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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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포르투갈 잘 만든 양장본에 두툼한 두께의 이 그래픽 노블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징이자 장점인 그림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그래픽 노블을 선택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림이다.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림이 수준 이하라면 보고 싶지 않다. 반대로 내용은 별로인데 그림이 훌륭하다면 그것은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래픽 노블에서 최우선 요소는 역시 그림이다. 지은이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고, 이후 만화가로 전업하면서 유명한 만화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책만 봐도 말할 필요 없이 최고의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삼부작으로 구성되었고, 주인공 시몽 뮈샤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만화가지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어느 정도 들어 있고, 삼대로 이어지는 집안의 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시몽은 만화가로 작품집도 발표한 작가지만 심각한 슬럼프 상태에 있다. 그는 애인과의 사이도 벌어지고, 세상 일이 심드렁하고, 삶의 의지도 박약한 상태로 침체되어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열린 작은 만화축제에 참가한 다음, 포르투갈과 자신의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프랑스 사람으로 살아왔던 시몽에게 포르투갈에 자신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 할아버지의 고향이자 뿌리가 포르투갈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사실로 다가오고, 마음이 끌리는 걸 느끼게 된다. 그동안 가족들과도 소원하게 지내온 주인공은 사촌의 결혼식을 계기로 프랑스를 벗어나 포르투갈에서 한동안 지낼 생각을 하게 되고,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포르투갈은 프랑스에서 멀지 않지만, 중간에 스페인이라는 큰 나라가 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처럼 보인다. 포르투갈도 중세 유럽의 식민지 개척 시기에는 강력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유럽에서는 힘이 많이 빠진 중진국이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쇠퇴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의 여건이야 어떻든 이 만화에서는 포르투갈의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진국 수준이지만 이들은 소박하고 낙천적인 성향으로 낯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 걸 보여준다. 주인공 시몽은 자신의 할아버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집안의 역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떨어져 살던 아버지와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 사촌들과도 쉽게 한 식구처럼 가까워진다. 이런 현상은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따뜻한 환대와 열린 마음,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 덕분이기도 한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한 분위기가 시몽의 태도와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시몽의 할아버지는 형제가 프랑스로 취업 이민을 위해 고향 포르투갈을 떠났고,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시몽의 할아버지인 아벨은 프랑스에서 사망한다. 아벨의 동생이자 시몽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인 마뉴엘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고, 두 집안은 그때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반전은 주인공 집안인 무샤의 집안이 어디에서 시작했는가를 알려주는 전설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전쟁을 하던 시기에 포르투갈의 한 마을에 스페인 기사들이 찾아오고, 한 아이를 재워달라고 부탁하고 기사들은 떠나간다. 그 아이는 혼자 남게 되고, 그 마을에서 자라 농부가 되는데, 그가 바로 '무샤' 집안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로만 본다면 '무샤'집안의 뿌리는 스페인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 마지막 이야기는 퍽 낭만적이고 애틋해서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감동이 더하는 이 그래픽 노블은 여러 번을 봐도 좋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유료 서비스
    유료 서비스 이 만화는 '성매매'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선진국인 캐나다에서는 이런 '성매매'가 많은 부분 합법이어서 우리 사회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성매매'는 남성이나 여성-거의 대부분은 여성-의 성착취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합리화할 수 없다. 작가이자 이 만화의 주인공인 채스터 브라운의 주장대로 '성매매의 합법화', '성매매의 자유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성을 파는 사람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작가의 발상은 순진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성매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섹스 없이 한 집에서 살던 여자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가 같은 집에서 동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낀 이후였다. 작가의 동료들이 그 점을 지적하면서 '너의 내면에 여성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쌓여 있다'고 말하지만 작가(주인공)는 이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고, 평온한 심리 상태이며, 여성에 대한 어떠한 분노나 환멸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의식에 자리잡은 감정까지 사람이 알 수는 없다. 트라우마가 왜 생기겠는가. '성매매'를 시작하는 과정을 보면 주인공이 아무리 자신의 처지를 부정해도 '여성에 대한 환멸과 분노'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화의 내용은 철저하게 남성 주인공의 입장과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모두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며, 남성의 시각으로 재단당하고 평가된다. 즉, 여성이 '인간'으로서 동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인식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여성을 존중하는 평균 이상의 지식인이라 해도 '성매매'를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틀 안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지만, 그 여성들이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솔직하게 말했을까는 알 수 없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성매매가 아무리 합법이라 해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책을 두고 수 많은 매체와 인물들이 이 책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작가이자 주인공의 경험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만화는 한 남성의 성매매 경험담이므로, 남성의 시각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주인공의 경험과 시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성매매 여성의 입장에서 수 많은 성매매 남성들의 태도를 바라보는 만화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빨간 풍선
    빨간 풍선 작가는 '빨간 풍선'이라고 써 놓고, 영어 제목은 'The Purple Balloon'이라고 썼다. 의도한 것일까? 이 작품집에 들어 있는 내용은 삶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쉽게 잊어버리기는 어려운, 삶의 찌꺼기, 잔해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만화가는 소설가가 갖지 못한 위대한 장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소설가는 글로만 자신의 상상을 표현하지만, 만화가는 소설가의 글솜씨와 그보다 더 멋진 그림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구축하기 때문에, 내게 만화가는 소설가보다 더 위대한 존재다. 내가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이유는, '만화'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표현하고, 공감을 얻는 창작을 하기 때문이다. 단지 소설만이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심심했을까. 물론 소설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세계가 충분히 있다는 건 알고 있고, 나 자신, 소설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소설보다 만화가 더 좋다고 고백을 하는 건 조금 굴욕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그래픽 노블'을 쓰고 그리는 만화가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만화는 한국의 많은 '만화작가'들 가운데 한 명인 김수박 작가의 작품집이다. 이 만화에 실려 있는 만화는 만화가게에서 무협지를 넘기듯 1초에 한 장씩 넘기는 그런 만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수박 작가의 만화 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모든 '그래픽 노블' 작가들의 작품은 작품 전체를 아울러 깊이와 철학을 발견하는 재미로 천천히, 한컷 한컷 글과 그림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번째 작품인 '개변기'는 상황 자체가 끔찍하다. 이 만화는 개에 대한 극단적 혐오를 드러내고 있어서 동물보호단체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다면-그런데, 이 만화를 그런 사람들이 안 봤을 리 없을텐데,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것도 이상하다-결코 지나치지 않을 내용이다. 하지만, 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를 혐오하는 나'가 아니라, '개와 같은 인간을 싫어하는 나'이기 때문에, 여기서 변기에 빠진 개는 우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 같은 인간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소심한 복수는 그 '개와 같은 인간들'을 변기에 쓸어 넣고, 온갖 화학물질을 들이부어 잔인하게 없애버리는 것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화학물질을 투입해 막힌 변기가 뚫리는 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 떠들썩한 파티를 연다. 변기에 쓸려 내려간 개에 대해 일말의 연민도 없다는 점에서 '나'는 싸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개같은 인간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 아니던가. 일곱번째 작품인 '첫사랑'은 사랑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역겨운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모든 첫사랑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첫사랑의 풋풋하고 애틋한 감정이 시간이 지나 그것을 다시 마주했을 때, 예전의 시간에 갇혀 있던 '첫사랑'과 시간이 흘러 지금 많이 변한 내 모습에서 오는 심한 괴리감이 구토를 일으킬 정도가 된다. 여기서, 변한 것은 '첫사랑'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변한 것을 모르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첫사랑'과의 만남이 결국 '섹스'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의도했던, 생각하지 않았던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역겨운 현실이라는 것에 '나'는 자기환멸을 느낀다. 만화를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다. 만화를 많이 좋아하는 나는 이런 '그래픽 노블'이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는 볼 만한 만화책이 없어서 고민이 아니라, 너무 많은데 사볼 돈이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도바리
    도바리 1980년을 배경으로 주인공 대학생이 경찰에 쫓기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수배자가 되어 도망다니는 '운동권 대학생'을 이 책의 제목처럼 '도바리'라고 했다. 물론 운동권 대학생 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수배자가 되었고, 잡히지 않으려 '도바리'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은 '광주민주화운동'이 공식 인정된 명칭이지만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던 그때는 '광주사태'라고 했다. 모든 언론에서는 광주에 무장간첩이 내려와 시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새빨간 거짓뉴스를 퍼뜨렸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운 것이 바로 그때의 언론이었고, 그 언론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 물론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도 잘 먹고 잘 산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만화의 주인공 김인권은 운동권 학생으로 수배자가 되어 남쪽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그는 '소설가'라고 말하고 작은 마을에서 민박을 하거나, 마음 좋은 노인을 만나 '조카' 노릇을 하며 일도 하고 밥도 얻어먹는다. 그가 찾아다니는 시골의 작은 마을들에는 대개 선량하고 순박한 주민들이 많았지만, 조금 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온갖 타락한 인간관계와 권력구조가 개인과 작은 집단을 억압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결국 거대한 악인 군부쿠데타 세력을 없애면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던 김인권은 자신이 보고 느낀 현실에 절망하고, 경찰에 체포당한다. 80년대 '운동권'은 그때로는 비장하고 고결한 정신으로 적(쿠데타 세력)과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한없이 유치하고 비뚤어진 태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운동권 세력-은 적어도 군부쿠데타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이 나라를 다수의 민중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은 진심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80년대는 여전히 전근대와 봉건의 의식이 많이 남아 있었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마르크스, 레닌을 부르짖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봉건적,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적 질서에 젖어 있던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들(운동권)은 민주주의의 시민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군부쿠데타 세력과 싸워야 했고, 모든 역량은 '반독재, 민주화'의 깃발 아래로 모여야 했다. 결국 전두환이 장기집권의 꿈을 포기하고, 노태우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88년 올림픽이 열리고, 김영삼이 3당 합당으로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을 세울 때까지, 막연하지만 온몸을 던져 싸운 그때의 20대 청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수배자로 도망다니면서 민중 속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폭력을 보며 좌절하는 한편, 후배인 우광진이 전남도청에 남아 쿠데타 세력과 마지막 전투를 치를 때까지의 일기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당대(80년대)의 역사적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탄핵한 것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고, 우리가 직접 만들어 냈다는 것을 가슴 절절하게 느끼는 것처럼, 80년대의 청년들 역시 자신들이 지금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묵직하게 느끼고 있었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피부색깔 꿀색
    피부색깔 꿀색 입양아의 자전적 이야기. 이 만화를 그린 주인공 전정식은 다섯 살 때 고아원에서 스웨덴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서, 과장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가능한 있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지금도 어린이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는 나라이고, 외국의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은 많은 이야기들이 한국에 알려지고 있다. 입양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입양아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아니면 내가 잘 모르고 있거나) 입양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소수 가운데서도 소수의 문제라 사회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어쩌다 외국에서 입양아로 성장한 사람이 유명해지는 경우는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입양아가 갖게 되는 심리적 혼란과 자아 정체성의 불안에 관해서는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깊고 끈질기게 자신의 삶을 끌어당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도 구체적으로 뿌리가 뽑힌 자신의 모습을 여러 번 그리고 있는데, '엄마'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는 그 사람의 온 생애를 불안하게 만든다. '엄마 부재'에 관한 불안은 나도 어렸을 때 느낀 적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아무도 없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먹을 것은 없었고, 낡은 찬장에는 신김치만 한 그릇 있었다. 신김치를 먹고 물을 바가지로 들이키고 나서 동네에 뛰어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땅거미가 질 때까지 놀다 들어와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혹시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뱃속에서 설움이 복받쳤고,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서러움이 복받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책의 저자가 가졌을 막막함과 서러움과 불안과 허무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백인 사회에서 백인 부모를 둔 동양인 아이의 삶이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혹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선진국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한국에서 고아로 자랐을 때 받았을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거라 위안을 삼을 수는 있겠지만, 뿌리가 없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입양아들이 그렇듯, 주인공도 나이가 들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방문한다. 어머니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을 간직한 채 희미한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입양아들 가운데는 친엄마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인공은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 만화는 더욱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고, 입양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질문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부모 밑에서 자란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주인공이 겪는 뿌리 없는 삶의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팔레스타인 - 조 사코
    팔레스타인 - 조 사코 한 권의 만화로 팔레스타인의 삶을 이렇게 깊이 있고 절절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소설이나 논문, 사회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독자를 끌어당기기 어려운 심각하고 진지한 현실을 객관으로 바라보면서도 고통, 슬픔, 분노, 웃음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공감을 얻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수구반동 집단이 집회를 할 때 미국국기와 이스라엘국기를 들고 나타난다. 이들은 특정한 종교를 교조주의적으로 신봉하는 미개한 존재들인데, 이스라엘이 '반기독교'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무지하고 멍청한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봐도 좋다. 하여간, 그런 이스라엘이 제2('이'라고 읽으면 안 되고, '투'라고 읽어야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다.)차 세계전쟁이 끝나고 (미국과 유럽의 비호, 특별히)영국의 비호 아래 지금의 땅을 점령해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웠는데, 문제는 이미 그 땅에서 오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폭력으로 쫓아냈다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꼴이고, 그들이 그렇게 당했다고 사방팔방 떠들어 대던 '유대인 학살'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자본을 동원해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반면, 정작 진짜 피해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할 힘조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 그들이 놓여 있는 처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유대인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어린이, 여성, 노약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 만화에서, 유대인의 폭력은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하고 전쟁범죄이며 반인륜의 행동이지만,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여성과 어린이처럼 사회적 약자가 이중, 삼중의 억압과 폭력을 당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된 타도의 대상은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을 타도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사회적 약자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이 무시된다면,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진보진영 내부의 봉건잔재와 가부장적 폐해, 남성우월주의가 또다른 폭력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대인과의 전쟁 때문에 팔레스타인 내부의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건 전형적인 억압사회의 태도다. 이슬람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봉건적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지 이스라엘과의 전쟁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얽혀 분열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뒤에 국제깡패 미국이 총칼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팔레스타인이 해방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전체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필수 요건이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이든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든 현재의 분쟁을 있게 한 것은 결국 종교 때문이다. 그들은 동일한 신을 믿으면서도 서로를 학살하지 못해 안달하는 중이고, 거의 대부분의 학살은 '신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보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한, 이런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할 것이다.
    • 문화
    • 만화
    2021-09-24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제목 :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작가 : 박건웅 출판 : 북멘토 박건웅은 작품은 대개 충격적이고 놀라운 작품들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가, 시사만평을 그리는 것도 아닌데, 유독 한국현대사의 핵심만을 다루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다. 게다가 박건웅의 작품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그의 그림과 표현 방식은 많은 경우 판화적 표현 기법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흑백 판화는 표현의 강렬함과 함께 이미지가 드러내는 상징성이 탁월한 기법이다. 흑백 그림은 박건웅의 작품에서 특히 '흑과 백' 즉 '선과 악'의 구도이자 '적과 아군'을 상징하며, '생과 사'를 드러내는가 하면, '옳음과 그름'을 판단하게 하고, '지옥과 천국'을 상징하기도 한다. 흑백 그림은 잔혹하고 처참한 사실적 묘사를 지우는 대신, 역사와 진실에 더욱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최용탁의 단편소설을 만화로 표현했는데, 원작의 생생한 언어들을 장면마다 살려내는 박건웅의 그림은, 세계의 많은 그래픽 노블 가운데서 특히 역사를 다루고 있는 그래픽 노블 가운데서는 가장 탁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계의 현대사에서 학살과 관련한 사건은 무수히 많고, 그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건의 양민학살은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다. 이 만화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남한에서 발생한 이 학살은 친일극우정권이 벌인 극악한 범죄의 일부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도연맹' 학살 사건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고 있으며, 친일(사실은 매국)정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감추기 위해 가능한 역사교과서에서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비틀고 있다. 사실이나 진실을 들여다 보는 것은 때로 고통이다. 그저 모르고 살거나, 되도록 기억하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괴로운 역사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되풀이하고, 친일매국노들과 수구반동 집단이 권력을 잡으면, 이런 양민학살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남한과 북한은 분단된 상태로 '휴전' 중이며, 사상 탄압은 변하지 않았고, 반대파를 '빨갱이'로, '좌익'으로 매도하고 그들을 폭력으로 단죄하는 것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이 만화는 과거의 참혹함을 되새기자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한국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할 것을 경계하는 뜻도 담고 있다. '정적(정치적 반대자)'이라는 이유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파리를 죽이듯 양민을 학살하는 정권이 여전하지 않은가.
    • 문화
    • 만화
    2021-09-24
  • 우리, 선화
    제목 : 우리, 선화 작가 : 심흥아 출판 : 새만화책심흥아 작가의 첫 번째 작품. 첫 번째 작품에 이 정도 뛰어난 수준이라면, 작가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솜씨 또한 탁월하다.작가주의 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톤'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것인데, 심흥아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톤'을 쓰되 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만 사용했다. 또한 톤을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고, 명암을 표현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이 작품에 관한 소개를 보자.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지만 속은 다른 봉선화와 봉우리, 그리고 할아버지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나이 드신 아빠, 이렇게 세 사람이 봉씨네 식구이다. 창문이 있고, 장마에 물 들어올 걱정 없고, 세탁기를 놓을 정도 크기의 화장실이 있고, 개수대가 두 개인 싱크대가 놓인 집에 살아 보는 것이 큰딸 선화의 소망일 정도로 소박한 살림살이이다.더 나을 것도 없는 셋집으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던 봉씨네는 쌍둥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이사를 또 하게 된다. 마을버스 기사인 아빠가 안면 있는 승객인 스님의 제안으로 정착할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집으로 사는 곳을 옮기기로 한 것인데, 새초롬한 성격의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못마땅하다. 그렇게 절집 사람들과 식구가 되어 3년째를 맞이한다.선화는 자기 환경을 껴안고 견디며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고자 하고, 언제고 집을 벗어나리라 마음먹고 있던 우리는 계획한 대로 상고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사이 아버지는 드디어 절집에 들어갈 때의 생각대로 온 가족이 모여 살 만한 집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선화와 우리는 쌍동이 자매지만, 선화가 언니 노릇을 하고, 그래서인지 속이 깊다. 하지만 동생인 우리에게서 따뜻한 자매애를 느끼면서, 쌍동이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이야기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선화의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담담하면서 나즈막히 가라앉은 나레이터, 선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집을 떠나 독립하려는 우리가 선화에게 준 선물, 브래지어를 하면서, 본 적도 없는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난다.선화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지만,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먹고 살 준비를 한다. 고생 끝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을 떠났던 동생 우리가 돌아오면서, 삶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선화처럼, 나도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이미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 작품 속에서 선화 아버지는 마을버스 운전을 하며 집안을 이끌어 가는 능력자였지만, 내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백수 노릇을 했다.선화는 엄마의 얼굴을 모르지만, 나는 어머니와 줄곧 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내가 치렀으니, 그런 면에서는 선화보다 조금 운이 좋았다고 할까, 엄마의 그리움을 덜 느낄 정도라고 할까.어린 선화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 독자의 마음까지 성장하도록 만드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 문화
    • 만화
    2021-07-30
  •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책>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으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 작가지만, 참으로 부럽고, 대단한 작가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에도시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떠돌다 정착한다. 사무라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진검이 아닌 대나무검. 진검이자 보검인 쿠니후사는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의 살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노릇을 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세노 소이치로는 잠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연쇄 살인이 발생하면서 도읍은 긴장감이 흐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한국에 번역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반드시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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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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