는 원시인들과 본질에서 같다. 그들은 외부의 충격에 공포를 느끼며, 자신과 다른 모든 것에 두려움을 갖고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무지가 곧 공포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수준 낮은 인간의 특성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지함은 학교 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수준이 낮다는 건 천박하다는 뜻이고, 천박함은 학교 교육과 아무 관련이 없다. 촛불이 만든 정부를 헐뜯고 모함하는 야당의 국회의원들, 이명박, 박근혜를 옹호하는 수구꼴통들, 정부보조금을 자기돈처럼 마음대로 쓰는, 정부보조금을 받는 사립기관의 기관장들, 하버드대학을 나온 어떤 인간, 방송국 기자로 인터뷰를 조작한 어떤 전 기자, 만화를 그리는 어떤 만화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헐뜨는 여자들 그리고 일베충들이 바로 수준이 낮은 천박한 것들이다. 문제는, 수준 낮은 인간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더 수준 낮은 인간을 국회에 보낸다는 것이다. 수준 낮은 인간들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발생하는 경로는 몇 가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 그것이 그의 탓은 아니지만, 뇌 활동이 부진하게 태어난 것이다. 이들은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태생적으로 지능과 사고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성장 과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 학대당한 사람의 일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일부에서 수준 낮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이 황폐한 것을 외부에서 충족하려 한다. 그것이 파괴적이고 공격적 성향으로 드러나며, 자연히 민주주의, 자유, 평화, 평등과 같은 개념에 적대감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이 폄훼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의도적으로 천박한 역할로 돌아서는 사람이 있다. 김문순대나 이재오, 변모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명예욕과 권력욕이 큰 사람이지만 그것을 충족할 방법을 정상의 방법으로 찾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반대의 길로 들어섰다. 민주주의가 힘들고 위대한 점은, 이런 수준 낮은 인간들까지 다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국가라면 이런 인간들은 쉽게 처리할 방법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존중한다. 그래서 국가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매우 낮아서, 개인당 지출하는 비용대 효율이 낮다. 수준 높은 시민이 수준 낮은 인간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이재명은 개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재명은 개혁의 리트머스 시험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화살을 막아내고 있다. '점'으로 대표되는 점부선, 점지영, 점용석 등의 합동 공격으로, 이것은 점부선이 '나는 이재명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떠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자발적이고 의도적으로 자기의 불륜 사실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 숨기려고 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드러내서 자기에게 특별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그렇다면 점부선은 자신이 이재명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것이 현재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간통죄가 사라졌으므로 간통으로 인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지만, 현직 경기도지사인 이재명지사가 점부선과 간통했다는 것이 드러나면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으로 결정타를 맞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점부선이 처음 그 주장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부인해 왔으며, 점부선이 내미는 지금까지의 주장과 증거자료들은 거짓과 가짜로 드러났다. 단 하나라도 간통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었다면 이재명지사는 이미 정치생명은 물론 인간 이재명으로도 끝장이 났을 것이다. 대단한 증거라도 있는 듯 떠벌이는 저 세 명의 점씨들은 온갖 추잡한 언행으로 이재명지사의 인격을 모욕하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재명지사를 싫어하거나 정치적 반대자들이 똥파리처럼 달라붙어 동조한다. 다른 방향에서,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문, 극문 세력들이 이재명지사를 공격한다. 그들은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지사가 문재인대통령을 비난하고, 심하게 공격해 인격적으로 모욕했다고 생각하고 주장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이재명지사의 언행이 정도를 지나쳤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올바르지 않은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재명지사는 이런 지난 날의 언행과 처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도 잘못했으며 부끄럽고, 후회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간 이재명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났다. 그는 언행이 가볍고, 말 실수를 할 때가 있으며, 스스로 후회할 행동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재명지사가 가진 몇 가지 단점들을 보완할 많은 장점이 있다. 그는 솔직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며,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거나, 행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는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썩은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척 하면서 이재명지사를 비난하고,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자들의 정체는 수구반동집단이며, 설령 진짜 문재인대통령 지지자라 해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이다. 지금 전선은 문재인대통령을 중심으로 개혁 집단과 자유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반동매국집단의 전쟁이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편에서 서로 총질을 해대는 자는, 같은 편이 아니라 적의 간첩이거나 적군이다. 다른 방면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날카롭지는 않아도 충격이 강하다. 가장 이윤에 민감한 재벌, 자본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재명지사가 아파트 가격 원가 공개를 비롯해 정부 입찰 담합, 페이퍼컴퍼니 단속 등 당장 경기도민에게 이익이 되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벌과 대기업, 토건호족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미 성남시장 때부터 해오던 이런 일련의 개혁을 경기도로 확대하는 것은 이재명의 정체성과 일치하며, 일관성 있는 추진이다. 그가 100만 성남시장에서 1300만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그의 업무의 중요도는 무려 13배가 더 커진 것이다. 그만큼 그가 움직이는 시간은 1시간이 무려 1300만 시간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있고, 중요한 자리다. 이재명을 비난하는 인간들 대부분은 스스로 썩었거나, 썩은 쓰레기들을 비호하거나, 이 사회가 지금처럼 계속 썩어 있기를 바라는 퇴행적이고, 부패한 인간들이다. 이재명의 존재 의미는 '개혁'에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그가 성남시장 때부터 일관하는 '개혁'을 부르짖고 있고, 개혁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고 외친다. 개혁은, 적폐를 청산하고, 합법과 상식이 통하는 투명한 사회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 가운데 기본인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기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원칙에 충실하고, 기본을 세우려는 이재명을 악의적으로 비난, 왜곡, 공격하는 자들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적폐세력이며, 민주주의의 적들이고, 수구반동매국노들이다. 이재명을 쓰러뜨리면 곧바로 문재인대통령에게 똑같은 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지금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장판교에 선 장비처럼, 몰려오는 적들을 혼자 막아내고 있다. 이재명 뒤에는 문재인대통령이 있으며, 문재인대통령 뒤에는 우리민족의 미래가 걸린 개혁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이 있다. 적들은 이재명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문재인대통령 뒤에 있는 개혁,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앞날이며, 우리 국민 대부분의 소망과 열망을 죽이는 가장 위험한 상황이며, 적폐세력이 노리는 궁극의 목적이다. 적폐세력, 수구반동매국집단이 벌이는 이 악랄한 선동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재명 경기도자사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비루한 인간
    비루한 인간 점심을 먹고, 문호리에 있는 단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 각자 자기가 알고 있는 기이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인간 유형이 떠올랐고, 그건 지금 사회에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정리했다. 한 인간이 있다. 50대 초반의 남성이다. 실업률이 높고 비정규직, 임시직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 중견 기업의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연봉은 1억원 정도로 높은 편이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서 어느 지방도시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상위 5%이내에 들어갈 만큼 꽤 부유한 사람이라고 인정할만하다. 여기에, 좋은 대학을 나왔고, 외모도 멀쩡해서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봐도 좋은데, 그는 50대에 미혼이다. 밥을 먹을 때는 값싼 식당을 주로 찾고, 공기밥을 공짜로 주는 식당에서 밥을 두 그릇씩 먹는다. 자동차는 소유하지 않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자동차로 쓰는 돈이 아까워서다. 그가 결혼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여자가 자신의 재산을 보고 결혼해서 결국 자기 재산을 뺐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가 가진 지식과 배경과 재산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는 무능하다.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는 의지도, 의욕도 없다. 그는 늘 업무에서 배재당하고, 좌천되어 지방으로 전전했으며, 회사가 좋아서 해고를 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정년까지 무능함으로 버틴다. 그가 받아가는 연봉이면 일을 아주 잘 하는 신입사원 세 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지만, 재산도 많은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 끝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또 한 인간이 있다. 그도 50대 초반의 남성인데, 강남에서 사채업을 하고 있다. 그가 주무르는 돈만 몇 백억 단위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빌딩만 여러 채가 있다. 이 정도면 누구나 그가 한국에서 상위 0.1%에 속하는 자본가이자 부르주아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의 첫 인상은 노숙자다. 싸구려 나일론 잠바(점퍼라는 단어도 고급해서 어울리지 않는다)를 걸치고, 바닥이 닳은 낡은 신발을 신고, 싸구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동차도 물론 없다. 그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앞에 말한 남자와 똑같다. 여자가 자기의 재산을 강탈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여자를 만나지도 않는다. 이 두 인간형은 매우 비슷하다. 두 사람은 물론 어떠한 관계도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가 두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두 사람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이런 인간 유형을 '비루한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비루한 인간은 무지하고 가난한 인간이 아니다. 위의 두 인간은 매우 부유하고, 경제적으로는 상위1% 안에 들어가는 인간이고, 대학을 나온(사채업자의 학력은 알 수 없다) 인간이지만, 그들에게서 나는 느낌은, 노숙자나 거지, 부랑자들에게서 나는 더럽고 역겨우며 구역질나는 냄새다. 즉, 이런 인간 유형은 천성적으로 비루한 인간으로 타고난 것이다. 나는 결정론을 믿지 않으므로 '천성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는 그가 태어나서 자랄 때의 성장 과정과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비루한 인간 유형 가운데 보통의 한국사람이라면(어린이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이명박이다. 이명박은 운이 좋아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비루한 인간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인데 비루한 인간이라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한국에서 재벌들을 보면, 마약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온갖 천박한 갑질을 하는 사건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자본가이긴 하지만, 그건 단지 자본을 많이 소유했다는 것일뿐, 그 자본가의 품성이 고결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비루한 인간의 반대는 고결한 인간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착각하는 것이, 돈이 많거나, 많이 배운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다는 것과 고결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무 관련이 없다. 아주 드물게 부르주아에게서 그런 자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건 훌륭한 배경과 환경이 그런 인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고결한 인간은 돈과 지식과 직접 관련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명박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근근이 자랐다. 그가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겪은 가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그가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풍요롭게 사용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나쁘지 않고, 그가 사회를 위해 돈을 쓴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이명박은 오로지 돈을 '모으기만' 했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돈에 환장하는' 집착은 정신적으로 심한 결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타인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즉 정서가 안정되고, 다른 사람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사랑'이 무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자랐다. 단지 가난 때문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가난해도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이 화목한 집안이 얼마나 많은가. 이명박은 4명이 개고기를 먹으러 가면 2인분을 주문해서 혼자 다 먹는다고 했다. 식탐 역시 돈을 탐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다. 그가 아주 적은 돈이라도 쓰지 않으려 하는 심리는, 악착같이 돈을 끌어모아야만 마음이 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모든 과정을 축재, 즉 돈을 모으는 데 쏟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쌓아놓으면서 마음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내면도 천박하다. 배움이 짧고, 평생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기 때문에 지식이 없고, 지식이 없으니 말하려는 내용이 없고, 사용하는 단어와 어휘가 적다. 그가 개신교도로 교회에 열심으로 출석해 기도를 한 것은, 그가 신의 존재나 종교의 깊이를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의 지식인이 모여서 나누는 잡담을 5분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무식한 인간이고, 특히 과학, 자연, 환경, 역사, 철학 등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지, 무식한 인간이다. 결국 이런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의 전형을 이룬다. 한국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비루한 인간'일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간이 '비루한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가들 가운데도 언론에 보도되어 알려진 것들만도 엄청 많지 않은가. 자식이 술집에서 싸웠다고 가죽장갑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자본가, 천박한 욕설과 말투로 고용한 사람들에게 생지랄을 떠는 자본가를 보라. 그들은 천성이 비루하고 천한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가운데 오히려 고귀한 인간들이 더 많다. 확률적으로도 그렇다. 자본가와 부르주아의 비율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지만, 노동자와 서민은 90%이기 때문이다. 고귀한 인간은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누군가 위험에 놓였을 때 서슴없이 도와주는 사람들, 자신의 이해와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 가진 것이 적어도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고귀한 사람들이다. 돈을 쌓아놓고도 쓸 줄 모르고,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자들이 비루한 인간이라면,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은 고귀한 인간이다. 자본주의가 사라져야 할 많은 이유 가운데 비루한 인간이 오로지 돈만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도 한몫을 한다. 이제 비루하고 천박한 인간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도록 재배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꽁뜨-꼰대의 최후
    꽁뜨-꼰대의 최후 출근시간이 지난 2호선 전철에는 서 있는 사람이 드물고,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보고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의 흔들림과 정차하고 출발하는 전철역에서의 안내방송이 규칙적으로 들릴 뿐, 전철 안은 조용했다. 전철이 사당역에 멈추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사람들이 전철에 올라타고, 문이 닫히고, 다시 전철이 움직였다. 조용한 공기가 찢어지듯 파열한 것은 전철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이도 어린 게 어른을 보면 일어나야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 있는 남자였고, 나이는 60대로 보였다. 그는 등산복 바지와 조끼를 입었고, 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었다. 검은색 선글래스를 쓰고 있어서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처진 입술, 더부룩한 수염, 꺼칠한 피부를 보면 그가 가난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앞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그 여학생은 갑자기 자신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강압적인 목소리와 태도로 서 있는 늙은 남자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부드럽던 전철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걱정과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단 말이야. 늙은 남자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그의 귀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학생은 그러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았고, 희미한 웃음을 띄면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보시죠. 여학생의 당돌하지만 똑부러지는 말에 늙은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몸짓이 보였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상체가 약간 뒤로 움직였다. 그건 전철의 흔들림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싸움에서 밀렸다는 반응일 수 있었다. 하지만 늙은 남자는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맞받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도리니까,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기본 예의이고, 상식이 아닌가. 늙은 남자는 자신의 논리적 주장에 스스로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 옆에 앉아 있던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학생은 동방예의지국의 전통과 예의범절로 공격하는 늙은 남자의 주장에 패배해 곧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학생은 조금의 흐트럼짐도 없이 늙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동방예의지국과 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제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직접적인 관련이 어디에 있는지 근거를 대보시죠. 이제는 자리에 앉을 거라고 기대했던 늙은 남자가 순간 휘청하는 느낌을 받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여자가 따박따박 말대꾸 하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수리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늙은 남자는 명치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너는 부모도 없냐.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이 앞에 있으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야지. 부모가 그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하라고 가르치던. 늙은 남자는 감정이 북받쳐서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제 전철 안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모를 수 없게 되었다. 늙은 남자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에 경멸과 짜증이 묻어 있다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여학생은 옆에 앉은 노인을 슬쩍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여학생이 졌다. 늙은 남자는 득의양양, 거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여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늙은 남자가 섰던 자리,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전철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여학생 옆에 앉았던 노인이 일어났다. 도착지가 되어 내리는 줄 알았던 노인은 조금 전 자리에 앉은 늙은 남자 앞에 섰다. 여학생은 노인이 일어난 자리, 늙은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고, 여학생의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은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발을 툭 찼다. 늙은 남자는 순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노인은 다시 말했다. 조용하게. 아니, 노인장 내리시는 거 아니셨나요. 늙은 남자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지만, 선글래스를 써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 시커먼 안경 벗어.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른 앞에서 까만 안경을 쓰고 있는 게 어른에 대한 예의야.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노인은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늙은 남자는 당황한 몸짓을 숨기지 못했지만, 노인의 말을 무시했다. 아니, 노인께서 왜 시비를 거십니까. 그냥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되잖아요. 내 맘이야. 선글라스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 새끼야.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철 안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점잖게 생긴 노인의 입에서 저런 거친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에이, 씨발, 늙었으면 곱게 늙을 것이지, 왜 시비를 걸고 그러는 거야. 늙은 남자는 이제 노인의 말에 반발하고, 물리적 대응을 각오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노인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르고 약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태극기가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상황은 곧 끝났다. 여학생이 다시 일어섰고, 노인은 자리에 앉았다. 늙은 남자는 득의만면, 자신이 이겼음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고 느끼는 순간, 눈앞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 날카로운 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여학생의 손바닥이 늙은 남자의 뺨을 풀스윙으로 때리고 허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장면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번 빠르고 강하게 반복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남자의 뺨은 이내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상황에 늙은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그 사이 이번에는 둔탁한 타격이 턱과 가슴에 연거푸 퍼부어졌다. 너무 빠르고 강한 타격이었고, 갑작스러워서 늙은 남자는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타격으로 인한 통증이 양쪽 뺨과 턱, 가슴에서 폭탄처럼 터지자 본능처럼 벌떡 일어나 여학생을 공격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날렵했고, 유연했으며, 부드러웠다. 그의 손과 발은 마치 춤을 추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늙은 남자는 온몸에 타격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늙은 남자는 자기가 이렇게 비참하게 처맞고 있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가 들고 있던 태극기가 찢어졌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19금 장화홍련
    19금 장화홍련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버지라는 새끼는 내가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고, 계모라는 쌍년은 나를 죽이려고 벌써 몇 번이나 음모를 꾸미고, 실행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겨우 살아남았어. 나를 죽이면 동생 홍련도 죽일 게 뻔하지. 이제, 저 쌍년과 그 아들 새끼를 죽일 거야. 계모년은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을 해서 애까지 낳았다고 음해했지. 쥐를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그걸 내가 낳은 아이라고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집안 망신을 시킨 나를 죽여야 한다고. 씨발년. 내가 순순히 당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동안 그렇게 당하면서도 참았던건, 홍련이 때문이었어. 불쌍한 홍련이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이 없거든. 계모년이 데려온 애새끼 장쇠라는 놈은 더럽게 못 생긴 데다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새끼로, 제 애미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따르는 놈이야. 그 새끼가 나를 강간하려고 했었고, 죽이려는 시도도 했지만, 다행히 옆집 할머니 때문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 공포에 떨면서도 관아에 고발할 수 없었던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지. 그때부터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은가락지를 국에 넣어서 색깔이 변하는지 확인하고 먹지. 계모년에게는 애새끼가 셋인데, 모두 사내 새끼들이야.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이미 장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뒤로 둘을 낳았는데, 홍련이보다 어린 애들이지. 그 애새끼들에게는 안됐지만, 계모년은 이제 더 이상 밥을 처먹지 못할 거야. 나는 절대 그 쌍년을 용서할 수 없거든. 우리 엄마, 홍련이 낳고 죽은 우리 엄마가 홍련이를 낳을 때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달랐어. 엄마와 계모년인 허씨는 어려서 동무였다고 하더군.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를 질투하고, 시샘했는데, 그건 외모를 비롯해서 모든 면에서 우리 엄마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대. 우리 엄마는 외모도 예쁘고, 몸가짐도 반듯하고, 바느질도 잘 하고, 음식도 잘 만드는 '양가집 규수'였던데 반해 허씨년은 어릴 때부터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남자들하고 어울려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던 년이라더군. 엄마가 결혼하고 나를 낳고, 3년 뒤에 홍련을 낳았을 때, 친정엄마가 없던 우리 엄마를 돌봐주겠다고 했던 게 허씨년이라는 거야. 감이 오지. 그 쌍년이 우리 엄마를 살해한 거야. 미역국에 독을 넣었을 수도 있고, 목을 졸라서 죽였을 수도 있겠지. 이 사실을 알려준 건 옆집 할머니였어. 할머니는 항상 우리 자매를 지켜보고 있었지. 나는 어려서 그 할머니가 조금 이상했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 내가 말귀를 알아 들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진실을 말해 주신 거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어. 이 비밀을 알기 전에도 나는 늘 생명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허씨년하고 그 아들놈이 우리 자매를 죽일 거라는 느낌말이야. 우리 자매를 죽여야만 아버지 재산을 전부 그것들이 차지하지 않겠어. 나는 홍련이와 함께 낮에는 거의 산에 가서 살았어. 집에 있으면 위험했기 때문이지. 산에 간 이유는 위험으로부터 도피할 목적도 있었지만, 홍련이와 함께 체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어. 우리는 산을 오르고, 무거운 바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들고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스스로 훈련을 했어.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어지간한 남자들은 우습게 보일 정도로 근육과 체력이 단단해졌지. 늘 풍성한 치마를 입고, 몸이 드러나지 않아서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지. 어제, 허씨년이 쥐의 껍질을 벗겨서 내가 외간 남자와 사통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버지는 나를 방에 가뒀어. 아마도 허씨년은 나를 그냥두지 않을 거야. 장쇠 새끼를 시켜서 나를 죽이려 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당할 수는 없지. 그 쌍년놈들을 내가 먼저 본때를 보여주겠어. 헛간에는 시퍼렇게 잘 벼려둔 낫도 있고, 장롱에 숨겨둔 작은 손도끼도 있으니까. 이제 남자 옷으로 변복만 하면 돼. 엄마를 죽인 허씨년은 산 채로 팔다리를 잘라서 돼지우리에 처넣고, 장쇠 새끼는 눈깔을 빼고,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잘라 버릴 거야. 나와 홍련이를 건드리는 년놈은 누구를 막론하고 제 명에 죽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저 뒷산 우물 속에 처박힌 년놈이 몇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말이야.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꽁뜨-감옥에서 부친 편지
    꽁뜨-감옥에서 부친 편지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아들 시형 보아라 나는 이 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 하루 세 끼 잘 먹고, 성경도 날마다 읽으며 우리 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여기서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성경 뿐이다. 생각할수록, 내가 주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지 않았다면 이 환란을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너도 교회 열심히 나가고, 성경도 매일 빼놓지 말고 꼭 읽기 바란다. 나는 이제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환란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오늘 세속의 법은 내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130억원과 15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내가 죄 없는 순진한 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70년 평생은 정직과 청렴의 세월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늘 순결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서울시장이었을 때는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나라를 하나님께 봉헌했다. 하나님의 세계를 이 땅에서 이룰 수만 있다면, 서울이든, 한국이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바칠 것이다. 내가 이 안에 있는 동안 어머니 잘 모시고, 가족들 두루 잘 돌보고, 너도 이제 가장으로서 정직하고 청렴하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바란다. -동부구치소에서 애비가 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는 잘 있소. 나보다 당신이 더 고생이 많은 줄 잘 압니다. 그래도 우리는 주 하나님의 품안에서 신심을 다해 영적 부부로 거듭났으니 그 어찌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 옥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는 당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오. 옛날 독립투사들의 아내가 드렇듯, 정의로운 길에는 늘 환란과 핍박이 가로 막고 있을 뿐이오. 당신과 내가 한평생 살면서 정직과 청렴으로 외길을 걸었지만, 세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구려. 예수님도 사막을 40일이나 헤매며 진리를 구했듯, 우리도 이 고난의 시간을 주 하나님이 주신 영광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는 값진 기회라 생각하고, 꿋꿋하게 견뎌 나갑시다. 나 없는 동안 당신이 집안의 가솔들 잘 돌보고, 무엇보다 당신 건강에 유의해서 머지 않아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지금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는 예수의 심정으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내게 주어진 역사의 수난이라고 생각하고, 이 고난이 끝날 때, 우리에게는 더 큰 영광과 은혜가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소.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당신도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길 바라오.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양에게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내려주소서. 이 좁은 골방에 갇혀 교도관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으면서 독방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생각나기는 개뿔, 아이 씨발 개좆같네. 아무 죄 없는 나를 15년이나 감옥에 가둬놓겠다는 저 빨갱이 새끼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왜 아무도 나서지를 않는 거냐고. 내 덕분에 잘 먹고 살던 새끼들도 언제 봤냐는 듯이 아는 척도 안 하고, 배신 때리는 더러운 새끼들, 내가 나가면 너희들은 다 죽었어. 시형이, 이 새끼도 미국에서 미국 검찰 조사받는다는데, 옛날에 무성이 사위하고 마약 했다는 소문이 나돌던데, 미국에서 걸리는 거 아냐? 미국에서 탈세하면 국세청에서 탈탈 턴다고, 미국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국세청이라던데, 이제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너를 도와 줄 수도 없잖냐. 마누라는 발가락에다 다이아몬드 반지 끼워서 들어오다 들통나서 씨발, 있는대로 쪽팔리고, 대통령 마누라가 말도 천박하게 해서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당하고, 밀수한다고 뒤에서 욕이나 얻어먹고, 아이 진짜 씨발, 무슨 집구석이 이렇게 더럽고 추접하냐. 아무리 내가 돈이 많고 대통령까지 하면 뭐하냐고. 집안이 천하고 무식한 것들만 넘치는데. 저것들은 밖에서 잘 먹고 잘 살겠지. 씨발, 왜 나만 여기 혼자 들어와서 이 고생인지 진짜 개좆같아서 못 참겠다. 하나님인지 씨발, 그리스인지 그렇게 열심히 믿어도 아무 소용없잖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이 좁은 독방이 왠말이냐고. 그 좋아하는 보신탕도 못 먹고, 아랫 것들에게 욕하면서 재떨이도 못 던지고, 테니스도 못 치고, 예쁜 여자가 있는 사우나도 못 가고. 아, 진짜 죽겠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노인의 날
    노인의 날 구글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하다 오늘이 ’노인의 날‘인 걸 알았다. ’노인의 날‘이지만 특별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노인들이 각양각색의 옷과 장신구를 하고 거리를 행진한다든가, 지역별로 노인이 주인되어 주민들과 함께 하는 축제를 연다든가 하는 행사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노인의 날‘을 제정했겠으나, 실속도, 형식도 보이지 않는 이런 날을 왜 제정했는지 의아하다. 한국도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노인 인구가 청년, 어린이 인구보다 더 많아지는 역피라미드 사회로 바뀌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문제는 노인의 질적 구성이다. 이렇게 말하면 듣는 노인들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노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노인의 정치, 이념적 성향의 분류는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동하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노인은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분단, 군사쿠데타를 모두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세대다. 아직 노인이라고 말하기 이른 내 세대(50대)만 해도 저 모든 경험을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군사쿠데타를 두 개나 겪었고, 어린 시절을 독재사회에서 자랐다.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와 함께 병영문화, 일본 제국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격심한 남녀차별과 가부장의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우리 세대의 남성들도 무지와 미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하물려 우리 부모 세대인 지금의 노인들을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인 세대의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비록 간접 경험일지라도 다양한 정보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노인 세대가 ’꼰대‘라고 멸칭을 당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은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사람이다. 즉, 스스로의 동굴 속에 갇혀 바깥에서 비추는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미개인인 것이다. 노인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도 분명 있다. 내 주위에도 얼마 전 돌아가신 어르신은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셨는데,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일상에서는 인자하고 합리적이고 너그러운 분이셨다. 우리 뒷집 사시는 최교수님도 보수적이지만 마음이 열려 있고, 늘 대화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실수한 것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멋진 분이시다. 나는 지역의 일을 하면서 노인들을 자주 만나는데, 내가 만나는 노인들은 보수적이기는 해도 젊은 사람과 말이 통하는, 생각이 유연한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소위 ’태극기 부대‘의 주류를 이루는 노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정치적 확신에서 오는 자발적 행동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고립되어 마땅한 탈출구를 찾을 수 없기에 유일하게 받아주는 곳이 태극기 부대여서 그런지 궁금하다. 노인이 된다는 건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늙어가고 결국 죽지만, 몸은 비록 늙어가도 정신은 늘 청년처럼 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되면 삶의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도 젊어서부터 그런 삶을 지향한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일 뿐, 배우지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노인은 젊었을 때 쓰레기였던 인간이 다만 늙은 쓰레기가 될 뿐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 무지하고, 가난한 노인들은 정부가 보살피고 돌봐야 할 대상이다. 노인은 젊어서 열심히 살았고, 그들의 노동이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인이 벼슬은 아니다. 지하철도 무료, 노약자석도 지정, 거의 모든 공공 시설의 입장료도 무료로 노인을 우대하는 정책은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이다. 노인들은 이런 무료 정책을 좋아하겠지만, 올바른 생각을 하는 노인이라면, 자신이 누리는 그 무료의 혜택이 자식, 손자 세대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자신의 특혜를 조금이라도 내려 놓고,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옳은 태도다. 정부는 노인에게 생활비도 안 되는 연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지원하면서, 노인들이 지하철 요금을 비롯해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하던 시설에 대해 정당하게 할인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인이 되어서 자존심과 자부심조차 내팽개치고 무조건 노인이니까 무료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노인 세대가 매우 고생을 많이 한 세대니까, 이제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누구도 노인 세대에게 고생을 떠맡기거나 떠넘기지 않았다. 노인들이 살아온 세상이 그랬던 것 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극심한 실업, 취업 문제에 대해 노인들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노인 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면, 세대간 갈등은 더 격렬해질 것이고, 노인들이 존경받을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오히려 지금 노인은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고 경멸당하고,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태극기 부대‘의 노인들 아니던가. 노인이 앞장서서 양보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젊은 세대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 취급을 당하는 것은 필연이다. 내가 속한 세대도 머지 않아 노인 세대에 편입될 것이다. 이제 앞으로 불과 십여년 남았다. 우리가 노인이 되면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임산부에게 쌍욕을 하거나, 태극기를 들고 나가서 패륜을 저지르는 그런 천박하고 양아치 같은 늙은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문화 생활을 좀 더 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고,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뒷집 최교수님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혼자서 어린이 놀이터에 나가 잡초를 뽑는 노인이 되고 싶다. 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하게 일상의 평안함을 만들어 가는 사람인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소확행'이 불편한 까닭
    '소확행'이 불편한 까닭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8포 세대에게 미래의 거창한 계획은 불가능한 꿈이기에 차라리 그런 꿈조차 무모하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상의 작고 사사로운 것들에서 행복을 찾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조물주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건물주'가 초등학생의 꿈이 되어버린 세상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자본의 확장'에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한 질주의 레이스에 뛰어들게 만든다. 그 가운데 99.9%가 도태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뛰어든다. 전부를 얻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는 사회 구조가 원인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자의 반, 타의 반-구조적 모순이 더 크다고 보는 나는 타의의 비중이 훨씬 높다고 보지만, 경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이 구조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죽음의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다. '소확행'은 두 가지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모순을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착취 구조를 모른 채,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하고 자본의 노예로 근근히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경우가 하나이고, 그런 행위 자체가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둘은 하나의 행동에서 발발하는 중의적 결과로 드러나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자본의 착취구조에서 가장 아래 속하는 피착취계급이며, 자본이 쉽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며, 자본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노예가 되는 어리석은 시민의 모습이다. '소확행'은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개인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사회적 계층구조가 너무 높아서 한 단계를 뛰어오르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고, 도약이 불가능하며, 그런 도약과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가 그러는 걸까. 누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그렇게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걸까. 마치 '소확행'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상적인 삶'이라고 치장하고 미화하는 자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말에 쉽게 속는다. 비판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고 선민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자본의 착취구조가 엄연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분명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는 노예 상태를 무지해서 모르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발적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마치 발목에 감겨 있는 쇠사슬에 광을 내듯이 '소확행'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를 착취하고, 돈과 시간으로 옭아매고,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은 그러나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근사한 레스토랑과 명품 매장과 따끈한 신제품과 맛집과 거대한 쇼핑몰과 예쁜 인테리어와 기능성 화장품과 유명 메이커와 브랜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소유하고, 소비하고픈 개인의 욕구와 욕망을 자본은 '돈'과 '시간'으로 통제한다. 원하는 것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개인의 욕망과 욕구를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피착취계급(90%의 노동자, 학생, 청년, 서민)은 자신들의 노력과 의지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람쥐 체바퀴 돌아가듯 한 자리만 맴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무한 경쟁이지만, 이제는 그런 경쟁에서 스스로 도태되기를 선택한다. 이런 행동은 논리적 깨달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경쟁을 멈춘 사람들은 최소한의 조건으로 살아가야 하므로 생존이 어렵지만, 무한 경쟁을 하다 죽으나, 가난하되 마음 편하게 살다 죽으나 결국 마찬가지 결과에 이른다는 것을 아는 순간,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 이것은 자본에게 위기의 순간이다. '소확행'은 마치 새로운 트렌드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청년 세대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자포자기 삶의 형식이다. 물질소비의 수준이 절대 비교에서 과거(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 온 청년 세대는 자본의 억압과 통제에 맞서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더욱 거세게 자본과 맞붙어 깨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지만,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빈익빈 부익부의 균열이 커지면서 상대적 빈부의 체감은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지만, 절대 빈곤이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근근히 먹고 살 수는 있으나, 자신들이 지하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빠져나올 수 없는 삶, 깊은 우물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삶을 떠올리면, 죽음 이외의 다른 삶은 오로지 고통 뿐이다.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 하고, 현실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소확행'이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면, 그 사회는 무엇이든 꿈꾸고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지금의 현실은 자본의 억압과 착취의 그늘에서 시들어가는 청년 세대의 자학적 반어법이 '소확행'이라는 걸로 이해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1 추석을 앞두고 형제같이 지내는 동무의 부탁으로 숙주나물 공장에서 일했다. 명절(추석, 설) 앞이면 늘 많은 물량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단 사흘만 일하기 때문에 일손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점도 있을 듯 하다. 첫 날, 아침에 두 동무를 만나 개군면에 있는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양평에서 약 30분 정도 달려 이천의 어느 한적한 마을 외곽에 자리잡은 숙주나물 공장에 도착했다. 판넬로 만든, 근처의 여느 공장들과 똑같이 생긴 푸른지붕의 공장은 그리 크지 않았고, 콘크리트가 깔린 마당은 깨끗했다. 숙주나물 공장의 사장이 동무의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장화로 갈아 신고, 장갑을 낀 다음-작업복을 갈아 입거나 하지 않고-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한 일은, 박스로 포장된 숙주나물을 공장 바깥에 쌓았다가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이었고, 이 일이 끝자자 공장 안으로 들어가 각자 주어진 일을 했는데, 나는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거의 대부분 숙주나물을 큰 통에 싣는 작업을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숙주나물 공장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공장 내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한 곳은 숙주나물이 자라는 공간이다. 가운데 작업 공간의 양쪽이 모두 숙주나물이 자라는 창고 같은 공간인데, 왼쪽에 두 곳, 오른쪽에 한 곳이 있고, 한 곳의 넓이는 약 50평 정도 되어 보였다. 설날 전에는 모든 공간에서 숙주가 자란다고 하는데, 추석 때는 두 곳에서만 숙주가 자라고 있었고, 예전보다 물량이 줄었다고 한다. 숙주는 녹두로 만든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녹두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 녹두를 먼저 살균 소독한 다음 배양하는데, 바닥에 놓인 녹두가 콩나물처럼 자라기 시작하면, 계속 위로 솟아올라 수 십 층의 두께로 쌓인다고 한다. 숙주가 자라는 공간은 어둡고, 사람 머리 위의 높이에서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장치가 되어 있어, 계속 물을 뿌려주기 때문에 숙주는 밤낮으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자란 숙주나물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밖으로 가져오면, 스테인레스로 만든 수조에 넣는다. 숙주나물을 가공하는 기계 설비는 매우 간단하게 되어 있다. 이 공장에서는 ㄱ자 모양으로 꺾인 기계 설비였는데, 이와 비슷한 콩나물 공장에 가보니, 더 간단한 일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숙주나물을 물 속에 담가 녹두 껍질을 제거하는데, 이때 계속 많은 물이 수조로 들어간다. 즉 지하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수조에서 숙주를 풀어헤치면 녹두 껍질이 먼저 가라앉고, 풀어진 녹두는 두 개의 철망을 지나면서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물기를 털어내는 바이브레이터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일정한 중량이 되면 비닐 봉투에 담기는데, 나는 바로 이곳, 비닐 봉투에 담기는 곳 옆에 서서 숙주 나물이 담긴 비닐 봉투를 다시 옆의 큰 통에 담아 놓는 일을 했다. 중량대로 담긴 숙주나물 비닐 봉투는 박스 포장을 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박스에 담긴 다음 곧바로 납품을 하게 된다. 숙주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은 상품을 '찍어 내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숙주 나물이 농산물(1차 상품)이긴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순간, 더 이상 '1차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닌, 대량 생산되는 '2차 상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숙주 나물을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은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곳이다. 이곳은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물량표가 붙어 있고, 그 물량에 따라 일정한 용량-1, 2, 3.5, 4, 5, 6, 8, 10kg-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이다. 용량이 작은 것은 약 3초마다 하나씩 상품이 나오고, 용량이 커도 15초면 하나의 상품이 나온다. 즉,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숙주 나물이 봉투에 담겨 나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 약 9시간 정도 꾸준히 나온다. 모든 과정은 지극히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어서 머리를 쓸 이유도, 필요도 없다. 1kg짜리 숙주 나물 100개, 3.5kg짜리 숙주 나물 50개, 10kg짜리 숙주 나물 80개... 무게는 자주 바뀌고, 그것을 세팅하고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을 체구가 작은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맡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산된 다양한 비닐봉투를 커다란 통에 담는 일을 했는데, 나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통에 담는 것도 몸을 빠르게 놀려야 했다. 통이 가득 차면 박스에 담는 곳에서 통을 가져간다. 비닐 봉투를 박스에 담는 작업은 베트남 남성 노동자가 맡아서 했는데, 박스를 접는 손이 매우 빨랐다. 박스 작업은 밴딩 기계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박스를 접고 비닐 봉투를 넣은 다음 곧바로 밴딩 기계에서 밴딩을 한 다음 수동 컨베어벨트 위로 밀어 놓으면 박스를 쌓는 사람들이 출입구 쪽에 박스를 쌓아두게 된다. 박스 작업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봉투에 넣는 작업이 박스 작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업 과정에서 조금씩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개입해 이러저러한 일들을 끊임없이 한다. 공장 청소도 매우 중요한데, 식품을 다루는 공장이라서 깨끗하긴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숙주 나물의 잔해와 박스, 포장끈 등 지저분한 것들이 생긴다. 작업하는 중간 중간, 이런 쓰레기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공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힘들다기 보다는 무엇보다 단순 반복의 지루함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집에 있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니, 한 시간, 아니 십 분이 지나가는 것도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공장에서는 일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냈다.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일을 시작하고, 11시 조금 지나면 간식 시간을 주었다. 빵, 토스트, 음료수, 과일 등이 매일 조금씩 바뀌면서 나왔고, 간식과 매 끼니 식사는 사장의 부인이 직접 만들어 주었다. 간식을 먹고 나서 점심은 오후 2시에 먹었다. 일의 성격을 보면, 이런 방식의 시간 배치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너무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노동자들이 몹시 지루하게 시간을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3 이주 노동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모두 네 명. 한국 노동자는 한 명. 현장에서 고정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섯 명이고, 그외 시간에 관계 없이 나타나서 일하는 사람이 두어 명 있었고, 상품(박스)을 물류 회사로 실어가는 트럭 기사가 있다. 즉, 생산을 맡은 노동자는 베트남에서 온 젊은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들은 이곳 공장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이 있다고 하는데, 명절처럼 바쁜 날이 아니면 통상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 또는 6시까지 노동한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간간이 들어보면, 이들은 회사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으로 약 12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를 받는 듯 하다. 베트남 노동자의 신분은 '산업연수생'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고, 정부에서 정해 준 월급의 기준이 있는 듯 하다. 월급 120만원이라면, 한국에서 최저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하겠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비용을 감안하면, 이들이 받는 임금 수준이 터무니 없이 낮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절대 임금 기준으로 보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는 낮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는 것은 분명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이주 노동자나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려는 영세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가)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 뛰어 드는 노동자들이 3D 직장을 싫어한다는 언론의 보도나 방송이 자주 나오는데,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정작 자본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노동자라 하더라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 임금 120만원이면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인데,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저임금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한국 노동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이 150만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하루 세 끼의 식사와 잠자리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면, 그 노동시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자본'은 국적이 없다. 따라서 '민족'이나 '인종'과 같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언어'에 의해 그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멕시코 노동자가 미국으로 이동하고,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한국과 일본 등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렇다. 이주 노동자의 활용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서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는 불안한 상황이 조성된다. 4 영세 자본가. 자본가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국적'과 '인종'에 관계 없이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자본가는 자본가들끼리 이윤을 놓고 경쟁한다. 특히 소규모 영세 자본가의 경우, 그들은 안팎으로 압박에 시달린다.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모든 기반 시설을 마련해야 하며, 임금, 복지, 사고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밖으로는 같은 영세 자본가와 경쟁해 시장을 확보, 확대,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고, 최대의 이윤을 위한 적정한 상품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숙주 나물 공장의 예를 들면, 공장을 마련하고,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즉 누구나 '영세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영세 자본가에게 '안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가 크던 작던, 자본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한다. 자본주의가 '이윤'을 토대로, '경쟁'을 매개로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며, '자본가'에게도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은 1%의 자본가는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 것이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1%의 '자본가'들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차 농산물인 숙주 나물을 한 명의 자본가가 생산하는 것이 몹시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농산물이라면 오히려 시골의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산하는 것이 훨씬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텐데, 자본의 힘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생산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영세 자본가'가 더 자주, 더 많이 출현하는 것은 '자본'이 주는 매력이 위험(리스크)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이 공장의 사장도, 자신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이익이 위험보다 크기 때문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장을 운영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정부의 정책, 시장의 변동, 거래처의 상황 등-에 의해 영세 자본가는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창업을 하는 영세 자본가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험을 극복하고 얻는 열매가 더 크고 달콤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5 공장에서 사흘 노동을 하고 나서, 근육통과 두통으로 조금 고생했다. 덕분에 몸무게도 조금 빠졌고,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많이 사용해서 저절로 운동을 했다. 하루 9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고, 단순 반복 작업으로 지루함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끔찍하다. 사람은 기계의 부품이 아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하루 16시간 노동부터 아동노동-심지어 4살짜리까지-과 위험한 노동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이 인간의 존재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단순 반복의 지루한 노동일수록 노동 시간을 짧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하는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하며, 인간의 삶에 기여해야 하며, 인간의 존재를 빛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노동'의 의미이자 가치인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나는 줄곧 주4일 노동과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주5일 노동이 현실인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금은 자본의 위세에 눌려 노동자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임에 틀림 없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주4일 노동,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해야 한다. '노동'의 주체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노동 시간을 일했지만, 한국 사람인 나는, 베트남 노동자보다 약 2배의 임금을 받았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들여다보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을 두고 아내가 걱정 담긴 얼굴을 할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대상은 주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다. 즉,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관계에서 나는 주로 상대방에게 실망 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런 나의 심리적 태도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챌 수 있다. 그런 태도는 자존감이 낮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려서 우리집에는 세 마리의 소가 살고 있었다. 1913년의 아버지, 1925년의 어머니, 1961년의 나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실향민 아버지는 전처와 성장한 자식이 셋이나 있었고, 남편과 헤어지면서 두 딸까지 전남편에게 떠맡긴 어머니는 이웃의 소개로 나의 아버지를 만나 살기 시작했고 나와 동생을 낳았다. 가난했던 늙은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과 맞지 않는 성격과 거친 삶을 살아오면서 걍퍅해진 성정으로 서로를 닥달하고, 비난하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가난은 그 자체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도시빈민의 문제는 빈곤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정서적 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어려서 똑같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어도 시골이라는 환경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 도시 생활을 하더라도 시골의 정서가 그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에 늘 절망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내 고향일 수는 없었다. 내가 살던 마포의 철둑 아래 무허가 판잣집은 물에 잠긴 다음 헐렸다.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이런 박탈감은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이어졌다. 도시빈민으로 자란 것은 선택의 여지가 매우 좁은 삶이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조영학 형처럼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뛰어난 인물이 되는 분들도 없지 않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래서, 나의 현재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내가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만 자랐다면, 정상적으로 학교 교육을 마쳤다면 지금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지금의 나를 후회하거나, 과거를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내가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우울과 연민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왜곡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경우, 아이는 심리적, 정서적 왜곡과 결핍이 발생한다. 그런 심리상태는 자신보다 어른에게 잘 보이고 싶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관심을 얻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마츠코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존감, 독립적 사고와 의지가 부족해서 결국 비참한 삶을 살지만, 이런 극단적 사례가 아니어도 주변에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성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비교적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데, 우리의 삶이라는 게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제외하면 껍데기만 남는 것이니, 내게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빈곤, 소년노동자, 무학이라는 세 가지의 존재 조건은 나의 내면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생산했다.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데 거의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대부분의 도움은 아내에게서 받았다. 아내는 연인이자, 친구이고, 같은 길을 가는 동지이자 스승이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는 지금도 아내에게 빚지고 있다. 단호하지 못한 내 성격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가족에게는 데면데면하면서 남들에게는 호의적인 나의 모순적 태도 때문에 가족이 실망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당연히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마음 쓰지만,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청년기에 읽은 책 가운데 '케네디가의 가정교육'인가 하는 책에서, 중산층 이상의,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는 남의 집에 가서 음식을 대접받을 때, '싫다'라거나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었다. 즉, 상대방의 제안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은 가정교육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런 내용을 읽고나서 내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는데, 그 뒤로는 어디를 가서, 누군가에게 대접받을 일이 있으면 '네,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등으로 인사를 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전인격이며, 살아온 환경과 그 사람을 둘러싼 부모, 형제, 자매, 친척,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하면, 나이 들수록 언행을 스스로 되돌아 살펴야 함을 알 수 있다. 나는 내 인격의 그릇이 작다는 걸 안다. 종지만큼인지, 대접만큼인지 모르지만, 우물 속에서도 파란 하늘은 보인다. 그 보이는 만큼의 하늘이 내게는 세상의 전부겠지만, 더 이상 욕심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 오직 그 정도 아닐까.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프레임을 주도하라
    프레임을 주도하라 우리의 일상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는 주로 정치 쪽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가들의 말에 대해 비판, 비난하면서도 정치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직간접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대의정치가 이제는 거의 직접정치로 진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온라인으로 정책을 곧바로 발표하고, 공무원과 회의하는 것도 생중계로 내보낸다. 이것은 경기도민에 대한 직접정치에 다름아니다. 미국대통령 트럼프도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발표한다. 이제는 정치가 소수의 정치가들이 주무르는 전유물이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시민이 국회의원처럼 입법을 할 수는 없으니 한계는 있지만, 적어도 온라인에서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개인의 발언은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합해지고 커지게 된다. 한국정치의 수준은 매우 미개한데, 그 미개함의 원인은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맞물려 있다. 해방 이후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친일, 매국노 집단이 권력을 잡은 이후, 군부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한국사회의 현대화를 억압했고, 김영삼,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부르주아 정당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군부독재 집단은 정치를 통해 특정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고, 국가를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국민의 수준이 낮아서 독재세력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의 탐욕을 눈감아 준 것도 한심한 노릇이지만, 지연, 학연, 혈연과 같은 비개인적이고, 비민주적인 인식의 틀이 지금도 바뀌지 않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모든 현상을 '이익'과 '손해'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므로 갈등의 요소가 없다. 독재 집단에서 이어온 정당과 정치인이 그렇기 때문에 늘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진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이익'이나 '손해'라는 즉물적 관점을 윤리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수구 집단의 말과 행동은 늘 치졸하고, 탐욕적이며, 즉물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촛불에 반대한 세력, 집단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미래를 가로막는 적폐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옳고, 역사적으로 정당한 판단이다. 그렇기에 수구 반동 집단이나 개인이 반동적, 패륜적 언행을 할 때는 그것을 참지 않고 가차없이 비판, 비난한다. 이때, 수구 반동 집단(개인)과 싸우는 진보 정당이나 정치인, 촛불 시민이 빠지기 쉬운 것이 바로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다. 수구 반동 집단(개인)의 언행은 당연히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인식이나 가치관, 세계관이 퇴행적이고, 반동이며,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고, 촛불 시민이 이룩한 진보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구 반동 집단(개인)이 말하는 것을 반박하거나 비판, 비난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 수구 반동 집단(개인)의 언행은 반박하거나 비판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다. 예를 들어 자유당 홍준표나 김성태, 김무성 같은 대가리급의 말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그들의 말은 논리가 없기 때문에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힘만 뺄 뿐이다. 오히려 야비하고 악의적인 수구 반동 집단의 언행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 좋다. 비판이든 비난이든 상대방의 언어를 다시 말하는 것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는 결과는 가져온다. 김성태가 출산정려 정책으로 1억원을 준다고 말할 때, 그것은 두 가지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자유당이 출산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선심성 발언을 통해 정당 홍보와 함께 지지율을 올리려는 것이고, 여당에 대해 정책의 우월성을 드러내 수구언론에게 스피커를 만들어 주려는 의도다. 둘째는 정부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를 만드는 것이고, 만에 하나, 정부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면 재정적으로 파산하게 되므로 정부의 무능과 정책 실패를 비난하기 위한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성태가 주장하는 내용을 비판, 비난하려면 김성태의 주장이 황당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김성태의 주장이 내포하고 있는 악랄하고 야비한 계략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의 언어나 주장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과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적을 이기려면 적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우아함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인가
    우아함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인가 이 문장이 뜬금없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우아하다'와 '부르주아'가 동시에 떠올랐다는 건, 내 잠재의식 속에 부르주아의 세계는 우아하다고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봉건사회를 뒤엎고 자본주의 사회를 열어재낀 시대의 선구자였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이자 지배계급이다. 부르주아 내부에 자본가가 있으며, 자본가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에 속한다. 봉건 왕조를 폐기할 때의 부르주아는 진보적 집단이었으나, 자신이 사회의 주인, 지배계급으로 등극한 이후로는 급격히 보수화되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나온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경제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잉여 생산물을 이윤으로 만드는 구조적 기술에서 나온다. 즉,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노동자 계급의 피로 그린 명작인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우아함'이 진정한 '우아함'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해야 한다. 중세에도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 가문처럼, 금융과 제조업으로 돈을 번 귀족이 문화, 예술 분야에 집중 투자해 중세에서 르네상스의 번영을 일으킨 역할을 했던 경우도 있지만, 계급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서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귀족들이 만든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을 발전시킨 것이 노예와 농노를 착취해서 그 잉여의 부로 만든 것임을 알게 되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노예, 농노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착취한 부르주아가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몹시 회의적이다. 과거의 계급 시대에 노예, 농노를 지배했던 귀족의 문화가 기록되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 다수였던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더 널리, 더 오래 전통적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계급, 민중의 문화와 예술의 생명력이 훨씬 오래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중세에 주로 귀족을 위해 만들었던 음악을 현대에서는 '클래식'이라는 장르로 듣고 있다. 어느 지방이든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민중에게는 일과 놀이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와 음악과 춤이 있다. 귀족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작곡가, 연주가들 역시 그들의 출신은 노동자, 농민, 장인의 집안이었기에 음악적 영감은 민중의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귀족과 부르주아의 우아함이란, 물질 문명의 발전과 뗄 수 없다. 지배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화려한 의상, 장신구, 거대한 건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의례 등을 만들었다. 솜씨가 좋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고, 조각상을 만들며, 권력자 자신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시를 지어 낭송하도록 했다. 이런 행위의 근간에는 권력자와 왕족, 귀족, 부르주아들이 평민, 서민, 농노, 노예 즉 피지배계급과 차별화 하고, 뚜렷하게 구분 짓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런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이 피지배계급의 야만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은 우아하고 고귀하다는 자기만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중세까지는 귀족, 지배계급은 적어도 자기가 속한 집단, 지배계급의 우월함과 차별화를 위해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고급지고 세련한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것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한 결과였다 해도.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지배계급인 자신들과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과의 차별성, 차이,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화, 예술적인 투자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본(가)은 초기 자본의 축적 시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의 확대에 집중했다. 그 결과는 어린이 노동(심지어 4살짜리도 탄광에서 일했다), 여성노동은 물론 하루 16시간-18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18세기, 19세기 초반의 노동자 평균수명은 30세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일 때, 100달러짜리 지폐에 담배를 말아 피웠다. 겨우 한두 명의 자본가가 자신이 번 돈으로 미술품과 예술작품을 구입해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거나 정부에 기증해 미술관, 박물관을 설립하도록 도운 경우가 있다. 그것은 중세의 귀족들이 예술가들에게 직접 창작을 하도록 지원한 것과는 또 다른 경우이며, 그리 훌륭한 방식도 아니었다. '우아함'이 단지 생활 방식, 양식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금식기, 은식기에 노동자나 민중은 평생 한번 구경도 못한 식재료로 음식을 먹고, 최고급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넓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수십억 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전용 제트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이 '우아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본가는 가죽장갑을 끼고, 야구방망이로 돈없고 힘없는 노동자를 구타하고, 어떤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하며, 괴성을 지르고, 컵에 담긴 물을 끼얹기도 한다. 자본가나 부르주아의 인격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즉,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도 고매하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평균의 확률에 따라, 인간의 일정 비율로 사악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본가에게도 인간의 평균 비율에 맞는 사악한 인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돈과 권력을 갖게 되면, 그 사회적 힘을 휘두르게 된다. 자본과 권력은 개인에게 고유한 것이 결코 아님에도, 마치 돈과 권력과 자신(개인)을 동일하게 여기는 착각을 한다. 그것이 모든 권력적 비극의 근원이다. '우아함'은 오히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노동자와 민중에게서 찾아보기 쉽다. 그들은 대부분 천박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야비하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많다. 그럼에도 민중의 문화와 예술이 오랜 시간을 이어오고, 민중의 예술이 세련하게 다듬어지며 오늘날 전통문화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보면, 개개인의 천박함과 야비함, 폭력성보다 집단의 지성이 큰 줄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민족의 역사, 문화, 예술이든 그것을 만들고, 이어오는 것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 노동자, 민중이었다. 음악, 춤, 노래, 그림, 공예, 도자기, 목공, 건축 등 모든 분야를 살펴보면, 그것을 있게 한 것은 결코 귀족이나 왕족이나 지배계급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만 봐도 고려, 신라, 백제, 조선을 이어오며 만들고 다듬어 이어지는 전통은 매우 우아하고 단아하며 품격이 있다. '우아함'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 빼앗은 잉여물로 자신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지 몰라도, 면면히 이어오는 정신의 전통을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민중은 지배계급에게 무수히 빼앗기면서도 자신들의 정신을 이어오는 문화, 예술의 전통을 만들고, 다듬으며 발전시켰다. 진정한 우아함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음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지만, 나는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이 짧고,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고, 알고 있는 것 조차도 올바로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리석음'이 지식의 천박함, 가치관과 세계관의 부재, 자신의 존재에 관한 인식의 부조화, 알고 있는 객관적 지식, 사실을 실행하지 못하는(않는) 의지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어리석음은 기존의 학교 교육이나 지식의 많고 적음과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인다. 어리석다의 반대 개념은 슬기롭다, 지혜롭다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단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은 개인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각과 의지를 말하는 것이다. 즉, 슬기롭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고, 주위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과 문제에 관해 그 현상이나 결과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유형이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이렇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일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무지와 어리석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무지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은 대부분 무지하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어리석지 않은 것은 아니다. 머리에 든 게 많은 먹물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는 경우, 대개는 어리석음으로 드러난다. 지식인이 어리석은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닌, 탐욕과 이기심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지식인은 방향을 잘못 잡아서 자신이 가는 길이 어리석음의 길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다. 어리석은 자들이 모두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이다. 흉악범을 포함한 범죄자들은 저마다 동기가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만, 어리석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해도, 어리석은 자들은 슬기로운 사람들과 다른 모습-비상식, 비도덕, 비윤리적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드라진다. 어리석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으며,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이용당한다. 물론 슬기로운 사람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속지 않는다. 슬기로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마치 낙인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슬기로운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교활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돈을 뜯어낸다. 많은 경우, 어리석거나 슬기로운 것과 관련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돈에 의해 노예처럼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바꾸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런 매카니즘을 이용해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그것은 철저히 자신과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 혈연, 지연, 학연만을 위해 추구하며, 돈과 권력을 향한 과정에서 방해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한다. 슬기로운, 지혜로운 사람이 모두 선량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악한은 아니다. 선량한 마음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슬기로운 사람 가운데도 악하거나 욕망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맹인이 어느 날, 망막 세포가 살아나 눈을 뜨고 사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귀가 들리지 않던 사람이 수술을 받고 보청기의 도움으로 세상의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배움과 경험을 통해 어리석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와 시간은 있지만, 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므로, 미신, 종교와 같은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만든 덫에 쉽게 걸려든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고,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역사는 느리게 나아지거나 빠르게 후퇴하기도 한다. 다행히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슬기로운 사람들-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그나마 든든한 기둥을 받치고 있지만, 그외의 분야에서는 교활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돈과 권력을 목적으로 날뛰고 있어 슬기로운 사람들을 절망케 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2
  • 평범한 일상
    평범한 일상 오늘 전기 공사를 했다. 며칠 전, 거실과 서재의 천정에 크랙이 있던 곳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방수공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던 드릴이 전기선을 건드린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다행히 2층 전등 차단기만 떨어지고 있어서 조금 불편해도 며칠 참으며 지냈다. 어딘가에서 합선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전기공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보다는 귀찮아서 하기 싫은 일이다. 양평에 있는 전기업체 여러 곳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올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알고 지내는 건축업자이자 같은 주민자치위원에게 전화로 물어보니 자기가 아는 전기업자를 소개해 주겠노라고 했다. 처음 통화할 때 목소리가 낯익다 했더니 오전에 집에 도착한 사람은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의 아버지였다. 당시 분교였던 학교에 입학생은 여섯 명이었고, 세 명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전교생이 스물여섯 명이던 학교에 여섯 명의 신입생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고, 학교는 물론 마을 주민 모두가 기뻐했다. 쉬울 것 같던 전기공사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거실에서 합선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세 군데나 천정을 뚫었지만 합선이 일어나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서재 입구의 등을 떼어내고 천정을 뚫어 확인하고서야 서재 쪽에서 합선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문제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서재를 제외한 2층 전체의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공사는 여기서 일단 마무리하고, 둘이 가까운 식당으로 점심을 먹고 와서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석고보드로 된 천정을 뚫으면서 바닥은 석고보드 가루와 부스러기로 온통 지저분했다. 빗자루로 쓸어담고, 물걸레 청소기로 바닥을 닦은 다음,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러 갔다. 샤워를 하면서 '평범한 일상'에 관해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무사, 무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일까. 곰곰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누군가 삶의 과정을 '평범'과 '비평범'으로 구분한 것은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한 부박한 인식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시간의 비늘들은 매순간 반짝거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때로는 절망, 슬픔, 우울, 고통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고, 기쁨, 행복, 즐거움으로 반짝거릴 때가 있을 뿐이다. 존 덴버의 노래도 있듯이 '어떤 날은 돌덩이일 때도, 어떤 날은 다이아몬드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일상'은 나날이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익숙한 일들의 연속을 말하는 거지만, 사람들은 매일 다르게 살아간다. 다를 게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일상도 매일이 다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이 늘 새롭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늘 같은 태양이어도, 아침에 뜨는 해가 늘 새롭듯이, 우리의 삶도 매일이 같은 것처럼 살아가지만, 사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힘겨운 노동으로 지친 노동자의 하루는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또 다시 힘든 노동의 하루가 되겠지만, 그 노동의 시간 속에서 노동자는 웃고, 울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우울하고, 불행하고, 절망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재벌이라해도 특별히 다르지 않다. 누구의 삶이든 사회적으로 놓인 처지와 계급의 위치와 경제적 부의 많고 적음이 다를 뿐, 희노애락을 느끼는 순간은 모두에게 있다. 자본주의 체제처럼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가 인간의 행, 불행을 단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수의 노동자와 빈민이 체제의 근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일상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유는, 개인의 삶은 집단과 체제, 구조 속에서 존재가 많은 부분 강제되고,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자식은 자본가가 되고, 노동자의 자식은 노동자가 된다는 현실은, 개인이 무언가 되고자 하는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인류는 집단 생활을 시작하고 정착하면서부터, 정확히는 농업, 목축업 등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부터 계급 사회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한계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자체로 그들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지배 권력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지배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만들고, 폭력기구(군대, 경찰 등)를 운용하며, 언론을 통해 계급의 이익을 세뇌시킨다. 피지배 계급은 지배 계급의 그런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투쟁한다. 이 자체로도 이미 '평범한 일상'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이것이 '개인'의 단위로 내려가면 투사에서 반동까지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경제적 부의 축적만을 두고 만족과 불만족을 표현한다면 재벌은 모두 만족해야 하겠지만, 그들에게도 불만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는 사람은 경제적 부, 경력, 경험, 사회적 지위, 자신의 능력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도 등의 다양한 요소들의 집합이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자기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자아도취에 빠졌거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비평범성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구조 속에 놓은 한계가 뚜렷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사는 사람도 있고, 날마다 조금씩 다른, 발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 삶은 중단되고, 소멸되겠지만 살아서 활동하는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심청전
    19금 심청전 아버지라고 믿은 내가 미친년이지. 어려서 동냥젖으로 나를 키웠다고, 맹인으로 살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어린 딸자식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아버지라는 인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에 자기 자랑을 늘어 놓으면서 부모 은혜를 갚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굳은살이 앉도록 떠드는 꼴을 그때는 몰랐지. 어떤 사기꾼 새끼에게 속아서 쌀 삼백석을 살 만큼의 돈을 뜯기고는 갚을 길이 없으니, 뱃놈들에게 나를 팔아 넘긴 아버지라는 인간을 대체 어째야 한단 말이냐. 사정 모르는 이웃들은 아버지 눈 뜨게 한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었다고 나를 효녀라고 말하지만, 씨발, 효녀는 무슨 개뿔이 효녀냐고. 이제 겨우 열네 살짜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청춘이 아버지 눈 뜨게 한다고 내 목숨 바치는 게 효녀냐고! 쌀 삼백석에 눈을 뜰 리도 없지만, 설령 눈을 뜬다 해도 다 늙은 인간이 자식 목숨값으로 눈을 뜨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좋겠냐고, 씨발. 중국을 오가는 상선에 개끌려가듯, 형장으로 가는 사형수가 뒷걸음질치듯 끌려가니 뱃놈들이 어린 여자라고 추근거리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보시나 하고 가라고 치마 속으로 그 더러운 손을 집어넣질 않나, 썩은내나는 주둥이를 뺨에 대질 않나, 정말 원통하고 기가 막혀서 서러운 눈물만 흐르는구나. 깊은 밤, 이제 곧 죽을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갑판에서 선원들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인즉슨, 내 아버지 심학규는 봉사가 아니고, 맹인인 척 행세를 하며 살았다는 것이고, 쌀 삼백석은 도박을 하다 빚을 져서 빚대신 나를 팔아 넘겼다는 것이었다. 봉사가 아니면서도 봉사처럼 살았다면, 어려서 동냥젖을 먹일 때도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내놓고 젖먹이는 걸 다 봤다는 것이고, 내가 방에서 옷 갈아 입는 것도 다 봤다는 말이 아니냐. 아버지라는 인간이 어쩌면 이렇게 파렴치하고 야비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들리는 말이, 내 친엄마는 나를 낳고 죽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지어낸 말이고 이웃 마을에 사는 뺑덕이라는 여자가 내 친엄마라고? 뺑덕이네가 이미 남편이 있는데, 심학규하고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이가 바로 나라고? 아이고, 씨팔, 이게 왠 말이냐. 정말 구역질나서 못 듣겠네. 내가 그런 인간을 위해서 열 살부터 새벽에 일어나 남의 집에 품팔이를 하고, 밥을 얻어와 아버지를 섬겼으니, 내가 미친년이구나. 그렇다면 사기를 당했다는 그 쌀 삼백석이 바로 뺑덕이네하고 같이 살려고 나를 팔아 마련한 돈이고, 자식 팔아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저 심학규하고 뺑덕이 같은 괴물을 부모로 둔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이냐. 이제 더 살고 싶지도 않고, 살아봐야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만 있을 뿐이로구나. 어려서부터 밑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품팔이에 동냥에 하루를 넘기기가 괴롭기 이를데 없었는데, 이제 편안히 저 바다에 빠져 죽으면 물고기 밥이라도 되어 좋은 일을 하겠구나. 세상에 태어나 부모 사랑을 이슬 한 방울만큼도 받지 못하고, 지지리 궁상에 뼈저린 노동으로만 십여년을 살다 가니, 내 인생도 가련타.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춘향전
    19금 춘향전 아이, 씨발. 변사또 새끼가 자꾸 수청들라는 걸 쌩깠더니 칼을 씌워서 감옥에 처박았네. 빈대하고 벼룩이 어찌나 물어뜯던지, 가려워 미치겠네. 오줌이 마려워도 방광이 터질 때까지 참아야 하고, 목물도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해서 냄새나고, 아 짜증나 씨발 진짜. 몽룡이 이 새끼는 출세해서 양반부인으로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한양으로 튀더니 씨발새끼, 일년이 지나도록 꿩궈먹은 소식이고, 향단이 년은 방자 새끼하고 눈이 맞아서 옥바라지는 커녕 애새끼를 가졌다고 배를 뒤뚱거리면서 끙끙대며 자세나 하고...믿을 년놈 하나 없는 신세가 처량하구나. 변사또 씨발놈, 나이는 환갑도 넘은 늙은 꼰대새끼가 밝히기는 더럽고 지저분하게 밝히고 지랄이야. 꼭 쥐새끼처럼 생겨가지고 눈깔은 희번득거리고, 혓바닥은 날름거리고, 목소리를 간사한 새끼가 뇌물로 전라감사 자리를 얻어차더니 본전 뽑으려고 양반, 중인, 상놈 가릴 것 없이 불러다 볼기를 치고 돈을 뜯어내는 꼴이 아무래도 제 명에 죽지는 못하리라. 아는 기생 언니가 변사또 새끼 수청들러 들어갔다가 변태짓만 한다고, 재수 옴붙었다고 하더니, 씨발새끼, 힘도 없는 놈이 예쁜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 변태 쓰레기 인증을 하는구만. 옥에 갇혀 있으니 하루가 길고도 길구나. 보리밥에 짠지로 하루 한 끼를 먹으니 살이 빠져서 좋긴 한데, 빈대피로 난을 친 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고역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지나간 세월을 되새기고,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괴로운 시간을 잊고자 하지만, 즐거움을 잠깐이고, 괴로웠던 시간은 길고도 오래구나. 몽룡이를 처음 만날 때의 설레이던 마음, 둘이 첫날 밤을 보내던 짜릿하고 쾌락으로 몸부림쳤던 밤은 잠깐이고, 몽룡이가 서울간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고 서러웠지만, 공부해서 출세할 몽룡이를 붙들고 내 행복만 추구한다면, 남자의 앞길을 막는 것도 옳지 못한 일이고, 나 자신의 삶도 그것만으로 행복하지는 않을 듯 했다. 몽룡이가 서울 가서 다시는 나를 찾지 않는다 해도, 나는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몽룡이와 동침한 것은 오로지 나의 의지였으므로 그것으로 몽룡이를 원망할 마음은 없다. 이제 날이 밝으면 또 변사또 새끼가 동헌 마당으로 끌고 나가서 옷 위에 물을 뿌리고 주리를 틀거나 볼기를 치겠지. 하얀 모시옷에 물을 끼얹으면 속살이 다 드러나서 벌거벗은 것보다 더 선정적으로 보이는데, 변사또 개새끼는 이런 내 모습을 노골적으로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직 이팔청춘 젊은 여자의 몸이라 피어나는 목련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내 몸은 내가 봐도 탐스럽고 아름다운데, 저 늙은 변태 새끼의 눈에는 얼마나 황홀하게 보일까. 몽룡이도 나에게 첫눈에 홀딱 반한 첫번째가 바로 내 풍만한 몸 때문이었음을 잘 안다. 나 역시 단오 때 그네를 타는 이유가 멋진 선비를 만나기 위함이라는 걸 숨길 생각은 없다. 단오날이면 청포로 머리를 감고, 저고리도 일부러 짧게 만들어 속살이 언듯 비치도록 입고, 그네를 구를 때마다 속치마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도 의도한 바 있는 것이다. 몽룡이는 그런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 집까지 쫓아왔고, 나도 그에 관한 소문을 이미 들은 터라 싫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몽룡이는 양반의 자제이고, 이미 서울에서 공부하는 명문집안 자식이니 관기의 딸인 나를 보러 올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리라. 늙은 사또 새끼는 내 몸을 탐하고, 멀리 떠난 님은 기약이 없고, 나는 여기 옥에 갇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구나. 여자로 태어나 이렇게 남자 새끼들의 노리개로 수모를 당하다 제 명도 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구나. 여자가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세상은 언제나 오려나. 오늘도 달이 휘영하구나.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화성
    화성 뜨겁고 후텁지근하고, 후끈거리는 낮시간이 지나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마치 고양이를 피해 쥐구멍으로 달아나는 생쥐처럼, 날카롭게 박히는 햇살을 피해 집안에서도 그늘진 곳을 골라 낮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었다. 달궈진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를 녹일 듯 후끈거렸고, 한증막에 들어앉은 듯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해야 겨우 뜨거운 하루를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찬물을 머리부터 쏟아붓는 샤워기 아래에서, 이렇게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열기가 식고,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열기가 계속 뿜어져 나와 열대야로 이어지겠지만, 다행히 내가 사는 시골 마을은 마을 주위로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이어서 해가 지면 온도가 낮아졌다. 마침 보름달이 뜨고, 뉴스에서는 오늘 화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로 불과 5천7백만 km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 지구의 둘레가 불과 4만km인걸 보면, 화성까지의 거리는 100배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숫자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화성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름달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작고 동그란 별이 화성이라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화성이 오늘은 눈으로 봐도 크게 보일만큼 잘 보였다. 무려 5천7백만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화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낮에 40도 가까운 열기에 비하면, 한밤의 시원함은 뜻밖의 선물처럼 반가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이는 보름달 아래 붉게 빛나는 화성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앞이 밝아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이 하얗게 밝았다. 아침인줄 알았으나 해가 뜬 것은 아니었다. 겨우 눈을 떠보니 밝은 빛 아래 낯선 물체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지만 밝은 빛과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인 것만 보였고, 내가 있는 곳이 낯설었다. 낯선 물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반투명 물체로, 나를 떠받치고 어딘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투명한 공의 내부에 갇혀 공중에 떠 있었다. 잠시 뒤, 나를 가둔 투명한 공은 어떤 물체의 입구로 들어갔고, 그곳은 움직이는 물체의 내부같았다. 나는 투명한 공 안에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내부는 마치 젤리처럼 부드러웠다. 투명한 공을 실은 물체 역시 투명해서 바깥과 내부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벽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나는 어두운 공간 속에 있었는데, 바로 아래 지구가 보였다. 내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꿈은 아니었고,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지구는 빠르게 멀어져갔고, 곧이어 달이 크게 보였다. 달 표면의 곰보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달도 곧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이내 작아졌다. 잠시 어둠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했지만 눈앞으로 붉고 커다란 별이 나타났다. 나는 직감으로 그 별이 화성임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왜 화성에 있는지, 어떻게 화성에 도착했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무신론자에, 미신이나 유령 따위도 믿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라고 자부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니 우주 공간에 떠있다는 상황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나를 싣고 떠다니던 비누방울 같은 투명한 공은 붉은 흙과 돌이 있는 땅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쉬고 있었고, 중력도 느끼지 못했다. 붉은 땅을 딛으며 텅 빈 공간을 걸었다. 그곳은 황량한 곳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낮은 언덕의 바위 아래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서 맞닥뜨린 것은 철문이었다. 철문 앞에는 벨이 있고, 벨을 누르자 천정에서 불이 켜지고, 파란 불빛이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스캔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철문이 갈라지듯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화성의 지하는 마치 지구의 어느 아름다운 계곡을 옮겨온 듯 했다. 녹색의 식물과 나무들,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과 협곡이 보였다. 강을 따라 작은 방갈로가 늘어서 있고, 허공에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화성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풍경은 꿈에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이 화성이라고 믿을 수 없었고, 아마 지구의 어디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가워. 내 별에 온 걸 환영해. 나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소년이었다. 그때, 그 깊은 밤, 중미산 도로에 나타났던 바로 그 소년. 나에게 '내 별에서 봐'라고 말하고 사라졌던 소년이었다. 그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있지 않았다. 어떻게 여길... 나는 놀라서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좀 피우고 본드 좀 빨았다고 아버지 새끼가 여기로 보냈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는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다른 별을 다니면서 이상한 놈들을 몇 놈 데려왔지. 자칭 왕이라는 새끼, 지식인이라는 새끼, 알콜중독자 새끼, 자본가 새끼, 늙은 노동자, 지리학자 새끼 등등... 다들 바쁘다는 놈들인데, 알고보면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들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군. 저 새끼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아저씨가 직접 보라구. 소년은 망토를 펄럭이며 앞장 서 걸었다. 방갈로마다 소년이 말한 사람들이 한 명씩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받아 TV도 보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주방에서 직접 밥도 해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겉으로만 보이는 생활이었다. 밤이 되고-지하공간에도 밤과 낮이 교대로 찾아온다-달이 뜨면, 채찍을 들고, 밧줄을 든 거대한 몸집의 악마들이 그들의 방갈로를 찾았다. 왕이라는 자, 지식인, 알콜중독자, 자본가, 지리학자들은 그 악마들에게 강간당했다. 밧줄에 묶인 채 채찍으로 맞으며 거대한 악마에게 강간당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영원히 회개해야 하고,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나는 저런 새끼들이 진짜 역겨워. 권력만 좇는 놈들, 지식 사기꾼 놈들, 자본가 새끼들, 국회의원 새끼들, 판사 새끼들... 저것들에게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줘야 했어. 아저씨도 죄를 지으면 저렇게 될 거야. 나는 속으로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떠올리려 했다.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나도 저들처럼 영원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어떤 아저씨를 만났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더군. 씨발, 아저씨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거든.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먼저 말하는 아저씨는 요즘 보기 드물어.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더군. 좀 병신같았어. 사람들이 오히려 그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하얀 국화꽃을 던지며 울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어. 나는 그 아저씨에게 물었지.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아내라고 하더군. 늙고 병든 어머니도 계시지만,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많이 고생했고,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아내는 동지이자 선배였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자기 아내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저씨는 본 적이 없어서 좀 이상했어. 소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절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아직 그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 아저씨를 좀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 아저씨는 좋은 곳으로 갔어. 내가 있던 B-612 행성에서 가까운 곳인데, 그곳에서는 지구가 잘 보여. 하루 두 번 해가 뜨고, 두 번 해가 지는 별이지. 그 아저씨는 첼로를 잘 켜더군. 첼로 소리에 따라 별이 켜지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어날 거야. 그러니 그 아저씨를 찾지 않아도 돼. 아저씨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그 아저씨를 기쁘게 하는 거야.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소년을 품에 안았다. 알았어. 그 아저씨를 잘 부탁해. 나도 그 아저씨가 살고 있는 별을 늘 바라볼께. 그리고 잊지 않을께. 첼로를 켜는 그 별에서는 별이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고 있다는 걸. 나는 다시 투명한 비눗방울을 타고 지구도 돌아왔다. 보름달 아래 작지만 커다란 화성이 빛나고 있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소년
    소년 몹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체 리듬이 깨지고, 정신이 흐트러지는 상태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더위는 육체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고, 육체 내부에서는 화학적 변화가 발생한다.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고, 피가 끈적거리며, 피부에서는 분비물이 솟아나온다. 운전을 할 때도 정신을 집중하기 어려운데, 밤에 운전하는 건 더욱 그렇다. 엊그제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어올 일이 있었다. 평일의 늦은 밤에 중미산을 넘나드는 자동차는 거의 없다. 마침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고,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이어서 도로에는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유일하게 밝은 빛이었다. 구불거리는 도로는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 멧돼지, 들고양이들이 있어 자칫 로드킬을 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속도를 올릴 수도 없었다. 내가 아는 어떤 인간은 로드킬을 즐기는 변태가 있었는데, 일부러 동물을 때려죽이지는 않아도 도로에서 동물을 발견하면 피하지 않고 자로 치어죽이는 놈이었다. 동물을 차로 깔아뭉갤 때의 그 느낌, 뼈가 부러지는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피가 튀는 장면을 듣거나 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한다고도 했다. 동물을 치어 죽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새끼라니. 싸이코 변태가 틀림없었다. 운전하면서 그런 싸이코 변태를 떠올리는 건 퍽 기분 더러운 느낌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인간이 떠올랐다. 아마 캄캄한 도로를 달리면서 로드킬을 걱정했기 때문이리라. 중미산 입구-한화콘도 입구-에서 40km 정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도로 중간에 과속방지턱까지 만들어 놔서 속도를 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작년에 이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외제차를 몰며 레이스를 하던 어떤 병신과 곡예운전을 하며 오토바이를 몰던 애송이가 정면으로 부닥쳐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난 뒤로 의정부 도로관리 사업부에서 과속방지턱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었다. 게다가 이 도로에서 나도 처음 고양이를 자동차 바퀴로 깔아버린 매우 불쾌하고 마음 아픈 기억이 있어서 여기를 지날 때마다 그때의 일로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때는 산쪽에서 고양이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나는 차를 멈출 순간도 없이 고양이가 바퀴 아래로 깔리는 걸 몸으로 느끼고 말았다. 고양이는 차에 치었고,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나는 손이 떨리고, 마음이 흐트러져 진정하기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로드킬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중미산의 초입을 지날 때면 더욱 조심하게 된다. 사위는 고요하고, 짙은 어둠 속에서 불과 십여 미터 앞의 자동차 불빛만으로 산길을 오르는데, 상향등을 켜면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동물은 빛에 꼼짝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도로에 동물이 있을 때는 상향등 때문에 동물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중미산의 중간쯤에서 도로가 직선으로 뻗은 곳에 이르렀을 때, 앞쪽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빛을 발견했다. 헤드라이트 빛에 반사해 반짝거리는 동물의 안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속도를 더 늦추고 모습이 보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작은 동물이 도로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비상등을 켰다. 사람의 눈은 밤에 안광이 나오지 않는다. 동물의 눈에서만 파랗게 안광이 보인다.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년 같은 사람은 눈에서 파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지만 체구가 작아서 두려움은 없었다. 그래도 공포가 뒤통수를 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칼이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차는 멈췄고, 불빛에 드러난 작은 체구의 사람은 소년이었다. 눈에서 나오는 안광도 사라졌다. 소년은 조금 어리둥절한 듯 했고, 약간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소년을 조금 더 관찰했다. 낡은 옷을 입고, 오른쪽 손에는 장미꽃을 한 송이 들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약간 내리고 소년에게 물었다. 이 밤중에 너 혼자 여기에 있는 거니? 부모님이나 같이 다니는 사람은 없어? 소년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선뜻 차에서 내릴 용기는 없었다. 주위에 누군가 숨어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나를 납치할 수도 있고, 저 소년은 그저 미끼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이 어디야? 근처에 놀러왔니? 소년이 울지 않는 것도, 어둠 속에서 놀라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평범한 소년이라면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정신이 나갔어야 할텐데 말이다. 소년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켰다. 하늘은 여전히 구름이 드리웠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야 할지 망설였다. 소년을 차에 태워야 하나? 경찰서로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 경찰을 불러야 하나? 119에 신고해야 하는 건가? 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소년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도망가야 하는 건 아닐까. 저 소년이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괴물인지, 귀신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어서 더욱 공포가 커졌다. 소년은 운전석 쪽으로 다가오더니 장미꽃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였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천천히 장미꽃을 잡았다. 소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별에서 봐. 소년은 차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서 사라졌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혐오 감정의 스펙트럼
    혐오 감정의 스펙트럼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특정 집단을 혐오하게 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그것을 의식할 수도 있고,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 보면 '혐오하다'는 '미워하고 꺼리다' 또는 '싫어하고 미워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다. 사람(개인)은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집단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혐오 감정을 그 대상자에게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혐오 감정의 시작은 '나와 다르다'에서 나온다. 이때 '나와 다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말한다. 가치관, 철학, 역사와 사회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의 세계관은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되는데, 올바른 역사의식과 비판적 사회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감정적 혐오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혐오 감정은 다분히 주관적(나와 다름)이고 감정적(기분나쁘다)인 멘탈을 바닥에 깔고 있으므로, 보통의 지식인이라면 이런 낮은 단계의 혐오 감정에 동의하거나 감정이입 하지는 않는다. 혐오 감정은 또한 상대적이다.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면, 혐오의 대상자 역시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문제는, 기득권(다수)과 소수자의 사이에 혐오 감정이 발생할 때, 지식인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소위 '태극기부대'라고 하는 극우세력이 있다. 이들은 소수집단이지만 매우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극우들은 세계적으로도 혐오의 대상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확신하는 세계관이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몰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소수이건 다수이건 상관 없이, 그들은 올바르지 못한 역사, 정치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숫자로는 남성과 여성은 지구에서 거의 절반씩이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며 여성 개인이든, 사회속 여성이든, 한 가정의 여성이든 차별받고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여성은 숫자와 관계 없이 사회적 소수자에 해당한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 마초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은 남성에게 끊임없이 혐오대상자가 된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흐름과 동일하며, 폭력의 대상을 약자에게 돌리는 체제의 술수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이해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은 가해자이며,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도, 경계도 없으므로 남성 일반은 여성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의 '남성 혐오'는 정당하며,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워마드'와 같은 패륜 페미니즘에 관해서는 접어두자. 여기 게이나 레즈비언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적어도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자기 앞에 있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혐오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가 성소수자이기 이전에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천부의 인권을 가진 인간인 이상, 그의 성적 취향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혐오하거나 비웃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성애자가 다수인 세상에서 성적 소수자들이 그들의 성이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문제삼아 혐오하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으며, 반감을 드러내는 것은 폭력이다. 그렇다고해서, 성소수자의 모든 행동이 정당하거나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패륜 페미니즘의 행동이 오히려 정당하고 건강한 여성운동을 파괴하는 극우적 행동이라는 것을 지적했지만, 성소수자들이 보여주는 일탈-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골적인 성 묘사-을 보면서 그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혐오 감정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며, 그들의 성적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벌이는 퀴어 퍼레이드가 보기 싫을 수 있는 것이다. 대낮에 음란한 외모와 행동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성소수자가 하는 모든 행동과 행위와 주장에 동조, 동의해야만 하는 것인가? 오히려 극우 집단의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들 개개인의 성향을 들여다보면서 극우 집단의 몰역사, 반사회성을 비난하면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선량한 사람이 많겠지만, 더러는 사악하고 야비하며 폭력적인 인간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관계 없이 인간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성향의 다양성에 비추어 개인의 호불호를 판단한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 성소수자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그들의 인권은 물론이고-그들이 보여주는 '행위'가 불편한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동성애자 연락처를 적어 놓는 것이나, 화장실 벽에 구멍을 내서 그 구멍을 통해 동성애를 하는 짓이 '당연'하다고 보여지는가 말이다. 보기에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그걸 말하는 것이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이성애자와 성소수자의 차이이고 간극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성소수자 개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감정도 없다. 그냥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할 뿐이다. 내가 '홍석천'에 대해 갖는 감정이 보통의 남성을 보는 감정과 똑같은 것처럼. 다만 그들이 집단으로 보여주는 특정한 '행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고, 그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말조차도 '혐오'라고 한다면, 나는 지극히 당연하게 '혐오하는 사람'이 될 용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소수자(그것이 성이든 장애든)'에 대한 배려나 옹호도 '혐오'라고 말한다. 즉, 어떠한 비교도 '혐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장애인이자 이성애자인 나는(그리고 많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해 어떠한 '태도'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자신들이 '소수자'라고 강조하면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핍박과 억압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옹호하고, 배려하려는 사람들(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 여기서는 이성애자로만 국한하자)이 정작 지지, 배려, 옹호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수자를 차별한다고 하고, 성소수자가 하는 특정 '행위'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혐오'라고 주장할 때, 과연 누가 '소수자'의 입장에 설 것인지 의문이다. 극단적 페미니즘이 오히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극단적 입장은 성소수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성애자들로 하여금 경계를 하게 만들고, 심하게는 진짜 성소수자를 '혐오'하게 만든다. 적과 동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천박한 인식으로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아마 그들은 모를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군대폭력의 기원
    군대폭력의 기원 한국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다른 어느 나라 군대의 폭력보다 잔혹하고 악랄하다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동의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준전방에서 30개월 군복무를 한 내 경험으로도 군대 폭력은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했다. 한국 군대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일본강점기의 일본군대 영향이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한다. 많은 부분 사실이다. 일본군은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인을 군대에 강제로 끌고가서 전쟁에 끌어들였다. 군대에서 조선인은 2등 국민으로 취급받았고, 폭언, 폭력을 휘둘렀다. 해방 후에도 이런 부정적 전통은 이어졌는데, 일본군대의 장교였던 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나서 일본군의 잔재는 고스란히 한국군으로 이어졌다. 일본군대에서 폭언, 폭력을 배운 조선군인들은 해방되고 한국군의 탄생에 깊이 관여했으며, 그들이 군대의 주요한 위치에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남한의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 미국 군정의 복합 요인이 한국 사회와 군대에서 친일파가 판치는 세상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군의 더러운 전통은 일본군대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군대의 폭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군대에서 폭력이 발생한 이유는 당연히 전투와 관계가 깊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투는 소총을 들고 싸워도 매우 원시적이고 미개한 방식이었다. 소총이 발명된 15세기 이후, 소총을 보유한 군대는 칼과 활을 든 적들과 싸워서 높은 승률을 유지했다. 소총의 사거리가 활보다 훨씬 길고,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소총부대는 당시 과학기술이 발달한 유럽의 일부 국가들과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보유하고 있었다. 초기 소총은 '전장식'이어서 총알을 총구 쪽으로 넣어야 했다. 한 번에 한 발씩 사격할 수 있었고, 총을 한 번 쏜 다음에는 총열을 닦고, 총알을 넣어 장전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빨라야 20-30초였는데, 이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 칼과 활을 가진 적들이 소총 부대를 향해 달려오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총부대는 2열, 3열로 서서, 1열이 총을 쏘고 재장전을 할 때, 2열이 다시 소총을 쏘고 장전을 하고, 3열이 소총을 쏘고 장전할 때 1열이 장전을 마치고 다시 발사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발사 속도의 간격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 경험이 적은 나이어린 군인들은 소총을 한 번 발사한 다음 장전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적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을 쏘고,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는데, 코앞까지 달려오는 적을 보면서도 장전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전열을 이탈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렇게 전열에서 이탈하는 군인을 막기 위해 구타가 시작된 것이다. 즉, 군대에서의 구타는 봉건시대의 유물이다. 서양의 군대들이 봉건시대를 벗어나면서 현대 군대에서는 더 이상 병사에 대한 구타가 존재할 이유도 없고, 구타가 범죄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것은 인권의 신장과 함께 민주주의의 기본 인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근대, 봉건, 식민지의 군대 경험에서 벗어날 기회가 없었던 한국군은 일제군대의 경험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군부의 일본군에 대한 향수가 군대의 구타를 용인하고 존속하도록 했다. 결국 한국군은 지금도 전근대와 봉건, 일제군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과학, 역사, 철학, 예술
    과학, 역사, 철학, 예술 핀란드에서는 학교 교육과목을 모두 없앴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육과 관련해 늘 생각하던 내용을 조금 정리했다. 나는 현재의 학교 교육을 혐오한다. 한국의 학교 교육 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교과서 중심의 학습 내용을 증오한다. 나는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해서 오히려 제도교육의 억압을 덜 받은,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고,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늦게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푸코의 지적처럼, 학교는 감옥과 같다. 근대의 집단시설인 병원, 감옥, 학교는 동일체라는 것을 푸코는 명징하게 증명한 바 있다. 근대(1700년대부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많은 것을 발명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문명이 개화하면서 인간의 삶은 옛날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게 분화하기 시작했다. 계급은 그 전부터 존재했지만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계급의 대립은 날카롭고 격렬하게 변화했다. 자본주의의 착취가 잔혹할 때, 그 속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탄생하고, 이념의 대립과 과학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무기화로 종종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로 농경사회였던 중세 이전의 시대에는 피지배계급, 착취당하는 자들은 문자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지식인들이 곧 지배자였고, 문자를 아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무지렁이'들은 땅을 파고, 소, 돼지를 기르고, 물건을 만들고, 집을 짓는 일을 했다. 그들은 신의 대리인(교황)을 두려워했고, 봉건 영주와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식이 없었기에 그들이 아는 세계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기계의 도입과 대량생산, 노동자의 노동이 이윤의 핵심이었다. 노동자들은 배우지 못했고, 글도 몰랐으며, 매우 어리거나, 어리석은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기계를 움직이고, 설명서를 읽고, 작업지시서를 읽어야 할 필요가 생기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도 글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초의 학교는 노동자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은 결코 자본가의 시혜나 너그러움, 인류애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본가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를 교육시킨 것이고, 공장 노동에 필요한 만큼의 지식만을 가르쳤다. 근대의 계몽주의는 무지와 몽매의 상태에 놓여 있던 민중이 스스로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진보적 지식인과 시대의 요구-자본가의 이윤 추구와 과학기술, 이성의 발달-에 의해 폭넓게 확산하게 된다. 자본가에 의한 교육의 시작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진보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도 봉건제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와 자본가의 역할이 혁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파한 바 있듯이,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제도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아 읽고 쓰기가 가능해지면서 사회의 진보가 더 빠르고 넓게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의 새로운 주인으로 떠오른 자본가는 구시대의 권력자들이었던 봉건 왕족들과 귀족, 종교집단의 권력자들과 같은 고민에 빠진다. 즉 민중을 억압하고, 그들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이익과 이윤을 위한 도구이자 소모품으로 쓰고자 하는 필요를 갖게 되는 것이다. 봉건시대 이전까지의 권력자들은 신정일치를 통해 민중을 어리석은 상태에 가두고, 비교적 수월하게 통제, 억압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시대에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봉건적 전통에 따라 봉건노예를 부리듯 하루 16시간의 노동과 아동노동, 여성노동이 당연했고, 노동자의 평균 생존연령이 30대를 넘기지 못할 정도였다.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으로 노동시간은 단축되고, 아동노동은 금지되었으며-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지만-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과잉노동의 시대다. 자본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학교에서, 자본가가 원하는 내용의 교육을 받고, 자본가가 필요한 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이었다. 그와 함께 교육의 의미와 외연이 확장되어 갔고, 기초학문과 자연과학의 비중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학교는 정확하게 사회의 요구-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요구-만큼 교육 내용을 구성한다. 학교는 교과 과정도 그렇지만, 학교 자체가 자본주의의 축소판으로 작동한다. 즉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진학하고, 치열한 성적 경쟁을 통해 학교와 직업, 직장의 순위가 결정되도록 만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자본(가)의 일관된 요구이자 필연적 과정이다.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 자체로 감옥이며 자본의 노예를 생산하는 생산 공장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자본주의적 요소가 존재하고, 반자본 운동의 영향이 학교의 영역을 확장하고, 자유와 반자본, 학문의 역할을 바로 잡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드물고 소수의 영역에서만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는 대학교를 가기 위한 입시학원이며, 대학은 취업을 위한 입시학원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뿐 아니라 여러 개의 학원을 전전하며 사교육을 받아야만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갈 수 있다고 믿는다. 사교육 시장 또한 거대한 자본시장이며, 그 시장에 돈을 빼앗기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이다. 즉, 자신들의 임금에서 많은 부분을 아이의 사교육 비용으로 지출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전혀 필요없는 비용이므로, 한국의 부모는 교육에서 이중 지출을 하는 것이다. 교육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려면 관련 법을 많이 바꾸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자본의 앞잡이들인 입법기관의 국회의원들은 결코 그런 혁명적 과정에 동의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 경쟁과 착취는 자본의 기본이자 필수 요소다. 기득권자-자본가, 부르주아-는 물론 노동자 부모들도 자식이 경쟁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기를 기대한다. 즉, 부모의 욕망이 자본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 서민, 자영업자인 부모들의 의식이 낮은 단계에 있고, 계급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민중의 다수는 어리석다.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빠르게 후퇴할 때도 많은데, 민중, 쁘띠 부르주아들의 의식이 균일하지 않고, 진보적 태도와 보수적 태도가 상황에 따라 바뀌며, 기본적으로 지식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당장 가능하지는 않지만,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어리석은 부모라도 자신들은 물론, 자식들에게 종교를 믿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성인 이전의 청소년, 어린이에게 종교의 물이 들도록 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종교가 득세하는 사회는 무지와 몽매의 단계를 유지하려는 신정일치 사회와 자본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사교육은 물론, 공교육도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문제가 있다면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가 학교나 학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대안학교'가 현재 하나의 대안으로 작동하지만 나는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또래 친구는 물론 다양한 사람을 사귈 수 있고, 그것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으므로 학교나 학원이 대안이 되지 않아도 된다. 책을 읽히되, 과학,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한 책을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이 좋다. 공교육의 교과서는 사회의 규범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 지식을 공통적으로, 표준화하여 가르치고 있다. 국가 단위의 조직에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을 배우는 것은 좋지만, 국가주의, 애국주의, 자본의 노예가 되는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제한하고, 일정한 틀에 가두는 부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공교육의 교과서가 아닌, 서점에서 파는 책 가운데 훌륭한 책을 가지고 주로 과학, 역사, 철학, 예술에 관해 공부하고 기초를 다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론적 교육과 함께 어린이나 청소년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 교육으로 집안 살림, 목공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교육, 농사, 임업, 산과 숲, 들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에 대한 이해, 과학 기술의 응용, 인터넷 기술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와 지식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무려 12년(초중고) 동안 지옥같은 학교에서 경쟁과 비교를 당하며 끊임없이 모멸을 느끼고, 굴욕당하며, 수모를 견뎌야 하는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 봐야 한다. 어린시절, 청소년 시기는 한 사람의 삶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시간을 고통과 비참함으로 보내야한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하다. 청소년 자살율이 세계1위인 한국은, 여전히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근본적으로 학교를 철폐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예수
    19금 예수 어느날, 예루살렘에 양아치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자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목수 일을 하지는 않고, 동네 양아치 12명과 어울려 다니면서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다닌다고 했다.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는 어려서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동생들-야고보, 요셉, 유다 그리고 여동생 둘까지-은 모두 목수 요셉과 마리아가 낳았지만, 자신만은 나사렛 근처 외양간에서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주워 길렀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고아라는 것, 양부모가 나쁘진 않았지만 가난한 집안에 자신까지 부담을 주기 싫었고, 로마 군인들이 칼을 차고 다니며 유대인들을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매질하고, 잡아가는 것이 무섭기도 해서 열 두살에 가출했다. 그가 집을 나서서 정처없이 방랑하며 당시 유명했던 실크로드를 따라 갔는데, 문명이 발달한 페르시아를 지나 더 동쪽으로 가서 인도에 도착했다. 어린 예수는 상인 행렬에 끼어 상인들의 심부름을 해주며 밥을 얻어 먹고, 가끔 낙타 위에서 잠을 자며 몇 달이 걸려 도착한 곳이었다. 상인들은 앞으로도 더 동쪽으로 이동해 중국과 조선, 일본까지 갔다 온다고 했다. 그들은 주로 작지만 비싼 상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리로 만든 물건들이 많았다. 상인들은 동방에 한번 다녀오면 큰 돈을 벌었으므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예수는 인도에 들어서서 큰 충격을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믿던 종교는 오로지 한 명의 신이었고, 그 신은 매우 잔혹하고 악랄한 심성으로, 인간을 잔인하게 벌하는 신이었는데, 인도에서는 인간들 만큼이나 많은 신이 존재하고, 그 신들은 대개 너그럽고 다정했다. 그 가운데 그는 '샤카족의 성자'가 남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며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자신이 전혀 상상도 못한 세계가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예루살렘에서나 인도에서나, 페르시아에서나 모두 똑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디에든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있고, 그들이 군대를 움직이며, 군대는 자신처럼 가난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설고 먼 외국에서 동냥과 노동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다니던 예수는 마침 갈라디아로 가는 상인단을 만나 역시 상인들 심부름을 하며 끼니를 얻어 먹으며 다시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예수는 스물 다섯 살 청년이 되었고, 페르시아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동네 청년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었는데, 그건 예수의 외모가 출중하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경험했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신기하고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여행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과장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귀신을 쫓은 이야기,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밥을 먹은 이야기,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야기 등 허무맹랑하지만 신기한 이야기는 무지렁이 우물안 개구리들이었던 동네 젊은이들에게는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예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예수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냈다. 나사렛에는 예수 말고도 장사꾼들에게 자릿세를 뜯는 양아치들이 몇 있었는데, 예수 패거리들이 싹 정리하고, 자신들이 시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사꾼들은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동네 양아치들이 자릿세 명목으로 돈을 뜯어간다고 로마 총독에게 신고했고, 예수 패거리는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도망갔다. 예루살렘에서도 예수 패거리-그들은 예수를 제외하고 12명이었다-는 장사꾼들에게 돈을 뜯었고, 돈이 좀 있는 사람에게 밥과 술을 갈취했다. 예수의 동생 유다는 이런 형(친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은 형이었으므로)의 행동을 보면서 로마군에 저항하고 있는 비밀조직에 알렸다.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 비밀조직은 예수 패거리의 행동이 로마군의 강경한 물리적 행동을 유발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어떻게든 우두머리인 예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예수 패거리가 돈을 뜯어서 자신들의 배만 불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돈을 받거나 상인들에게 자릿세를 뜯어내서는 예루살렘 외곽에 있는 빈민들과 병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다주기도 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예수 패거리가 나타나면 모두 쓰러져가는 오두막에서 나와 기대하는 눈으로 예수 패거리를 바라보았다. 예수는 수레에 싣고 온 음식을 한 사람씩 나눠주며 '너희는 이 음식을 먹고 건강해질 것이고, 이웃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부모를 존경하라'고 설교했다.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여겼고, 그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새로운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예수는 예전에 인도에서 보고 들은 선행을 실천했다. 그것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고, 자신이 가난한 집안의 고아였다는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선행을 해보니 사람들이 자신을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떠받드는 것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 총독부는 예루살렘에 나타난 유대인 패거리가 도시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여겼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사회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예수 패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마침 유다라는 자가 예수와 그 패거리가 사람들의 돈을 뺐고, 거짓말을 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고발하자 예수를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유다는 예수의 동생이었지만 피가 섞이진 않았다. 유다는 유대인 비밀조직에 가입한 청년이었고, 예수가 패거리를 지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의 독립운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유대인 기득권 세력-친로마파-이 예수 패거리를 반로마 집단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예수는 로마군에 잡혀 감옥에 갇혔고, 십자가에 매달렸다. 로마군은 예수의 양쪽 손목과 팔뚝을 밧줄로 묶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 발목을 모아 밧줄로 묶고 역시 대못을 박아 고정했는데, 체중이 아래로 쏠리면서 통증이 지속적으로 온몸을 강타했다. 예수 양쪽에는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매달렸는데, 그들은 빨리 죽여달라고 비명을 질렀고, 로마군은 창으로 도둑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낄낄거렸다. 예수는 죽기 전,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고, 자기를 버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잊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 고아 의식은 심각한 컴플렉스로 남았고, 아버지를 찾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예수는 죽기 전, 그의 패거리 가운데 그나마 말귀를 알아먹는 베드로에게, 자신의 죽음을 남들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부모가 살아 있는지, 찾아보고, 자신의 죽음을 알리라고 부탁했다. 베드로는 그러마고 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열두명의 친구들을 통해 예수의 진짜 부모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친구의 친구, 가족, 친척, 이웃들의 입소문을 통해 예수의 진짜 부모가 마침내 밝혀졌고, 예수의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예수의 엄마는 미혼모로, 베니게 시돈에서 살던 어부의 딸이었는데, 10대 때 강간을 당했다고 했다. 그녀는 임신했고,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전전하다 나사렛의 한 외양간에서 아이들을 출산했다. 예수는 한 명이 아니고 쌍동이였고, 그녀는 외양간에 하나를 남겨두고, 다른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 아이도 조금 떨어진 다른 집 외양간에 두었고,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 어린 미혼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베드로는 30년 전, 외양간에서 발견된 아이가 누구인지를 찾다가 두 명의 아이를 알게 되었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예수를 만났다. 그는 예수와 일란성 쌍동이였고, 평범한 농민의 집에서 자라, 농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베드로가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동생(형일수도 있다)에게 당신의 형제가 지금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니 만나고 싶으면 오라고 했다. 예수가 죽고 십자가에서 내려 동굴에 임시 안치를 한 상태일 때, 예수의 쌍동이 동생이 나타났다. 예수를 따르던 패거리는 살아서 나타난 예수(의 동생)를 보고 경악했다. 외모, 말투, 습관까지 예수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들 패거리는 이 놀라운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예수가 살아났다고, 죽었다가 사흘 뒤에 살아났다고.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19금 어린왕자
    19금 어린왕자 어려서 담배 좀 피고, 본드 좀 빨았다고 씨발, 아버지가 코딱지만한 B-612행성으로 보냈잖아. 거기서 바오밥 나무 싹을 캐는 노동을 하고, 화산 청소부 노릇도 하고, 할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해가 열두 번도 더 지는 걸 바라보느라 정신병에 걸릴 뻔 했는데, 어디서 날아온 장미가 재수없게 시비를 붙더라구. 그 새퀴는 가시가 있어서 목을 조르지도 못하고, 말빨도 존나 쎄서 그냥 내가 철새 다리에 매달려 다른 별로 도망갔어. 그 장미 새퀴, 내가 물 안 주면 아마 말라죽을걸. 어느 별에 갔더니 늙다리 꼰대가 앉아서 '킹 오브 우주'라고 떠들고 있더라구. 아, 씨발, 자기가 왕이라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전부 다 왕이래. 혼자서 왕이라고 떠들어봐야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가만 보니 치매에 걸려서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씨발, 가족이라도 지겨워서 떠났겠다. 혼자 왕 실컷 해처먹으라고 퍽큐를 날리고 다른 별로 갔지. 겉은 멀쩡하고 번지르르한 신사 새퀴가 얼마나 뻐꾸기를 날리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고, 자기가 졸라 멋장이 신사인줄 아나봐. 대가리에 든 건 젤리뿐인지 아는 것도 없는 새끼가 귀족 행세나 하고, 온갖 지식인 흉내를 내면서 품격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우아하고 고상함이 어떻고 하면서 떠들어대는 꼴이 면상을 한방 갈겨주고 싶더라니까. 졸라 병신같은 허영꾼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로 갔더니, 거긴 또 더 진상이 있네. 이 새끼는 하루 종일 술만 처먹는데-그 술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신기하긴하다-잠깐 술이 깨면 술을 처먹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처먹는데. 이런 병신새끼가 있나. 술 처마시는 게 부끄러워서 술을 마시는 논리의 무한루프를 개발한 천재새끼네. 나잇살이나 먹었으면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알콜중독자 새끼를 피해서 다른 별에 갔더니 임대업을 하는 자본가 새끼가 돈을 세고 있더군. 말을 붙여도 돈 세느라 곁눈질도 안 하는 돈귀신 자본가 새끼는, 자기 별도 아닌 수많은 별을 임대하거나 이윤을 붙여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데, 이건 봉이 김선달보다 더 나쁜 놈이야. 돈밖에 모르는 돈벌레 새끼, 돈에 파묻혀 뒤져버려라. 자본가 새끼 낯짝에 침을 뱉고 다른 별에 갔더니, 잠도 못자고 죽도록 노동-가로등에 불을 붙이는-을 하는 늙은이가 있더군. 아, 이 병신같은 늙은 노동자는 쉬지도 않고 일을 하는 거야. 별의 크기도 내가 살던 행성만큼이나 작았는데, 자전 속도가 빨라져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초단위로 바뀌니까 불을 켜고 끄는 일을 쉴 새 없이 반복하는데,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것처럼 미친듯이 움직이더군. 불쌍한 늙은이. 노동자 늙은이는 아마도 지쳐 쓰러져 죽을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저 늙은이가 죽으면 또 다른 늙은 노동자가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나는 다른 별로 갔어. 지리학자가 앉아서 행성들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들에게 정보를 얻어 수많은 별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그 꼰대도 다른 사람들 말이나 듣고 소설을 쓰고 있는 거지, 과학자라면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러다 지구에 떨어졌는데, 하필 아프리카 사막에 떨어졌네. 재수 옴 붙은 거지. 게다가 뱀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내가 '야, 너 존가 가늘고 웃기게 생겼다' 그러니까, 뱀이 '뭐야, 이 꼬맹이 새끼, 뒤지는 수가 있어'라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거 있지. 나는 막대기도 없고 해서 그냥 참았지. 그러다 여우를 만났는데, 요 앙큼하게 생긴 새퀴는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하더군. 나를 집사로 부려먹을 얄팍한 속셈이라는 걸 눈치 채니까, 여우 새퀴, 얍삽하게 실실 쪼개면서 사라지더라구. 사막에서 어떤 남자 어른을 만났는데, 자기는 조종사고,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하더군. 나는 여러 별을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 척 했어. 뭐, 어른들이라는 게 다 그런 거잖아. 애새끼가 말하는 걸 마치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는 거지. 그 조종사는 비행기를 고쳐서 다시 하늘을 날아 사라졌고, 나는 사막에서 40일 동안 돌아다니며 음식도 먹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장미, 화산, 바오밥나무, 여우, 술주정뱅이, 자본가, 지리학자, 늙은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귀싸대기를 후려쳐서 다시 코끼리를 뱉어내게 할 것인지, 작은 상자에 갇힌 어린 양을 무사히 구출할 것인지 생각하다 보니, 사막 끝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주님'이라고 하더군. 내가 왜 저런 무식한 머저리들의 주님이 되어야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열 두놈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꼬드기는데 넘어가고 말았잖아. 그때라도 그 사기꾼 새끼들하고 인연을 끊었어야 하는건데. 결국 사기꾼으로 몰려서 십자가에 매달려 로마군 병사의 창에 찔려서 죽었는데, 씨발, 아버지가 다시 별로 돌아오라고 하잖아. 하는 수 없이 지구를 떠나 코딱지만한 별로 돌아와서 지금도 하루에 47번씩이나 노을을 바라보면서 말린 양귀비 잎이나 태우고 있는 거야. 인생 뭐 있어? 장미꽃 목이나 졸라야겠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 작품명 : 시간의 풍경
    작품명 : 시간의 풍경 이 작품이 발견된 것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잠깐 활동하던 막시무흐 리투어는 사진작가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풍경 사진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소수의 부자들이 소장하고 싶은 콜렉션이었다.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가까운 나쿠루에서 태어났는데, 백인인 그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다. 상아 밀렵이 성행하던 당시 아프리카에서 밀렵꾼을 체포하는 밀렵감시단으로 활약했던 리투어의 아버지는 밀렵꾼이 코끼리를 도살하는 것을 막는 한편, 그 자신이 코끼리 무덤을 발견해 상아를 밀반출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리투어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랐고, 수 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아프리카의 후손으로 믿게 된다. 부자인 아버지 덕분에 사립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는 어른이 되면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리투어가 의사나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고, 어머니는 리투어의 재능이 예술 쪽에 있다고 믿었다. 리투어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지만, 그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상아를 밀반출하던 아버지가 밀렵꾼에게 살해당하고, 그가 저지른 범죄가 발각되어 재산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살 수 없었기에 리투어는 그의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로 가게 된다. 리투어의 어머니는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의 친정 아버지가 리투어 모자를 거두어 줄 경제적 여유도, 가족의 따뜻한 정도 나눠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파리의 외곽에 방 한칸을 얻은 리투어 모자는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고, 리투어는 점원 생활부터 공사장 인부, 지하철 청소부 등 여러 잡일을 하면서 근근히 연명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고,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인 라이카 카메라로 파리의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그는 필름 살 돈이 없어서 카메라 셔터를 매우 신중하게 눌렀는데,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풍경이 눈에 띌 때만 그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그래서 필름 한 통을 다 쓰려면 1년 이상 걸릴 때가 많았다. 자연히 그의 작품은 아주 적었고, 그는 필름을 인화하는 것도 망설일 때가 많았다. 대부분 필름으로 보관하고, 마음에 드는 몇 작품만 인화해 자신의 단칸방 벽에 걸어 두었다. 어머니가 가난과 힘든 노동으로 병-폐결핵-에 걸려 사망하고, 리투어는 고아가 되어 청년 시절을 보내야했다. 그는 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프리카는 너무 멀었고,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딱딱한 빵으로 보내야 했고, 문화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친구가 생긴 것은 도로청소부로 일할 때였다. 거리를 청소하고 있을 때, 그에게 길을 물어 본 사람이 있었고, 그는 동양여성이었다. 낯선 이름의 나라 '꼬레'에서 왔다는 그 여성은 흰 브라우스-그 여성은 '저고리'라고 했다-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검정 치마를 입었고, 단발머리를 한 단아한 모습이었다. 리투어는 동양여자를 몇 번 봤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는 한눈에 그 여성에게 반했고, 그의 생애 처음으로 풍경이 아닌, 여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리투어는 그 여성이 찾고 있던 장소까지 직접 안내하며 데려다주었고, 자신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며 당신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리투어와 '꼬레'에서 온 여성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가난했다. '꼬레'에서 온 여성은 조국의 가족에게서 드물게 수표가 든 편지가 도착했지만 그 돈으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이름은 나혜석이라고 했다-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했다. 그 자신도 사진을 찍는-비록 아마추어이긴 해도-사진작가였기에 그림을 그린다는 동양 여성은 더욱 신비롭고 놀라웠다. 두 사람은 사진, 그림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들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리투어가 쉬는 날이면 두 사람은 루브르박물관, 오랑주리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리투어가 나혜석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준 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고, 나혜석이 다시 '꼬레'로 귀국한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 한 점을 선물했다. 바로 이 사진이 그의 작품이다. 리투어의 작품은 그가 30대에 요절한 이후 집주인이 쓰레기로 버려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작품이 담긴 필름통이 어딘가에서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만일 그 필름통이 발견되면 사진역사에 놀라운 소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혜석은 이 작품을 들고 조선에 돌아왔고,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혜석은 사망하고, 그가 소장했던 이 사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 최근 일본 교토의 한 벼룩시장에서 이 사진이 발견되었는데, 서명도 없고, 작품 연대를 알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 500엔에 팔렸다. 이 작품은 발견하고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리투어를 아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 역시 몇 안 된다는 뜻이고, 그의 작품을 실재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는 얼른 500엔을 주고 이 사진을 받아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단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으며, 작가를 알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우연이면서 필연은 아닐까 생각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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