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1-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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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리대, 남성가부장 우월주의의 패배
    생리대, 남성가부장 우월주의의 패배 한국에서 뜬금없이 ‘생리대' 논쟁이 벌어진 것은, 이 사회의 저열함과 천박함, 극렬한 빈부격차와 착취, 빈곤의 현상이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애초 가난한 여학생들이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서 깨끗한 생리대가 아닌, 여성의 몸에 해가 될 수 있는 대용품을 쓴 것이 밝혀지면서부터 생리대는 인권의 차원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성의 기본 인권과 관련한 이 문제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진정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생리대'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고 하는 어떤 남성 국회의원의 발언은 이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가부장 우월주의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생리' 또는 ‘생리대'라는 단어 조차 뭔가 께름칙하고, 거부감이 들며, 왠지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결하고, 터부로 여겨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단지 그 남성 국회의원 한 사람의 느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갖는 공통의 느낌일 것이다. 인류의 모든 남성은 생리를 멈춘 여성이 낳은 후손들이다. 자기 어머니가 생리를 하는 것을 상상하면 더럽고 불결한가? 자신의 딸이 생리를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역겨운 마음이 드는가? 남성가부장 우월주의자들에게 여성의 ‘생리'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워야 하며, 절대 백주대낮에 드러내 놓고 까발려서는 안 되는 터부였던 것이다. 왜? 여성의 ‘생리'가 불결하고 역겹기 때문에? 아니다. 폭력으로 여성을 억압하기 시작한 이래-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잉여생산물이 나오고, 이른바 ‘재산' 즉 사유물이 발생하면서 그 사유물을 자식에게 남기려는 남성들의 본능적 의식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전하는 결과를 만들었으며, 상속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 역시 남성의 지배에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남성들은 모계사회로 회귀하는 것에 본능적으로 강력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모계사회는 평등사회이며 공산주의 사회였다. 어머니는 있으되 아버지는 누군지 알 수 없고, 자식들은 집단에서 공동으로 키웠다. 모계사회는 다툼과 경쟁, 착취가 없는 사회였고, 평화롭고 이상적인 사회였다. 그것은 인류의 이상이었지만, 잉여생산물을 놓고 다툼이 발생하고, 물리적으로 강한 힘을 가졌던 남성들은 모계사회의 평화와 평등을 폭력으로 해체했고, 여성의 몸을 금기 속에 가두어두기 시작했다. 소위 인류의 문명이라는 것은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억압하고, 폭력으로 짓밟으며,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오늘날 그 핵심은 변하지 않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보다 물리적 폭력에서 우위에 있으므로, 언제든 여성을 제압하고, 폭력을 휘둘러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더더욱 남성들의 비겁함과 나약함, 어리석음과 야만의 저열한 수준은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생리대 논쟁은 사실 논쟁의 여지도 없으며, 지극히 당연하게 ‘생리대의 사회화'가 진작 이루어졌어야 하는 문제다. 즉 ‘생리대의 공공성'은 인권의 차원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소위 3만 달러 소득을 올리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못할 망정, ‘생리대'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고 주절거리는 멍청하고 한심한 수준의 인식을 보이는 것은, 이 나라의 남성들의 한 없이 병신스러운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날마다 수없이 일어나는 성추행, 성폭행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이 가해자다. 남성에 비해 분명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단지 몇몇 인간쓰레기들의 일탈이 아니라, 여성을 여전히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의 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리'가 문제가 되는 사회라면, 임신, 출산은 물론 육아, 가사노동, 직장생활 등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차별과 착취는 과연 어떠할 것인지 안 봐도 뻔히 알게 된다. 비겁하고 저열하며 천박하면서 폭력적이기만 한 이 사회의 남성들은 호랑이가 곶감 소리에 놀라 달아나듯, ‘생리대'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겁을 하고 도망간다. 이참에 아예 여성들의 생리대를 사용하고 나서 그 생리대를 가방에 매달고 다니거나, 몸에 두르고 다니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이건 절대로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남성들이 ‘생리대'를 보고 접근하지 않을테니, 대부분의 병신스러운 남성들에게는 생리대가 부적처럼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정부에서 생리대를 무상으로 공급-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처럼-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다시 주장하면서, 여성들이 더욱 당당하기를 기대한다.
    • 칼럼
    • 백건우
    2021-08-28
  • 아이들을 종교에서 구하라
    아이들을 종교에서 구하라 종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명된 ‘정신적 위로 도구'다. 하지만 그 맹목성으로 인해 종교는 인류의 도그마가 되었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경우-여기서 불교는 제외하자. 불교는 기본적으로 ‘철학'의 개념이며, 불교를 ‘종교'로 이용하는 자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기꾼들이다-그들의 맹목은 극렬하다. 중동에 있는 한 부족신에서 시작된 유일신 종교는 2천년 전에 쓰여진 ‘교리'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고 있다. 2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의 지식, 과학문명의 발달, 경제적 생산성, 사회 체제 등 인류의 근본적인 하부구조가 변했음에도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2천년 전의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다. 유일신을 믿는 자들이 쓴 교리서는 2천년 전, 중동의 작은 부족의 지도자들이 만든 것으로, 그 교리의 핵심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지배계급, 지배계층의 논리가 집대성되어 있는 것이다. 간단한 예만 들어도,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교리서가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이 시기는 청동기 시대에서 새로운 문명이 발생하던 시기로, 여기에 쓰인 문자는 당연히 후대의 작품이다. 주제로 돌아와서, 종교는 그 사회의 집단 윤리와 지도지침으로 작동했고, 미개했던 예전에는 종교가 인류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던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달한 상황에서, 고대의 윤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무리인가를 ‘그들만' 모른다. 그들의 집단에서 어른들끼리 패륜 내용이 가득한 고대의 문서를 모여서 읽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들의 자식들 또는 어린이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패륜과 온갖 범죄행위, 잔혹한 살육, 전쟁과 재난 이야기를 듣고, 보고, 배워야 한단 말인가. 유일신 종교를 믿는 성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지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볼 때, 그들의 교리서를 어린이들에게 배우도록 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이며 어린이 학대에 해당한다. 현대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정신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에 합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술, 담배, 성인영화, 마약 등을 사회적으로 격리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즉, 어린이와 청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극단적으로 유해한 유일신의 교리서는 당연히 접근 금지 목록에 들어가야 한다. 설령 교육용으로 읽힌다 해도, 그것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 올바른 내용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유일신을 믿는 교도라고 해서, 그의 자식들이 당연히 유일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잘못된 주장이다. 부모가 모두 훌륭할 수 없듯이, 그들이 믿는 종교가 누구에게나 훌륭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유일신을 믿는 부모 역시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지, 그 교리서에 어떤 내용이 써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무조건 끌어들이는 것은 학대를 지나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이 인종적·민족적·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성(性)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유사회에서 책임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종교와 다른 사람들을 분리하고, 차별하고, 경쟁하고, 탄압하고 있다. 그들의 ‘믿음'은 매우 적대적이고 공격적이어서 자신들과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지옥에 떨어지라'고 외친다. 이런 것이 어린이들에게 과연 이해, 평화, 관용, 평등, 우정의 정신을 배우도록 하는 것인가? 어떤 종교든 만 19세가 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강압에 의하거나 전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 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특정한 이념이나 종교 신념을 강제당해서는 안 되고, 그것이 한 인간의 삶에 매우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종교는 인간의 이성이 발달하면서 차츰 소멸되어 가고 있고, 또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교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발상은, 지성과 이성이 덜 발달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일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8-28
  • 훈민정음 창제의 다른 해석
    훈민정음 창제의 다른 해석 얼마 전, 우연히 어떤 동영상을 하나 봤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하면서 ‘훈민정음 창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강의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찾아보니 ‘설민석'이라는 사람이고, 한국사를 강의하는 학원 강사라고 했다. 한국사를 공부했고, 학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으니 그가 말하는 것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역사의 핵심 즉 훈민정음이 창제되는 동기와 배경에 관한 내용에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설민석이 말하는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쓴 것처럼,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으니 불쌍한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쓰기에 어려움이 많아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설민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정리한 서울대학교 박갑수 교수의 글을 아래에 인용한다. 조금 길지만 많은 사람들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해서는 이 내용으로 배웠으리라 생각하기에,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에 관한 내용을 옮겨 본다. ------------------------------------- 한글 창제의 배경 한글 창제의 두드러진 동기의 하나는 민족 문자를 만들어야겠다는 민족적 자주정신(自主精神)이다. 이는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독립을 해야겠다는 자주정신이 발로된 것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던 몇몇 민족은 이미 이 문화권에서 벗어나고자 민족문자를 만든 바 있다. 요(遼) 나라를 세운 거란(契丹)은 한자에 대항하여 920년 대소(大小) 거란문자를 만들었고, 금(金)나라를 세운 여진(女眞)은 1119년 대소 여진문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원(元)나라를 세운 몽고(蒙古)는 1269년 파스파문자를 제정ㆍ반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한글 창제도 이러한 일련의 탈 한문화(脫漢文化)의 한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 등의 정음창제 반대상소는 이 탈 한문화에 반기를 든 것이다. 최만리 등은 세종 26년 언문(諺文)을 제작한 것이 지극히 신묘하여 만물을 창조하고, 지혜를 운전함이 지극히 뛰어나나, 좁은 소견에 의심되는 것이 있다 하며 6개조를 들어 장문의 언문 반대상소를 올렸다. 그 6개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과 동문동궤(同文同軌)의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제함으로 저들이 비난하면 사대모화(事大慕華)의 도리에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중국 본토에서는 지방에 따라 따로 문자를 만든 것이 없는데, 몽고, 서하(西夏), 여진, 일본이 문자를 만든 것은 모두 이적(夷狄)의 일이다. 셋째, 언문의 사용은 학문을 돌보지 않게 하고, 사리판단을 못하게 할 것이니, 학문에 손해를 끼치고 정치에 이로운 것이 없는 언문의 제정은 옳지 않다. 넷째, 언문을 사용하게 되면 형옥(刑獄)에 공평을 기할 수 있다 하나, 형옥의 잘잘못은 초사(招辭)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옥리(獄吏)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다섯째, 일은 서두르지 말고, 공론을 거쳐 해야 하는데, 급할 것이 없는 언문 제작을 행재(行在)에서까지 급급하게 하여 성궁(聖躬)을 조섭하는 때 번거롭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섯째, 동궁(東宮)이 성학(聖學)에 잠심하여 이를 더욱 궁구하여야 하는데, 언문 제작에 날이 맞도록 때를 보내니 이는 학문을 닦는 데 손실이 된다. 이상과 같은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최만리를 무슨 대역죄(大逆罪)나 저지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상소의 내용은 위에 보인 바와 같이 당시 기득권층인 사대부(士大夫)의 보수적인 생각을 대변한 것뿐이다. 그리고 여기 덧붙일 것은 한글 창제자(創製者)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는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창제에 참여하고, 세종을 보필한 것으로 일러진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집현전 학사들은 한글 창제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종대왕을 비롯한 동궁(東宮)과 진양대군(세조), 안평대군 등 왕자들이 참여하여 왕가사업(王家事業)으로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러기에 세종실록(世宗實錄)에 한글 창제에 관한 기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세종 25년(1443) 12월 30일조에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是謂訓民正音”이란 기록이 보일 뿐이다. 이렇게 정음 창제가 은밀히 진행된 것은 최만리 등의 반대상소에 보이는 바와 같이 당시 수구파 문인들의 반발이 거세고, 명(明)나라와의 유대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염려한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집현전 학사들은 창제에 직접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관여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정음을 반포한 정음과 같은 이름의 책 “訓民正音” 해례본 제작에 참여한 것이다. 세종실록에 세종 28년(1446) 음력 9월 29일조에 “훈민정음성(訓民正音成)”이라 보이는 것이 이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정인지 서문에는 연기(年紀)가 “正統十一年 九月上澣”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한글날을 10월 9일로 정한 것은 이 정인지의 서문에 따라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다. -------------------------------------- 박갑수의 글에서 핵심은 ‘기득권층인 사대부의 보수적인 생각을 대변한 것'이다. 즉 설민석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해 그 시기의 기득권 세력은 당연히 반대를 했던 것이고, 세종대왕은 그런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쌍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이 대전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왕조 중심의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즉, 권력을 가진 자가 기록한 문서의 내용만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매우 쉽고 편리한 방법이고, 또한 자료도 풍부해서 많은 역사학자들이 크게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배자 또는 기득권 세력이 백성이 단지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 말이 중국(한자)과 달라서 가여운 백성들이 글자를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은 언듯보면 백성들을 위한 말일 수 있지만, 지배자의 논리, 지배자의 언어로 포장된 껍질을 벗기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표피적 분석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해석을 하고 있는 정해랑의 글이 ‘훈민정음’ 창제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설민석이나 박갑수의 글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한글 창제의 취지를 애민 사상의 구현에서 찾습니다. 어지에서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어여삐(가엾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의 불편함 때문에 한글을 만들었다고만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해 무지한 것입니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를 결심한 시기는 조선 왕조가 하루가 다르게 번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순탄하게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정적도 없었고,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갈등도 아버지의 도움으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종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왕권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는 아버지 세대에 거의 정리되었지만 민중과의 관계는 그에게 새로이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호패법이나 5가작통법을 시행하면서 민중에 대한 통제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틀일 뿐이었고, 내용을 채워야 할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민중들은 고려 시대의 민중들과는 많은 면에서 달랐습니다. 고려 중기 뒤로 숱한 농민, 천민 봉기와 봉건 귀족의 부패와 동요를 겪었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저항 의식이 꽤나 높았습니다. 또한 조선 왕조 자신도 무력을 빌려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민중을 구태의연한 강압으로만 통치하다가는 또 다른 저항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의식, 정치의식이 성장한 민중들은 고려 시대 이후 소멸한 향찰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향찰은 한문 자체와는 아무 관계없이 국어의 형태 요소뿐 아니라 의미 요소에 이르기까지 한자의 음과 훈을 차용하는 전면적인 표기 체계로서, 삼국시대 이래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문자였습니다. 그런데 향찰이 고려 시대에 문벌 귀족들에게 배척 당하다가 사라지고 말면서 민중들은 문자 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무신 정변 이후 귀족 사회가 붕괴하면서 사회의식. 정치의식이 성장한 민중들이 문자 생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갈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한글은 이러한 민중의 요구와 세종의 필요가 맞물리면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사학자는 한글을 `민중의 전리품`이라고까지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정확하게 간파한 세종의 통찰력이 뛰어난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창제된 한글은 민중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이나 지배층에 포섭하기 위한 교화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원래 통치하는 세력은 통치 받는 사람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모두 쓰는 법입니다. 한글은 이 양 측면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앞에서 본 `한글 고비`에서 한글로 쓰인 부분은 한글이 백성들에게 지배층의 경고를 알리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한글이 채찍으로 쓰인 것이지요. 반면에 통치 세력이 쓰는 당근은 얼마큼 경제적 이익을 던져 주거나 지배 세력의 사상으로 포섭하는 방식입니다. 조선 왕조는 과전법과 양인 신분 찾아주기 따위로 민중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얼마간 당근으로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상으로 포섭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고려 시대까지 지배 세력의 사상은 불교라는 종교였습니다. 그러므로 민중을 지배 세력의 사상으로 포섭하는 것은 문자 없이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왕조는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지배 세력의 사상으로 삼았습니다. 성리학은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양식만으로 사상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성리학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민중이 문자를 배워 성리학의 가르침을 이해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대의 민중들은 대부분 문맹이었습니다. 민중들에게 새삼스럽게 한자를 가르쳐서 성리학을 배우게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글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필요에도 부응하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민중의 교화 수단으로 쓰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글은 만들 때부터 그 목적대로 주로 조선 왕조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선전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들을 출판하고 성리학 교재를 번역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밖에도 농업서적이나 기술서적을 번역, 출판하는 일에도 쓰였지만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글은 본래부터 양반과 민중 모두가 쓰는 전국민의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민과 천민들의 글이었고, 상민과 천민들을 지배 세력이 사상적으로 가르치고 길들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역사의 수레바퀴는 ‘왕조'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당대의 민중들의 요구가 어떠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역사가를 비롯해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이다. 하지만 이런 기본 자세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대중에게 역사를 강의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박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8-02
  • 조영남 사태에 관한 멍청한 논리를 반박한다
    조영남 사태에 관한 멍청한 논리를 반박한다 짜증을 억누르며, 조영남 사태에 관한 멍청한 논리를 반박한다 먼저, 아래 링크의 한국일보 기고는 손이상이라는 문화운동가가 쓴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은, '조씨에게 죄가 있다면 하청업체에 위탁한 제품에 자사 로고를 박아놓고 비싸게 파는 대기업에도 같은 죄가 적용되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헐값을 쥐여주고 만든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모든 회사도 같은 죄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http://hankookilbo.com/v/cc9461b5b4ea43bd9f506907844a60c1 손이상의 논리는, 예술작품에서 '대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로댕을 거론하고 있다. 이 주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미술작품'에 한정하고 있고, 예술과 자본을 등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자, 손이상이 주장하는 논리가 엉터리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인데, 이제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자. 1. 예술행위에서 '대작'은 큰 문제가 아니다, 라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옳지 않으며, 소위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대작'이 문제없다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소설을 쓰는 내가, 내 아이디어를 다른 작가에게 제공하고,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렇게 나온 작품을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단지 내가 대작을 한 그 작가에게 정당한 원고료만 지불한다면? 맞나? 조영남의 '대작'이 문제 없다고 말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가 한 말도 맞다고 해야지 논리적 일관성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예술'이라는 건, 행위가 아닌-행위는 즉 작가의 직접적인 창작행위를 말하는 것인데-아이디어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인가? 음악의 경우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작곡가에게 의뢰해 노래를 만들고, 작곡가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 그 노래는 내가 창작한 것이 되는가? 대체, 이런 방식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 구조가 정말 궁금하다. 대체 '예술가'라는 게 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개념에 대해서 생각은 해 본 걸까? '예술가'의 기본이 어떤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해 본 걸까, 매우 의심스럽다. 2. 예술 행위와 자본을 등치하는 오류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나갈 것이며, 이런 주장은 따라서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래서 더 나쁘다. 앞에서 '대작' 자체가 불법이며 '예술'이 아님을 반박한 것처럼, '대작'과 자본이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노동자를 고용해 상품(또는 서비스)을 만들어 판매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합법적이며 정당하다고 주장한 사람이 누군가? 오로지 자본가들일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불법이고, 정당하지 않다. (노예제와 농노제가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럼에도 손이상은 마치 자본주의가 합법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정당한 체제이자, 작동방식이라고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은, 자본이 절대적 힘의 우위를 갖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폭력으로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손이상은 자신이 자본주의 체제에 매몰되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손이상이 그 논거로 끌어온 진중권의 주장 역시 똑같은 오류를 갖고 있음을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위의 손이상의 글을 보면, 1)에서 이미 잘못된 논거로 2)를 주장하는 것이니, 그의 논리는 전제부터 잘못되었기에 결론은 당연히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그만큼 낮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짜증이 나지만,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손이상(나는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제발, 좀 모르면 배우고,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기 바란다.
    • 칼럼
    • 백건우
    2021-08-01
  • 집짓기를 말하다_들어가는 말
    집짓기를 말하다_들어가는 말 시골로 이사와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십년이 되었다.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절감하고 있고, 세월이 흐른 만큼, 내 생각과 생활도 바뀌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 시골에 관해 아무 것도 아는 것 없이 무작정 귀촌을 했고,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겨우 시골생활에 관해 조금 알 것 같다. 집짓는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집짓는 것은 곧 우리의 삶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짓기가 단지 건물을 어떻게 올리고, 평당 가격이 어떻고, 인테리어가 어떻고 하는 물질적 수준에 머문다면, 그것은 여전히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니, 집을 짓고, 집을 관리하는 일은 곧 하루하루 내가 살아가는 과정이었고, 집을 통해 공간이 확장되면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다양하게 이어지고,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좁게 보면 집짓기는 시골에서 집 한 채를 짓고 사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조금 넓게 바라보면 집짓기는 우리 가족과 이웃, 마을로 확장하는 공동체의 한 연결고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제 집짓는 이야기는 시골로 이주해 느리게 뿌리를 내리는 한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고,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시골에 정착한 중년 남자의 환골탈태일 수 있으며,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하는 평범한 소시민의 뜻밖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가족을 이룬 사람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부모님을 모시는 가장이라면, 시골에서 집짓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고, 내가 보아 온 많은 이웃들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도시에 살면서 시골로 이주하고 싶거나, 시골에 집을 짓고 싶거나, 나중에 나이들어 시골로 내려오고 싶은 사람이라면, 집짓는 이야기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집을 짓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3월에 찍은 사진. 건물이 보송보송해 보인다. 시골로 내려와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당연한 질문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행복한 사람은 굳이 시골로 이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한 도시의 삶을 좋아하고, 체질에도 맞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시골의 한적함, 느림, 고요함, 여러 형태의 불편함이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니, 무조건 도시가 좋다거나, 시골이 좋다는 주장은 하지 말자. 시골로 내려오려는 사람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은 시골로 이주하는 것을 선택했고, 우리 선택에 만족하고 있으며, 심지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밝고 따뜻한 어느 날, 마당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가족이 시골로 이주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도시에서의 아파트 생활이 불편했고, 나와 아내 모두 도시의 삶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마침 우리가 시골로 이주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시골에 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도시의 삶을 가끔 반추할 때가 있다. 그러면 도시에서 살았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나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곤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퍽 미안한 말이지만-그래서 너 잘났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우리(아내와 나)는 적어도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아내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고,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둘 다 도시의 소음, 빛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파트 단지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았고, 소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특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밀집주택을 스스로 선택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이 시골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도시의 아파트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시골에서 살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마당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갖는 여유가 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할 때, 미리 준비를 했거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서둘렀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이주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섣부른 시골살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실수와 무지 등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골에 대해 조금씩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낭만,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반쪽짜리 이야기거나 거짓말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시골에 살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하거나 나쁜 점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위 '전원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늘 좋은 점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귀농, 귀촌, 전원, 별장 등의 이야기가 대개는 부풀려졌거나 한쪽만 확대해서 보여주거나, 아름답게 치장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다. 진짜 좋은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야기는 한 가족만의 이야기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하나의 좋은 집,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시골살이에서 매우 단편적이며 특수한 경우의 이야기다. 이웃과 함께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이제 십 년째 시골에 살면서 느낀 것은, 좋은 이웃이 없는 시골 생활이란 행복하지도 않을 뿐더러, 시골에 사는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골에 조용하게 은둔하기 위해 내려온 경우도 있겠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자기 가족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물론 가족은 그 자체로 행복한 단위이기는 하지만, 삶의 만족과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가족은 물론 이웃과 공동체가 있음으로써, 더욱 확장하고 증폭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집짓기'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와 우리 가족 나아가 이웃과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시골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며 기회이기도 하다. 소박하면서 화려한 마당의 식탁. 나 자신, 직장인으로 살다 시골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삶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도시에서의 삶에 비해 훨씬 다양하며 풍부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알량한 능력이라도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진정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무언인가를 알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특히 시골로 이주한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배우고, 경험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커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도시의 삶이 보통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그것이 전문직이든 생산직이든 관계없이-은 노동을 통해 번 돈을 다시 도시생활에서 소비를 하며 다람쥐 체바퀴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 제도가 강요하는 삶이다. 농촌이라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를 리는 없다. 돈이 없으면 고통스럽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도시가 '소비 위주의 삶'이라면 시골은 그나마 소비를 적게 하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소득이 높고, 도시의 문명에 좋은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보기에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하려는 사람은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럴까. 집을 짓고 난 다음 해의 봄. 마당에 작은 나무들이 보인다. 도시에서의 삶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생활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평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다면 일부러 시골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삶이 예전보다 불안해지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도시의 삶이 각박해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시골로 이주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골에 내려와서도 혼자(가족 단위)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여긴다면, 도시에서의 삶과 다를 게 무엇일까. 도시가 익명성과 단절된 삶의 상징이었다면, 시골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불편함도 없지 않지만, 기회도 많고, 그 자체로 삶의 다양성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도 하다. 이 글을 연재하면서, 강산의 변화 뿐 아니라 나 자신의 심리적인 변화와 삶의 변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자 한다. 그것이 교훈이 될 수도 있고, 정보가 될 수도 있으며, 시골에 먼저 내려 온 사람의 발자국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생활
    • 집짓기
    2021-07-30
  • 우리, 선화
    제목 : 우리, 선화 작가 : 심흥아 출판 : 새만화책심흥아 작가의 첫 번째 작품. 첫 번째 작품에 이 정도 뛰어난 수준이라면, 작가의 실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솜씨 또한 탁월하다.작가주의 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톤'을 쓰지 않거나 적게 쓰는 것인데, 심흥아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다. '톤'을 쓰되 그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만 사용했다. 또한 톤을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고, 명암을 표현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이 작품에 관한 소개를 보자.일란성 쌍둥이 자매이지만 속은 다른 봉선화와 봉우리, 그리고 할아버지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나이 드신 아빠, 이렇게 세 사람이 봉씨네 식구이다. 창문이 있고, 장마에 물 들어올 걱정 없고, 세탁기를 놓을 정도 크기의 화장실이 있고, 개수대가 두 개인 싱크대가 놓인 집에 살아 보는 것이 큰딸 선화의 소망일 정도로 소박한 살림살이이다.더 나을 것도 없는 셋집으로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던 봉씨네는 쌍둥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이사를 또 하게 된다. 마을버스 기사인 아빠가 안면 있는 승객인 스님의 제안으로 정착할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집으로 사는 곳을 옮기기로 한 것인데, 새초롬한 성격의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 못마땅하다. 그렇게 절집 사람들과 식구가 되어 3년째를 맞이한다.선화는 자기 환경을 껴안고 견디며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고자 하고, 언제고 집을 벗어나리라 마음먹고 있던 우리는 계획한 대로 상고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독립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사이 아버지는 드디어 절집에 들어갈 때의 생각대로 온 가족이 모여 살 만한 집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선화와 우리는 쌍동이 자매지만, 선화가 언니 노릇을 하고, 그래서인지 속이 깊다. 하지만 동생인 우리에게서 따뜻한 자매애를 느끼면서, 쌍동이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이야기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선화의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담담하면서 나즈막히 가라앉은 나레이터, 선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집을 떠나 독립하려는 우리가 선화에게 준 선물, 브래지어를 하면서, 본 적도 없는 엄마가 생각난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난다.선화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지만,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먹고 살 준비를 한다. 고생 끝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집을 떠났던 동생 우리가 돌아오면서, 삶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선화처럼, 나도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이미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 작품 속에서 선화 아버지는 마을버스 운전을 하며 집안을 이끌어 가는 능력자였지만, 내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는 내가 어릴 때부터 백수 노릇을 했다.선화는 엄마의 얼굴을 모르지만, 나는 어머니와 줄곧 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내가 치렀으니, 그런 면에서는 선화보다 조금 운이 좋았다고 할까, 엄마의 그리움을 덜 느낄 정도라고 할까.어린 선화가 성장하면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삶과 함께 독자의 마음까지 성장하도록 만드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 문화
    • 만화
    2021-07-30
  •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책> 죽도 사무라이 - 마츠모토 타이요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으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 작가지만, 참으로 부럽고, 대단한 작가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에도시대.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떠돌다 정착한다. 사무라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진검이 아닌 대나무검. 진검이자 보검인 쿠니후사는 전당포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의 살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수 노릇을 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세노 소이치로는 잠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연쇄 살인이 발생하면서 도읍은 긴장감이 흐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한국에 번역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은 다 소장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반드시 소장할 가치가 있으며, 가까이 두고 자주 보면 볼수록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원작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 문화
    • 만화
    2021-07-30
  • 퓨리 - FURY
    <영화> 퓨리 - FURY 2015년에 본 첫 영화. 별 네 개. 브래드 피트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 홍보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최고의 영화라고 했지만, 이 영화는 그동안의 전쟁 영화들 가운데서도 걸작의 반열에 들 듯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쟁을 그린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묘사하고 있다. 즉, 뛰어난 리얼리티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단지 '전쟁영화'를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함께 느끼는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연합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 즉,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아무리 미화해도 아름다울 수 없으며, 지나치게 과장해도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와 참혹함은 지나치지 않는다.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전쟁영화를 보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든 과장, 미화, 왜곡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심지어 다큐멘터리도 왜곡을 한다-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수준의 과장, 미화, 왜곡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매우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바라보고 있다. 주인공 뿐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비교적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연합군이 승리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이 승리했다면 오히려 이런 영화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완전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은 아니고,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상황에서 기갑부대의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탱크'라는 물체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함께 기거하는 집이자, 무기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한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즉, 탱크라는 공간과 물체를 통해 심리적 위안, 가족애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워대디' 돈 컬리어 중사는 탱크 FURY를 움직이는 지휘자이자, 동승한 대원의 부모 노릇을 한다. 그리고 네 명의 병사는 '워대디'를 믿고 따르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맡긴다. 이것은 가족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전우의 관계는 가족처럼 혈연 이상의 결속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하게된다. 탱크의 전투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하지는 않다. 영화의 장면 속에서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다.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뒹굴고, 사지가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지고, 구덩이에 시체들이 파묻힌다. 신참 병사 노먼이 처음 전투병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피묻은 전차 내부를 닦다 발견한 전우의 사체를 보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었다. 평상의 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도의 혐오와 잔인함이 전쟁터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리고, 병사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과장 없이 그려낸 영화. 전쟁 영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 문화
    • 영화
    2021-07-30
  • 홍까오량 가족 - 모옌
    <책> 홍까오량 가족 - 모옌 읽는 내내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내용도 그렇고, 그 내용을 표현한 문장도 읽는 이의 심장과 영혼을 뜯어내는 듯한 충격과 격렬함 때문에,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했고, 한 번에 오래 읽기도 어려웠다. 모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충분히 그럴 만 하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모옌의 작품은 중국 대륙의 현대사를 자신의 고향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 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일반화, 보편화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고통과 끈질긴 생명력에 관한 기록이며, 작게는 자신의 개인사적 사건이자 중국 현대사와 맞물린 거대한 물줄기를 관통하는 중국민중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은 모두 다섯 편의 중편을 묶은 것으로, 중편 연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로도 충분히 읽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붉은 수수밭'은 이 책의 첫번째 중편 '붉은 수수'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붉은 수수'도 매우 강렬한 피빛이지만, 뒤에 나오는 '고량주', '개들의 길', '수수장례식', '이상한 죽음'은 더욱 강렬하고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빛이다. 이 작품을 읽고 머리에 남는 것은 '끈적끈적한 피'의 이미지다. 그것은 중국 민중의 피이며, 중국 대륙을 적시는 고통받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의 피이며, 인간이 흘린 피이기도 하고 중국 역사가 흘린 '고통의 시간'이라는 피이기도 하다. 그 핏물을 먹고 자란 수수는 붉은 빛으로, 저녁 놀에 더욱 새빨갛게 피빛으로 빛난다. 광활한 붉은 수수밭은 마치 뜨거운 피가 일렁거리듯, 강렬한 색채로 번쩍거리며, 그 속에 살아가는 중국 민중은 압제와 어리석음 속에서 잔혹하게 죽어간다. 같은 시기-중국 근현대사의 초기인 198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루쉰은 중국 민중을 '아Q'에 빗대었다. '인간의 고기를 먹는 미치광이'들로도 표현했다. 중국 민중은 어리석고, 멍청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역사를 바꿀 의지도, 지혜도 없는 인간들이라고 강렬하게 비판했다. 반면, 모옌은 루쉰의 '아Q'적 인간관을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빛으로 물든 중국 민중의 삶을 잔혹하지만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침략자 일본에 대항하는 중국 민중은, 당시 정부나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그들 스스로 일본군과 싸운다. 우리도 일본 제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경험이 있지만, 중국 민중이 당한 고통과 아픔과 슬픔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그것을 모옌은 매우 강렬하고 직설적이며,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은 결코 일본의 악행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와 경고가 이 작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에서 이 정도의 강렬함과 잔혹함을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 모옌은 자기의 조국, 중국의 민중이 당한 피비린내 나는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장면은 충격과 공포이며, 잔혹함과 슬픔이고, 짙은 피비린내와 격렬한 분노를 동반하고 있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최근의 현실이었음을 자각하도록 만든다. 모옌의 작품은 한국의 어떤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 굵은 묘사와 강력한 힘이 느껴진다. 그는 중국의 신화, 역사, 민간신앙을 총동원해서 중국 인민이 처한 상황을 직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 모옌과 같은 작가가 없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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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
    2021-07-30
  • 듀마 키 - 스티븐 킹
    <책> 듀마 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스티븐 킹이 죽음 직전까지 간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이 매우 심했던 것을 잘 알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렇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사고의 후유증에 따르는 고통-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묘사는 실제 당했던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매우 세밀하고, 감정적이며, 깊이 있는 내용이어서, 읽는 사람마저 그 고통을 느낄 정도로 치열하다. 무려 10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주인공 에드거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그가 살았던 과거의 삶과, 죽음에서 겨우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아내와의 이혼, 삶의 터전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그러다가, 이야기는 점차 새로운 영역,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주인공에게 생긴 초능력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오래 된 실종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사건. 호러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호러' 자체가 '안티 리얼리티'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뿐 아니라 모든 호러 작가들의 작품에서)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유령이나 귀신의 존재가 아니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인간(개인과 가족, 친구, 친지, 이웃)들의 삶이다. 즉, 초자연적인 존재를 내세워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 호러 작품의 진짜 목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스티븐 킹이 돋보이는 것은, 뒷부분의 크라이막스가 아니라, 그가 풀어나가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삶에서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삶에서 상처 입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초현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끌어들여 그들이 겪는 아픔이 현실을 초월하는, 현실에서는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와 아픔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한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 등장하는 비현실적 존재들-유령, 귀신, 외계의 존재 등-은 스티븐 킹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상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가 작가이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그런 '당연한' 존재들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삶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경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호러 작가 스티븐 킹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현실적 충격이 정신적, 감정적 충격으로 그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스티븐 킹의 경험은 평범한 개인이 겪었던 것보다는 훨씬 심각하고 다양했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것들'은 그의 잠재의식과 불안에서 발생한 것들이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스티븐 킹은 호러소설을 선택한 것이 어쩌면 필연일 수 있다. (그가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고나면 아내를 향해 돌아눕는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소설은 특히 스티븐 킹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받은 물리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그는 매우 심각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그것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기 어려운(적어도 이런 정도의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작가일 확률은 매우 낮으므로) 고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을 것이다. 결국, 스티븐 킹의 시도는 성공했고, 그는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소설로 기록했다. 우리는 스티븐 킹의 묘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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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30
  • 클린트 이스트우드
    <책> 클린트 이스트우드 지은이 : 마크 엘리엇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13년 2월 25일 분량 : 616쪽 개요 이 책은 마초 이미지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감독,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 모델로 추앙받는 세계적인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평전이다. 50여 년간 출연하고 만들어 온 영화와 뒷이야기는 물론,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과 불륜, 각종 소송에 대한 비화, 그리고 아이스크림콘을 거리에서 먹지 못하게 하는 시 당국의 조례 제정에 분노하여 카멜의 시장에 선출되는 의외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일용직을 전전하던 목표 없는 청년에서 세계적인 거장으로 거듭난 80년간의 일대기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영화사(史) 학자인 마크 엘리엇이 수많은 자료와 다양한 취재원들을 동원하여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생생하고 상세하게 그 드라마틱한 삶을 전달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 가난한 떠돌이 부부에게서 태어난 5.15kg의 우량아, 군 복무 시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행운아, 혼외정사로 네 명의 아이를 낳은 바람둥이 할리우드 스타. 이 모두가 대스타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다양한 모습이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생활과 그가 찍어 온 영화들로 대표되는 공적 생활이 어떻게 조응해 가는지 추적한다. 기존의 평전들이 놓친 최근 10년간의 황금기를 상세히 밝힐 뿐만 아니라, 찬양과 비판 사이에서 시종일관 객관적 거리를 견지하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대한 스타의 명과 암을 조명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철학, 연출 스타일, 배우와 감독으로서 다다른 성숙함, 공인으로서의 자기 관리 능력, 인생을 바라보는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할 것이다.-<출판사 책소개> 독후감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가 미국총기협회를 대표해 영화배우 찰튼 헤스턴을 인터뷰했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만일 마이클 무어가 내 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고,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마이클 무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인터뷰를하지 않았다.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였으니, 40년 세월이다. 당시 우리 꼬마들은 이소룡 흉내를 내며 골목을 뛰어다녔고, 동네에 있는 두 개의 극장에서는 수많은 영화 간판들이 바뀌어 걸렸다.이소룡 다음으로 인기 있었던 영화는 당연히 서부극이었고, 우리는 보난자의 보안관이 되어 머플러를 휘날리며 적과 등을 맞대고 열 걸음을 걸은 다음, 재빠르게 쌍권총을 뽑아 적을 쓰러뜨렸다.가난했지만, 우리에게는 꿈이 있고, 우상이 있었다. 콧물을 흘리며 뛰어다닐 동무가 있었고, 골목길이 있었으며, 공부하라고 머리를 쥐어박는 어른도 없었다.우리는 지칠 때까지 놀았고, 땅거미가 지고도 한참 지나 어두워질 때까지, 아니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소리칠 때까지 줄기차게 놀았다.영화 뿐 아니라 당시로는 귀했던 흑백 TV에서도 서부극은 단골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시가를 씹으며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장화 끝에 박차를 매단 총잡이와 보안관을 사랑했다.그들은 마초였으며, 외톨이였지만 결코 고독하지도, 연민에 사로잡히지도 않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은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존 웨인도 있었지만, 우리는 마카로니 웨스턴에 더 가까운 꼬마들이었고, 도대체 웃지 않고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고독한 총잡이가 모든 적들을 쓰러뜨리고 황혼의 사막 위로 사라지는 모습은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 논리를 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진영 논리에 의해 움직이지도 않는다. 보수, 진보라는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양심’이고, 잘 훈련된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아무리 진보주의자라 해도 ‘개인주의’ 훈련이 덜 된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믿는 이념의 정반대편으로 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웠던 양심, 도덕, 염치, 인내, 배려, 사랑, 존중 등과 같은 덕목은 이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이념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감정들이고, 가치 기준인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런 기본적인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든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보수성’은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에 가깝다. 즉, 미국의 보수집단 가운데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보적 보수라고 자리매김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인간(사회)의 중요한 덕목들-양심, 도덕, 존중, 배려, 자유 등-을 누구보다 충실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생활에 있어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사회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진보적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태도와는 사뭇 다른, 그래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결혼을 한 이후에도-결혼 전은 말할 것도 없고-단 한 순간도 아내 외에 다른 여자가 없었던 적이 없는, 말하자면 바람둥이, 플레이보이, 난봉꾼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음에도 스스로는 도덕적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그는 자신의 삶과 영화배우나 감독으로서의 삶을 분리하려 했지만, 어찌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개인은 평생 영화에 종속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배우로서도 성공했지만, 특히 감독으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자리매김했고, 그를 인간적으로는 싫어할 수 있겠지만, 그의 작품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걸작들을 만들어 왔다.이 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배우, 감독과 그의 작품들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도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부러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객관적으로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일대기를 쓴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이 단점일 수 있지만,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문화
    • 독서
    2021-07-30
  • 새로운 형태의 도시빈민에 관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시빈민에 관하여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도시빈민'에 관한 대중적인 개념과 연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드물게 '도시빈민'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화에 반영되지 못하고, 학문의 분야에서 머물러 있을 뿐으로, 고착된 사회문제의 개혁이나 변혁의 이론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도시빈민'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이른바 '제3세계' 전반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회문제이며, 오늘날에는 경제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경제선진국에서는 슬럼가나 할렘, 노숙자 등을 '도시빈민'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도시빈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규정이나 개념을 학계, 언론에서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학적, 계급적 분석은 이미 끝났거나, 아니면 '도시빈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도시빈민'은 '도시'와 '빈민'이 결합한 것으로, 산업사회의 짙은 그늘의 부정적 현상이며,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특수한 존재들이다. '도시빈민'과 비교할 수 있는 '농촌빈민' 역시 최근의 사회학 주제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인기도 없을 뿐 아니라, 학자들이 다루기에도 거북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도시빈민의 발생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그것은 이미 250년 전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도시빈민이 출현하게 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봉건사회의 농노, 농경시대의 경우 한 나라의 인민이 굶주리는 경우는 흔했지만 그들을 '빈민'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봉건시대나 농경사회에서도 빈민은 존재했겠지만,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때는 누구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으면, 굶주림으로 죽지는 않았다. 생산력이 낮아 잉여수확물이 적었고, 지배계급이 착취 때문에 인민에게 돌아가는 식량의 양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소외'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에서 도시빈민의 출현은 군사독재정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이면서 폭력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필연적인 이유는, 한국이라는 변방-강대국에 둘러 싸인-의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고, 냉전체제에서 세계강대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과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노동력만으로 수출을 통한 돈벌이를 하는 방법은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매우 낮은 임금으로 경제선진국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노릇을 자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쏟아진 사회과학 서적들에서 이미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끝났으니 여기서 말하는 건 필요없을 듯 하고, 2000년대 이후 논의가 없는 '도시빈민'이 2000년대 이전의 '도시빈민'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겠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촌에서 유입된 노동인구는 도시의 변두리나 공업단지 주변에 밀집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청년 노동자들이 기숙사에 거주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면, 가족 단위로 이주한 농촌 인구는 도시 변두리에 정착해 저임금 노동시장에 편입되었다. 이미 도시에서 살고 있던 빈민은 도시재개발-자본의 이윤추구 사업-으로 밀려나 도시의 외곽 변두리로 이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동네', '판자촌', '해방촌'과 같은 단어들이 이들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농촌인구와 도시인구의 비중은 꾸준히 반비례하면서, 지금은 도시 인구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정보화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로 완전히 이행했고, 초기 도시이주 세대에서 한 세대가 지났다. 1960년대 국민소득이 200불에서 지금은 1만5천불까지 올라갔으니 그 사이 경제 발전은 수구집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적'이라고 과장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결과만을 말하는 방식은 반민주, 반인권적 패륜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이 노동자와 농민이 겪은 고통은 외면하고, 묵살하면서 오로지 권력자의 치적을 위해 결과를 과장하는 방식의 주장은 천박하고 저열하며 비열한 주장일 따름이다.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이 피땀 흘려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은 그렇게 쌓인 부를 나눠갖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의 착취와 억압으로 질식당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18년, 전두환 군부독재가 7년, 노태우가 7년까지 모두 32년의 군사독재 기간 동안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열매는 극소수 자본과 권력에게 돌아갔다. 절대 빈곤을 벗어나고, 보릿고개가 사라진 것에 대해 노인 세대는 독재정권의 치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들-박정희와 전두환 일당-을 칭송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실제 일을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임에도, 자신들이 일군 부를 착취한 자들을 은인으로 받드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전쟁의 공포는 독재정권보다 더 강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더라도 독재정권의 만행을 눈감고, 그들의 착취와 억압을 긍정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어떻든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1990년대 이후, 정권과 자본은 나라 곳간을 털어 먹고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세계 자본의 공격으로 인민의 삶은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더욱 격렬해졌고, 권력과 자본은 샴쌍동이처럼 변신했다. 지금도 전통적 형태의 '도시빈민'은 존재하지만 외형적으로 도시빈민의 거주지는 대개 '재개발'되었고, 도시빈민은 '청년빈곤'이나 '청년실업' 등의 주제에 묻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도시 변두리에 형성된 달동네, 판자촌은 민간 건설업자들에 의해 고층 아파트로 변하고, 그곳에 살던 도시빈민들은 더 먼 변두리로 밀려났다. 일부 운이 좋은 도시빈민은 영구임대주택이나 시영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삶까지 개선된 것은 아니다. 경제가 활성화되던 80년대는 일자리와 잉여 자본의 일부가 도시빈민에게도 돌아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중산층'의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후 더욱 가속,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도시빈민은 '하우스푸어'와 '청년빈민'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하우스푸어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에 의해 먹잇감이 된 서민들이다. 그들도 부동산(주로 아파트)이 투자와 거대한 잉여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라는 욕심을 가지고 뛰어든 잘못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부동산 투기라는 사기를 친 것은 정부의 책임이고, 정부와 밀착한 자본의 책임이다. 은행에서 거액의 융자금 즉 빚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그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자의 압박과 원금 손실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소득은 분명 증가하고 있었고, 최저임금 보장과 각종 복지 제도들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껍데기는 화려하면서 알맹이는 없는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90%이상의 대학진학율과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의 취업난, 실업자의 양산은 정부와 자본의 무능과 계산된 의도로 인해 '청년빈곤'과 '청년실업'을 대량 발생하고 있다. 대학을 나와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대학이 하나의 시장-취업시장-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대학이라는 장사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자본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는, 산업예비군(실업자)을 최대화 하는 것이 자본에게는 매우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이 실업자로 존재하게 되면, 그들 자체의 경쟁이 격렬해지고, 경쟁은 단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게 된다. 즉, 청년들이 뭉쳐서 자본에 대항하는 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 해, 고급인력을 싼 임금으로 쉽게 부릴 수 있으며, 해고의 위협이 상존하고,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기능도 하게 된다. 자본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둥지털어 불 때는 일석 삼조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1970년대의 도시빈민이 도시 변두리 지역 산동네, 판자촌에 거주하는 건설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로 대표되었다면, 2000년대 도시빈민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빚에 허덕거리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한숨 짓는 청년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친자본정부와 자본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지 않는 한, 빈민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상징'을 대하는 태도
    '상징'을 대하는 태도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박유하의 저서로 촉발된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상황은 현재 일본의 아베 정권의 본질과 정체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무능한 정권이 아베 정권과 작당해 국제법에 어긋한 행위를 하면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이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저 하나의 '작품'이자 '상징'에 불과한(?) '소녀상'을 일본은 왜 두려워하는 걸까? 말할 것도 없이 '소녀상'이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은 우리 할머니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진실이 담긴 서류는 많은 사람들이 못볼 수도 있지만, 성노예 할머니를 상징하는 '소녀상'은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상징을 볼 때마다 '성노예 할머니'를 떠올리고, 자연스럽게 일본의 악행과 야만성을 기억하게 된다. '상징'은 매우 강력한 기억의 응집임에 분명하다. '소녀상'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소녀상'과 '예수상' 모두 각기 다른 '사건'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소녀상'이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를 상징한 것이라면, '예수상'은 특정한 종교의 지도자를 상징한 것이다. 절에 있는 '불상' 역시 석가모니를 상징한 것이다. 시대와 상징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상징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 '소녀상'은 사람들이 찾아와 모자를 씌워주고, 목도리를 둘러주며, 양말을 신기고, 꽃을 바친다. 작고 여린 소녀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당한 여성들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소녀상'은 단지 고통받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와 역사를 하나로 만들고, 억압과 착취와 고통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고통을 받기로는 '예수상'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를 '신'으로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옆구리를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예수'라는 인간을 바라보며 돈과 건강과 행운을 달라며 빈다. 두 상징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자발적이지만, '소녀상'은 사람들이 측은하고 가엽고, 애틋하게 생각해서 모자며 목도리며 양말이며 신발 등을 가져와 입히고 신기고 꽃을 바치는데 반해, '예수상'은 그 참혹한 모습을 바라보며 불쌍함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가학적 취미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참혹한 예수상을 소비한다. '소녀상'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건에서 비롯한 것이고, 현대사는 여전히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인민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이 훨씬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비록 '소녀상'이 금속으로 만든 물체이긴 해도,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담아 '소녀상'을 마치 인격체처럼 대하게 한다. '인격체'처럼 대하는 것은 '예수상'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를 신으로 믿는 사람들은 매우 추상적으로 예수상을 대한다. 그것은 전혀 감정적이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삶과 역사와는 전혀 관계 없는 중동의 한 부족에서 나온 우상을 섬기게 되면서, '신'을 믿는 것을 단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투영하고, 이기심과 욕심을 충족하려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신도들 가운데 예수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십자가에 매달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고통스러운 한 인간을 보면서,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달파 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예수상' 앞에서 엎드려 자기의 소원이나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빌어대는 사람들의 내면의 빈곤함과 추악함을 생각하면, 종교라는 것이 일종의 감정의 배설물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소녀상'은 우상화하거나 타자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살아 있는 역사로서, 우리가 늘 되새기고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시간과 피해자인 조선의 여성들-우리의 누이들-의 아픔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정치를 소비하는 천박한 사회
    정치를 소비하는 천박한 사회 SNS의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많은 글들이 정치 또는 정치인 또는 정당에 관한 내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자유이므로 그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정치’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 삼성전자의 백혈병 노동자,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 1천만명이 넘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실태, 고령화 사회의 문제, 한국 농업의 근본적 문제, 환경과 재생에너지 문제, 교육, 복지 등 중요한 화두들이 참으로 많은데, 우리는 왜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 관해 끊임없이 관심을 쏟아야 하고, 그것을 소비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무릇, 정치는 물 흐르듯 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란, 인민이 정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를 하는 자들이, 나라의 운영을 매끄럽고 또렷하게 한다면, 인민은 나라의 운영을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의 생업과 문화, 예술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이것이 바람직한 나라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인민이 정당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이미 썩어가는 나라다. 지금 우리가 급하게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는, 일본과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긴급한 핵발전소의 폐기문제와 하루 세끼 먹거리의 재료들의 오염 문제들이 되어야 할텐데, 정작 중요한 사안들은 잊혀지고, 정치가와 정당의 시시콜콜한 내용들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것은, 지배계급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도구인 언론의 행태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이 만들어가는 프레임에 놀아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지식이나 배움 정도, 부와 명예의 수준을 떠나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어리석은 인민들은, 지배계급이 만든 논리에 쉽게 함몰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는 관계 없이, 지배계급을 위해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일수록 그 경향이 강하고,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지배이데올로기의 마타도어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정확하게 반대하지 않거나, 애매하게 대응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투항해 돈과 권력을 확보하려는 자발적 노예같은 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국가, 또는 집단에서 정의롭고 비판적인 지식인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현상이다. 지금 한국사회가 바로 그렇고, 그래서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투항한 지식인들의 역겨운 행동을 비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당장 해야 할 일은, 지배계급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공동체, 협동조합, 기본소득의 지급, 복지의 확대와 같은 공공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와 정당, 정치인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드라마, 먹방 따위의 너절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스로의 인격과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것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이고, 세월호 참사와 일제 성노예 할머니들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발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고, 우리가 올바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에 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종교의 정체 또는 본질
    종교의 정체 또는 본질 사실, 종교의 정체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수 백 개의 나라와 인종, 민족은 다르지만 종교는 그런 경계를 허무로 어디든 스며들어 적시는 물과 같다. 현대까지 살아남은 종교는 대체로 기독교(구교, 신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불교와 힌두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믿고 있으니, 지금부터 하는 말의 주된 대상은 '기독교'가 될 것이다. 기독교도가 가장 난감한 부분은 '구약'과 '신약'의 내용이다. 분명 같은 종교에서 비롯한 '성서'라고 말하지만, 두 책의 내용은 도저히 하나의 종교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하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신자라고 해도 '구약'이나 '신약'을 다 읽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경전조차도 다 읽지 않는 것은 물론, 읽어도 그 뜻을 모르면서 '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인을 보면, 멍청하고 한심한 생각과 더불어 불쌍한 생각까지 든다. '구약'에 등장하는 신은 분노와 폭력의 신이다. 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은 '하지 마라!'라는 명령이다. 무언가를 하면 신이 노여워하고, 그 대가로 벌을 받거나 추방당하거나 자손이 끊기거나, 악마에게 이용당한다는 말 뿐이다. 이걸 오로지 '신'이라는 절대자의 명령으로만 보면, 그 사람은 중세 이전에 사는 사람과 똑같은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구약'은 2천년 전에 살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과 계율들이었다. 당시 지도자들에게 인민들은 말할 수 없이 멍청하고 무지하며 답답한 족속들이었다. 이미 종교가 발생하고 제사장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인 인민들을 자신들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다뤄야 할 필요를 느꼈고, 당시 수준으로는 공포와 억압, 처벌, 협박 등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온갖 자연현상들은 무지한 인민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그것은 곧 '신'의 분노로 표현되었다. 좋은 일이 생기거나 풍년이 들면 신의 축복이라고 했고, 자식이 태어나거나 결혼을 하는 것도 축복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저주와 분노와 공포가 있어야만 했다. '구약'에서 말하는 '십계명'이라는 걸 보면, 그것이 '신'의 목소리인지, 지배자의 목소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계명의 대부분은 지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규범에 불과하다. 현대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이런 내용이 당시에는 석판에서 새겨서 가르쳐야 할 만큼, 당시의 도덕규범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더 웃기는 내용은,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돌판에 새겨 내려온 당시에도 이미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니,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일상적이었는가를 말해 준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모두 상징적인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창작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우리는 글자로 씌어진 내용이 아닌, 그 글이 상징하는 진짜 사건이 무엇인가를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군 신화'의 경우, 기독교의 '구약'과 좋은 비교 자료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단군 신화'를 그저 하나의 '신화'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게 된 이후, 농경민족이 살아왔던 과정을 압축한 것으로, '단군 신화' 안에는 5천 년 전 당시의 세력 분포-호랑이족과 곰족-와 이들의 결합, 농사를 짓기 위한 자연 환경의 필요성과 다양한 직업의 생성 등이 비교적 잘 전달된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30년대에 경제학자 백남운에 의해 '조선사회사상사'에서 밝힌 내용으로, 신화를 유물론의 시각으로 분석하면 더 이상 '신화'라는 애매한 관념적 상상은 사라지고, 인류가 살았던 과정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신약'에는 예수가 등장한다. '신약' 역시 예수라는 인물이 살았던 시기에서 이미 수 십년에서 수 백년의 시간을 두고 쓴 편지글을 나중에 종교지도자, 즉 지배계급이 모여 재편집한 내용이므로 당연히 창작이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의 신은 '인격신'이라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창세기'에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반대로 읽으면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닮은 '신'을 창조했다는 말과 똑같다. '인격신'은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에 활발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유일신의 근원은 '태양숭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오로지 '기독교신자'들만 자신들이 믿는 신이 유일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이시타인이 말했듯,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이성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이고 확장하면서, 더 이상 고루한 '인격신'의 존재는 필요 없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모든 종교가 과학의 성과를 인정하고, 과학에 수렴할수록, 즉 '인격신'이 아닌, 진정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할수록 원시적 종교가 주는 어리석음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을 이성을 갖고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의 문명과 진보를 받아들이고, 인간이 만든 길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과거의 인류는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비이성적이었다. 그리고 비이성적인 행동은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무수한 전쟁과 살육을 보라. 인간은 종교가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하루도 끊이지 않는 분쟁과 학살의 근원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종교를 버리는 것만이 인류의 평화를 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인종차별, 학살, 종교분쟁, 사기, 편견 등이 인류 전체의 범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고, 과거로 퇴행하려는 악의적인 행위임을 종교인들은 알아야 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선량한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으로 선량함을 지키는 것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정의롭고 선한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그렇게 행동한다. 오히려 종교의 외피를 쓰고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이 인류에게는 해악인 것이다. 인격신의 존재가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가를 알려면, 우주를 보라. 빛의 속도로 300억년을 가도 끝이 닿지 않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작고 푸른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신이 믿는 그 신이 300억년이 넘는 우주를 만들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신은 처음부터 없었고, 인간이 만들었으며, 그렇게 만든 신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의 합리적인 태도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안철수 의원께
    안철수 의원께 날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언론의 포화상태가 이제는 도를 넘어서고 있고, 그로 인해 여론도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안철수 의원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안철수 의원께 한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알던 예전의 안철수 대표와 지금의 안철수 의원은 사뭇 다른 사람입니다. 물론 예전과 지금의 역할, 입지, 철학 등이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됨'입니다. 그 사람의 ‘기본'과 ‘철학'이 바뀌게 되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안철수 의원의 중심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흔들리지 않고 있다면, 언론이 아무리 찧고까불어도 걱정이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예전의 그 담담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안철수 의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휴간을 결정한 컴퓨터 잡지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했던 한 워크샵에서였죠. 1박2일의 그 행사에는 당시 유명한 프로그래머들이 대부분 참석했고, 저는 프로그래머는 아니었지만, 그 잡지의 부록을 기획하고 글을 쓰던 입장이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의 앞자리에서 안철수 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뒤로 안철수 님이 ‘안철수연구소'를 세우고, 본격 IT사업을 시작한 1999년에 저도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안철수 님과 창업 멤머 가운데 저와 친분이 있었던 분들의 도움이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의 안철수와 지금의 안철수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변하는 것 자체는 필연이지만, 어떻게 변하는가는 상당부분 개인의 의지가 반영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재직하던 1999년부터 2005년까지는 회사도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고, 직원들도 20, 30명 정도에서 400명이 넘어가는 중견기업으로 매우 빠르게 커가고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다른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컸고, ‘안철수연구소', ‘안랩'에서 일한다는 것에 긍지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직원들 뿐 아니라 ‘안랩'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시선 또한 그러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당시 코스닥 열풍이 불면서, ‘안철수연구소'가 코스닥 상장만 하면 돈방석에 앉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다들 떠들어 대던 때에도, 올바른 길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안철수 대표님의 발언으로 사람들은 더욱 놀라면서 안철수 대표님을 존경하게 되었구요. 안철수 대표님은 대외 활동이 많아지기 전까지는 회사 안에서 스스럼 없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도 같이 먹는 소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자본가니, 경영자니 하는 그런 살벌한 단어가 아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한 사람의 개발자로서, 한국 컴퓨터 업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일정부분 희생한 의학도로서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안철수 대표님의 진심과 마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제가 회사에서 퇴직한 이후, 오히려 회사 내부의 사정을 직원일 때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저는 안철수 대표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의 장막'이 안철수 대표님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증거를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퇴직하는 과정에서 직접 겪었던 일과, 그 이후에 가까운 벗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면, 안철수 대표님의 이미지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이긴 해도, 실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맛는 말만을 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폭군 아래 간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간신들 때문에 폭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간신들과 폭군이 서로 교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날, 안철수 의원이 정치 입문 당시의 그 깨끗하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간철수', ‘강철수' 같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참담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단지 반대파들의 마타도어 뿐일까요?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나라에 중요한 사건들이 터졌을 때, 그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거나 행동한 경우를 거의 볼 수 없었고, 지금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반민주, 반인권, 반노동의 상황에서도 어떠한 반대 주장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정치가라면, 그것도 대통령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는 정치가라면 현재 대두되고 있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과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 사건도 그렇고, 매번 광화문과 시청에서 열리는 민중집회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리가 여당도 아니고, 야당의 자리이며, 현재 정권이 인민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몰아가고 있음에도 민중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내부의 권력투쟁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고통 받는 인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다 해결할께'라는 생각이라면 그것이 예전에 박근혜가 말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김장 담그기에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김치나 먹고 오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면, 예전의 썩어빠진 정치가들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고, 안철수 의원 개인이나 한국정치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겁니다. 문재인 대표와의 권력투쟁은 안철수 의원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백의종군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필요한 방법이고, 무엇보다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전국을 돌면서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많은 사람들, 노인, 여성, 어린이, 장애인, 농어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만나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싸움을 멈추고, 혈혈단신으로 ‘하방'하시기를 권합니다. 튼튼한 신발을 신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걸어서 이 나라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보시길 권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 나라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바꿔야 하는지 진심으로 배우시길 권합니다. 기존의 정치가들이 보여주는 편협하고 이기적이고 모리배 같은 모습들은 우리가 바라는 정치가의 모습이 아닙니다. 끼리끼리 담합하고, 자신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고, 돈과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정권과 국회의원들이 바로 이 나라를 망치는 주범들입니다. 그런 곳에서 뛰쳐나와 오히려 거친 광야에서 외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가의 철학은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거리에서, 시장에서, 노동현장에서, 시골의 논밭에서, 어촌의 바닷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안철수 의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쓴소리를 하게 됩니다만,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나마 남은 잔불 같은 애정도 거둬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가 아니라 ‘인민'에게 중요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진보세력은 부르주아 정당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세력은 부르주아 정당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리멸렬. 지금의 부르주아 정당-여당인 새누리당은 명확히 인민의 적이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고, 상대적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련)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한다-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단어다. 게다가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인 정의당 역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보수세력은 부패로 망하고, 진보세력은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한편으로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야비한 음모가 감춰진 마타도어에 불과함을 인식해야 한다.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드러나는 투표 결과를 보면, 한국의 진보세력은 대체로 약 7%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결과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는 다르게 드러나는데, 선거의 특성 때문임은 당연하다.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약 35%대, 새정치민주연합이 31%대라고 대략 확인할 수 있는데, 지지 정당이 없거나 어떤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부동층이 약 27-30% 이상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에서 중요한 사건이 갑자기 떠오를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대체로 진보적인 편이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인민의 시각을 보라. 광우병 사태 때나 한미FTA 당시를 떠올려 보면, 정당의 지지도와는 관계 없이 인민들은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안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1987년, 1988년의 민주화 투쟁을 돌아보면, 억눌렸던 노동자, 인민의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될 때,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지금 야당(새정련)의 행태는 인민의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정치권력의 내분으로만 이어지고 있다. 국회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의 정당 싸움은 인민의 삶과 멀어진 상태이고, 그들이 인민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인민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부분, 수구 정당인 반동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기업을 비롯한 한국의 약 35% 가까운 사람들-이 지금의 부패하고 부도덕하며 반민족적인 사회를 만든 것은 분명하고, 그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들이지만, 그에 맞서는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세력들의 분열로 적들이 발호할 기회를 준 것 역시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약 70%에 가까운 부르주아 정당 지지자들과 지배세력은 모든 문제를 자신들에게 향하도록 하고, 자신들만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세력이라고 여론을 형성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 부르주아 정당과 지지자들은 진보적인 테제들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들을 언급하며, 정당과 정치가 개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척 할 뿐이다. 이들 사이에서 진보세력은 나름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인민들이 보기에 무능한 세력으로 찍혀 있다. 대중들은 무능한 진보세력보다는 부패하거나 기회주의적이어도 능력 있는 정당을 선호한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기대하기로는, 범진보세력의 연합을 갖추기 바란다. 물론 그런 연합을 위해서는 공통의 테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조금 느슨하더라도 진보적 사회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제도들을 공유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인민들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제도들을 만들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야당(새정련)에 대한 기대나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진보세력의 일부 명망가들은 부르주아 정당의 권력에 편입하기 위해 역겨운 짓을 하고 다니는 경우가 없지 않다. 진보세력이 만들어 내는 진보적 가치, 테제들은 무능하고 게으른 야당을 뒤에서 채찍으로 모는 효과를 낸다. 반대로 지금 당장 영향력이 있는 야당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기 시작하면, 진보세력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뿐더러, 진보세력의 분열과 고사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명망가-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하게 된다. 그들이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진보적 가치를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철학, 세계관, 진보적 태도를 눈여겨 봐야 한다. 정치에서도 '스타'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스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사실 '스타'를 만드는 것도 인민이고, 명망가를 우리의 지도자로 추대하는 것도 인민이다. 우리는 세력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명망가들이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기준에 맞는 명망가를 찾아서, 우리를 이끌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세력은 제대로 된 '스타'를 아직도 만들지 못한 상태이고, 부르주아 정당에서 활동하는 명망가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은 진보세력의 무능을 드러내는 상징적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진보세력 내부에서 대중에게 인기있는 정치가나 명망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부르주아 정당의 인기 정치가에게 기대하고, 그들로 하여금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도록 만드는 전술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재인이나 안철수와 같은 유명인은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고, 그 권력을 이용해 인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의 정치철학, 세계관을 들여다 보면-그럴 필요도 없이 지금 당장의 행동만을 봐도-그들이 인민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같은 부르주아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는 다르다. 앞의 두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인민과 직접 만나지 않는 자리에 있다면, 뒤의 두 사람은 행정가로서 구체적인 살림을 꾸리고 집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민의 삶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보세력의 대표적 아이콘이라면 역시 '노동조합'이다.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이 있고, 민주노총은 수 많은 진보세력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단체임에도 그들의 역량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진보세력이 탄압 받고, 세력을 확장할 기회와 여유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진보세력의 중심에 서서 한국 전체의 진보세력을 이끌고, 조직하며, 연대하고, 연합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함은 반드시 외부의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개인이나 조직은 그 위상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민주노총의 지리멸렬은 한국 전체 진보세력의 지리멸렬을 상징하고 있고, 그들의 무능은 한국 진보세력의 무능을 상징한다. 지금의 단계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진보세력이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세력 내부에도 조직에 빌붙어 기생하는 기생충들이 꽤 있기 때문에, 이런 쓰레기를 먼저 청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이름을 내걸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한때는 386이니 486이니 해대면서 권력의 단맛을 빨아 먹던 자들이 이제는 노회하게 정치꾼으로 표변해 진보세력의 사회적 역할에 걸림돌이 되는 자들이 꽤 있다. 부르주아 정당과 거래하기 보다는, 그들을 압박하고, 진보적인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자들은 대열에서 쫓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 가치란, 현 단계에 맞는 대중적 수준임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우리는 노동시간의 단축, 사회보장의 확대, 기업의 특혜 말소, 평등한 법의 구현, 세금의 공정하고 평등한 납부와 사용에 관한 감시, 각종 사회의 특혜 폐지,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완전한 구현, 경제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등 현 단계에서의 진보적 가치를 꾸준히 주장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정치가를 끌어들여야 하며, 무지한 대중을 교육시켜야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내부 투쟁은 자본가들이 가장 원하는 방식이다. 노동계급 내부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노동자를 갈라서게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이고, 실제로 '노동귀족'이라는 말로 이미 노동자의 분열은 현실이 되었다. 무지한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무지한 인민에 대한 교육은 진보세력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전술이기도 한데, 이걸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은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중은 '우중'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은 무리라는 뜻이다. 그들이 저절로 똑똑해질 거라고 믿는 것은, 어느날 원숭이가 인간으로 바뀐다는 주장하고 똑같은, 멍청한 말이다. 요약하자면, 진보세력은 핵심 테제를 공유하는 수준에서 연합해야 하며, 부르주아 정당과 정치가를 압박해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고, 인민에 대한 교육을 구체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요즘의 한국 정치나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보인다. 이제는 노예처럼 변해버린 인민들은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면서도 항의 한번 못하는 병신이 되어 버렸고, 가진 자들은 채찍을 더 심하게 내리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분노하지 않는 인민은 '자유로운 시민'이 아니라 단지 노예일 뿐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꽁트_매국노 사냥꾼
    <꽁뜨> 매국노 사냥꾼 BMW 820D가 미끄러지듯 호텔 입구에 들어왔다. 도어맨이 재빠르게 뒷문을 열자, 중절모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다른 문에서도 남자들이 내렸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짙은 선그라스를 쓰고 있었다. 중절모는 도어맨에게 팁을 건냈다. 도어맨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차를 호텔 앞 가장 좋은 자리에 세웠다. 중절모를 쓴 남자가 앞장 섰고, 두 사람이 뒤를 따랐다. 세 남자는 호텔 로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프론트에 도착한 남자는 점잖고 교양 있는 태도로 '회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물었다. 프론트 직원은 조금 당황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회장님의 거처는 1급 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이어서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은 여느 손님과는 달라보였다. '회장님 거처는 저희도 모릅니다만...' 직원은 지배인이 지시한대로 일단 모범답안을 말했다. 그러자 중절모에 선그라스를 쓴 남자는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팻말을 꺼내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1701호실. 우리도 알고 있어요. 거짓말 하면, 그 대가가 어떤지 몸으로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왔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됩니다. 아셨죠?' 남자들은 프론트를 떠나 엘리베이터 쪽으러 걸어갔다. 키가 크고, 군살이 없이 마른 몸매에 짙은 선그라스를 쓴 남자들이라면...직원은 회장이 있는 수트룸의 호출 버튼에 손을 가져갔지만, 누르지는 못했다. 1701호 객실은 호텔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네 개의 수트룸 가운데 하나로, 17층은 전체가 비어 있고, 오직 회장만이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수트룸이 차는 경우는, 회장이 초대한 사람이거나, 정치계의 거물이 요청하는 경우, 외국의 귀빈인 경우 외에는 예외가 없었다. 17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경호원 두 명이 24시간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 1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세 남자가 내리자 경호원이 다가왔다. '아, 손님, 여기는 객실이 없습니다. 잘못 올라오신 듯 한데, 다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경호원이 친절하게 문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세 남자는 1701호를 향해 걸어갔다. 경호원은 놀라서 세 남자 앞으로 달려와 가로 막았다. 그들의 허리에는 가스총이 매달려 있었다. 중절모는 다시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팻말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경호원들은 멈칫,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중절모 뒤에 서 있던 두 남자는 양복 저고리를 슬쩍 열어보였다. 그들의 허리에는 권총 손잡이가 보였다. 경호원들은 복도 옆으로 붙어섰고, 세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1701호 앞으로 다가갔다. 중절모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중절모는 조금 세게 다시 두드렸다. 몇 초가 지나고, 안에서 '무슨 일이야?' 하는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중절모는 온몸으로 문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그 충격으로 안에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멀리 나뒹굴었다. 중절모는 객실로 뛰어 들어 회장을 찾았다. 다른 남자가 넘어진 회장의 비서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며 거실로 들어갔다. 비서는 비명을 질렀다. 회장은 침실에 있다가 비서의 비명을 듣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침실에는 젊은 여자가 벌거벗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회장은 허리 아래에 큰 수건을 두르고,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는 침실에서 거실로 나오다 세 남자를 발견했고, 그 자리에 멈췄다. '뭐야, 당신들!' 회장이 소리질렀다. 비서는 문에 맞고 넘어지면서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를 봐서인지, 아니면 정말 아파서인지 비서는 회장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비서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남자가 주먹으로 비서의 얼굴을 강타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비서는 소리를 질렀지만 곧 멈췄다. 소리를 지르면 계속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서의 얼굴은 뭉개지고 피로 범벅이 되었다. 코뼈가 부러졌고, 이빨이 몇 개 부러져 입에서 튀어 나왔다. 눈두덩도 부어올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비서의 꼴을 보면서 회장은 선뜻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중절모가 턱으로 회장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회장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소파에 가서 앉았다. 회장 맞은편에 중절모가 앉았고, 두 남자는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놀라게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중절모가 정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짙은 선그라스 뒤쪽에 있어 어떤 표정인지 회장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중절모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으로 보아 그가 희미하게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이해하면, 우리도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하면, 그때는 회장님은 물론, 이 호텔 전체의 손님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지하주차장에 폭탄을 장착한 차가 있으니까요.' 중절모는 나즈막히 이야기했고, 놀라운 말이었지만 회장은 믿지 않았다. 저런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공갈협박이나 하는 놈들은 모두 사기꾼 개자식들 뿐이라는 것을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믿지 않으실테고, 설령 호텔이 다 폭발해도 회장님만 살아 있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중절모는 회장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여전히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저희도 회장님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대체 용건이 뭐요...' 회장은 이 남자들이 정부에서 온 사람들인지, 강도들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전화하셔서, 5만원짜리 현금으로 50억원을 가방에 넣어 호텔 현관 앞에 있는 검은색 베엠베 트렁크에 넣으라고 하세요. 저희 용건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지만, 당장 50억원을 어떻게...' 회장은 일단 버텨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장의 눈에서 별이 번쩍거렸다. 중절모가 회장의 따귀를 힘껏 때린 것이다. 회장의 왼쪽 뺨이 시뻘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회장은 아픈 것보다 치욕스러웠다. 평생 누구에게 단 한 번도 손찌검을 당한 적이 없는 귀한 몸으로 자란 자신이었다. 누구나 자기 앞에서는 벌벌 떨며, 허리를 굽히고,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 정치가들도 권력을 앞세워 큰소리를 쳐도 뒤에서는 자기에게 굽신거리고,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 돈은 권력보다 더 힘이 강하다는 것을 회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황제같은 자신이 범죄자들에게 뺨을 맞았다는 것이 원통하고 참혹한 기분이었다. '자, 지금부터 1분 안에 우리가 바라는대로 되지 않으면, 그때는 조금 더 짜릿한 맛을 보게 될 겁니다.' 중절모는 여전히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눈빛은 서리처럼 차가울 것이라고 회장은 생각하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호텔 재정 담당은 전화를 받았고, 금고에서 현금으로 50억원을 꺼내, 가방 두 개에 나눠 담아 호텔 앞에 서 있는 BMW 트렁크에 실었다. 재정 담당은 회장의 전화가 낯설지도 않았고, 이렇게 현금을 싣고 나가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중절모가 전화를 받았다. 로비에서 기다리던 또 한 명의 남자가 일이 무사히 진행되었음을 알렸다. 중절모는 전화를 끊고, 회장을 바라보았다.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저희가 직접 오지 않고 전화를 드릴테니, 그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시간 이후에 경찰에게 전화를 하거나, 잘 아는 국회의원이나 정보부 따까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도 아까웠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모욕한 이 범죄자를 꼭 잡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중절모는 일어서 문 쪽으로 걸어가다 발을 멈추고 회장을 돌아보았다. '아, 회장님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후작이었죠. 그때 일본으로부터 돈을 꽤 많이 하사받았고, 땅이며, 건물이며 각종 예술품까지, 고대광실에서 떵떵거리고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말을 마친 중절모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모자를 살짝 들어올리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회장은 떨리는 다리를 끌고 중절모가 떨어뜨린 종이를 집으러 갔다. 그 종이를 본 회장은 바닥에 철썩 주저 앉았다. 그 종이는 회장의 손자와 손녀들 사진이었다.
    • 칼럼
    • 백건우
    2021-07-30
  • 매실액은 설탕물, 매실씨는 독극물?
    매실액은 설탕물, 매실씨는 독극물? 아침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다, 어떤 페친이 링크한 글을 봤다. 그 페친은 그 글을 근거로,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매실액은 설탕물'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듯 해서 찾아보았다. 페친이 링크한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라는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었는데, 그 글의 시작은 '어느 분이 다음의 사실을 알려주셨다'로 시작한다. 즉,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서 들었다는 것이며, 그것이 사실인지, 과학적 근거와 증거가 있는 글인지에 대해서는 한기호 역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게다가 '누군가에게 들었다'라고 말을 하면서 본문에서는 '이계호 교수'라는 이름이 계속 나왔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이계호 교수는 충남대 화학과 교수이고, 그가 운영하는 '태초먹거리 학교'라는 건강과 관련한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한기호가 쓴 글의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www.kunkang.co.kr/q/home/sub1.php… 이 내용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매실액이 설탕물이며, 매실씨에서 독이 나온다는 주장이었다. 대학교수, 그것도 화학과 교수가 하는 말이니 그 말이 옳다고 믿을 수는 있다.하지만, 그 내용을 무조건(!)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지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 아닐까.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그럴까? 저 말이 과연 사실일까? 반대 되는 이론은 없을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우선,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 매실액과 관련한 내용만 살펴보자. 이계호 교수는 매실액이 50%의 설탕과 50%의 매실로 담그기 때문에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설탕물'이라고 말한다. 또한 매실씨에서는 청산가리와 같은 독이 나온다고 말한다. 일정부분은 사실이다. 그러나, 매실과 설탕이 50%씩 만나서 발효를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이계호 교수가 무식해서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일까? 매실씨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매실과 설탕이 만나 발효를 하는 화학반응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다당에서 단당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이계호 교수도 '다당'의 문제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다당을 모를 리 없다. 화학과 교수아닌가.설탕이 건강에 나쁘다고 하는 것은, 설탕이 다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탕과 매실이 섞여 발효를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이때 시간은 3년 이상을 말한다-다당 성분이 단당화되면서 처음 투입했던 '설탕'은 화학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매실씨에 있다는 독 역시, 매실과 설탕의 화학적 변화와 함께 삼투압 현상으로 인해 매실액이 초기에는 내부에 있던 매실액이 밖으로 나오고(매실이 쪼그라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역시 3년 이상이다-밖으로 나와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매실액은 다시 매실의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역삼투압이다.이 과정에서 매실씨에 있다는 독은 자연스럽게 중화된다. 게다가 매실씨에 있는 독으로 죽으려면, 먼저 매실을 배가 터지게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매실발효액을 담을 때, 통상 100일이 아니라, 3년 이상을 발효, 숙성해야 한다고 내가 늘 주장한 것처럼, 일정한 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출판마케팅이나 하는 한기호 같은 사람이 '누군가에게서 들은' 별로 근거도 없고, 자신 조차도 모르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퍼나른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는 지식인이 아니었나? 그런 글만 보면 상당히 무식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사람, 자기의 주관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떠는 것을 보면,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인터넷이 때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 발효액, 효소, 청, 액기스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오류들 때문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용어정리를 자청하고 나섰다.사람들은, 별 다른 생각없이 남들이 쓰는 단어를 따라 쓰는 경향이 있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강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늘은 발효와 관련된 용어 가운데, 우리가 가장 많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골라서 알아보겠다.요즘 매실 발효액을 많이 담는 시절이다. 매실 뿐 아니라 어떤 것이든 발효액으로 담글 수 있는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품이 매실이니, 매실을 예로 들어 잘못된 용어를 정리한다.매실청 : 이 단어는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조합의 단어이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정확하게 이 용어를 쓰려면 '매실조청'으로 써야 한다. '조청'이란, <엿 따위를 고는 과정에서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엿.¶ 떡을 조청에 찍어 먹다/조청을 묻혀 강정을 만들다/초여는 목이 타는지 행랑채로 이어진 설렁줄을 당겨 조청에 미숫가루를 타 내오게 하여 놋대접이 넘치게 들이켜기도 했다.≪이문구, 오자룡≫> 처럼, 꿀과 비슷한 점액질의 액체와 고체 중간 정도를 말한다.사람들은 '매실청'을 '매실액' 또는 '매실발효액'과 같은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청'은 한문으로 '造淸'으로 쓴다. 따라서 '매실청'이라고 할 때의 '청'은 조청의 '청'에서 온 것이다.매실액기스 : '액기스'는 '진액'으로 바꿔 말하거나 표기하는 것이 좋다. 즉 '매실진액'으로 말하면 알아듣기도 쉽고, 어느 정도 올바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적확한' 표현은 아니다.매실효소 : 이 단어도 많이 쓰고 있는데, 가장 잘못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효소'의 본디 뜻을 모르는 사람이 일본에서 건너온 '효소'라는 단어를 '발효액'에다 붙여 쓰는 바람에 오히려 혼동이 심해졌다. '효소'는 모든 생물의 세포 안에 들어 있는 촉매제를 말한다. 외부에서 효소를 마시거나 주입한다고 해서, 그 효소가 우리몸에 작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효소'는 매우 한정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므로, 만일 누가 '매실효소' 어쩌구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00% 사기꾼이거나 거짓말장이거나 무식한 자라고 할 수 있다.매실발효액 : 지금으로는, 이 단어가 가장 정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매실 뿐 아니라, 미생물이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발효를 통해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생명체는 그 개체 하나하나가 거대한 발효공장이며, 발효는 미생물이 유기화합물을 분해하여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매실의 경우, 매실과 설탕이 섞이면서 매실 속에 있는 미생물이 설탕을 먹이로 삼아 유기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설탕물이 매실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삼투압 현상을 통해 매실이 갖고 있던 진액을 끌어내어 매실의 효능이 담긴 물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매실 뿐 아니라, 흔히 '산야초효소'라고 하는 것도 완전히 잘못된 표현인데, '효소'는 모두 '발효액'으로 바꿔 부르고, 표기해야 한다. 인터넷이 정보를 빠르고 널리 알리는 도구지만, 잘못된 정보까지도 빠르게 확산시키는 부작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엉터리 이론으로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많고, 올바른 이론을 모르는 대중들은 이런 자칭 전문가에게 미혹되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우선, 용어부터 정확하게 알고, 모든 발효의 근본 원리를 되묻는 것에서 발효의 올바른 공부는 시작될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조차문(弔車文)-쏘렌토
    조차문 - 쏘렌토를 추모(追慕)하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양평(陽平) 사는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차자(車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남녀(人間男女)의 발을 대신해 종요로운 것이 차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차는 여러 종류의 차들 가운데 SUV라는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많은 곳을 두루 다닌지 우금(于今) 십 여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너를 처음 만난 것이 2003년 11월 25일,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구나. 수서역 앞에 있던 회사 건물 앞에서 너를 처음 만났지. 너를 운전하며 시골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그때 우리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골로 이주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너보다 한참 형님인 프로엑센트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때였지. 너는 튼튼하고 강한 힘으로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되어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 네가 우리집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엑센트는 명을 다하고 세상을 떴구나. 너는 한 해에 3만km 이상을 달리면서, 회사와 집, 전국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 충청도 아산의 조부모님 묘소는 한 해 두 번 이상 정기적으로 다녔고, 천안, 아산 등에 사시는 고모님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제주도의 곳곳을 두루 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구나. 너는 튼튼하고 힘이 세서 물건도 많이 싣고 다니고, 네 바퀴를 동시에 굴리는 능력이 있어 눈길에도, 얼음판에도,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도 씩씩하게 다닐 수 있어서 믿음직했다. 너는 멀리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우리와 함께 다녔고, 멀고 가까운 길을 늘 함께 다녔지.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냈다. 하지만, 세월의 무서움을 비껴갈 수 없어, 지난 2015년 8월, 너는 인천공항 가는 고속도로에서 바퀴축이 부러지는 큰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동안 험한 길도 많이 다니다보니 차 밑부분이 많이 삭은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했구나. 그동안 때가 되면 엔진오일도 정기적으로 갈아주고, 각종 소모품도 정품으로 갈아주면서 너를 잘 보살피려 노력했지만, 너의 밑바닥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너와 함께 한 지 이미 12년이 지났고, 38만km를 달렸으니, 그동안 함께 했던 애틋한 정이 있으니 아깝다 쏘렌토여, 어여쁘다 쏘렌토여,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特別)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자동차 중(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敏捷)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鬼神)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무죄(無罪)한 너를 보내려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쏘렌토여.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조차문(弔車文)
    조차문(弔車文) - 프로엑센트를 추모(追慕)하며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양평(陽平) 사는 모씨(某氏)는 두어자 글로써 차자(車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남녀(人間男女)의 발을 대신해 종요로운 것이 차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차는 여러 종류의 차들 가운데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많은 곳을 두루 다닌지 우금(于今) 십 여 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오.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이십여 년 전(年前)에 지금의 아내가 나와 결혼하기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최초로 구입한 차였으니, 그 인연이 또한 남다르다. 백색의 날렵한 몸체에 반짝이는 두 눈과 탐스러운 엉덩이를 한 귀엽고 예쁜 너를 처음 봤을 때가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았구나. 결혼 전, 저 멀리 오서산을 다녀오는 여행길에서 아내, 아니 그때는 멋쟁이 아가씨였던 그녀와 단 둘이 앉아 고속도로를 달리던 기억이 아직도 삼삼하구나.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한 다음, 아내의 도움으로 너를 운전하며 초보운전 시절을 보냈고, 우리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갈 때에도 너를 운전하며 대관령 고개를 넘었던 기억이 어제 같구나. 그때 처음으로 다른 차가 너에게 달려들어 너는 왼쪽 눈이 튀어나오는 중상을 입었더랬지. 생전 처음 당하는 교통사고로 우리도 몹시 당황하고, 너 또한 그 아픔과 충격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지. 하얗고 깨끗한 너의 몸은 늘 단정해서 어디에 있어도 귀엽고 단아했단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눈비를 맞기도 했고, 날마다 막히는 출퇴근 고속도로에서 차가 너무 막혀 스트레스를 받아 우리가 다투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지. 임신한 아내를 태우고 열 달을 무사히 출퇴근한 다음, 아이를 낳으러 산부인과에 갈 때도 너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강화도로, 강원도로 여행을 다닐 때는 뒷좌석에 아기 시트를 매고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구나. 그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너는 이제 세상에 없어도, 사진 속에 남은 너와 아기의 모습은 언제나 애틋하고 행복해 보인단다. 연애와 결혼, 신혼여행, 임신과 출산, 갓난아이, 그렇게 우리가 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늘어나고, 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때, 너는 항상 우리와 함께 했던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우리는 늘 너를 대견하고 고맙게 생각했단다. 신혼여행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일 말고는 사고 한 번 없이 무사히 십여 년을 함께 다녔고, 우리가 도시의 아파트에서 시골의 작은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함께 있었지. 그러다 2003년 11월, 새로운 차를 집에 들이게 되었고, 그 뒤로 너는 조금씩 아픈 몸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구나.결국 2005년, 친척에게 잠시 양도를 했으나, 머지 않아 너의 생명이 다하니, 그렇게 무심하게 너를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무죄(無罪)한 너를 폐차하게 되니, 백인(伯仁)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絶妙)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莫)하다. 네 비록 물건(物件)이나 무심(無心)ㅎ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프로액센트여.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샤오미 제품을 구입하다
    대륙의 실수, 샤오미 제품을 구입하다 인터넷에 샤오미 제품을 두고 '대륙의 실수'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극찬을 하는 글을 자주 보았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뜻일텐데, 정말 얼마나 훌륭한지 직접 써보고 싶어서 '직구'로 샤오미 제품을 구입하기로 하고, 샤오미 제품을 파는 곳을 알아보았다. 정작 샤오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팔지 않는 물건들이 많았다. 샤오미 제품은 국내에서도 구매대행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 딱히 '직구'를 할 이유는 없지만, 직구가 조금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틀림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곳을 찾았는데, geekbuying이 그곳이었다. 이미 '페이팔'에 가입을 한 터라 구입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주문까지는 쉽게 했는데, 배송이 문제였다. 직구라고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줄 알고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주문할 때 일부러 EMS를 선택했는데, 택배의 움직임을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문하고 며칠이 지나 EMS 홈페이지로 배송 조회를 했지만 물건이 다시 처음 발송한 곳으로 돌아갔다는 내용만 있을 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이메일로 판매 사이트에 메일을 보내, 주문한 물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며칠 뒤에 내가 주문한 물건이 반송되었다는 답장이 왔다. 결국 이 과정에서 무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났고, 담당자는 구매를 취소하고 돈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다. 짜증이 났다. 다시는 geekbuying에서 구입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더 오기로라도 주문을 더 해보기로 했다. 똑같은 주문 과정을 거쳐 택배 회사를 선택할 때, 이번에는 EMS가 아니라 TNT를 선택했다. 택배 비용도 EMS보다 훨씬 저렴했다. 이번에는 중국에서 한국까지 오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해서 다시 문제가 생겼다. 며칠이 지나도 배송 상황이 바뀌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국제 택배인 TNT가 한국에 물건을 보내면, 한국에서는 TNT에서 지정한 택배회사가 물건을 받아 배송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택배의 국내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TNT 쪽에 전화를 걸어 배송 번호를 알려주면 어떤 택배회사에서 배송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국내 배송이 잘못될 경우, 마냥 기다리게 될 수밖에 없어서 황당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나도 TNT에 전화를 걸어 국내 배송사와 국내 배송 번호를 확인하고, 국내 택배사에 전화를 했더니, 내가 사는 집주소와 전화가 확인이 되지 않아 배송 보류인 상태라고 했다. 전화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한 다음 배송을 부탁했다. 결국 물건은 잘 받았고, 무려 두 달 가까이 걸린 주문의 과정으로 알아 낸 것은 다음과 같다. - 해외 직구일 경우 EMS보다는 TNT가 낫다.(물론, 이건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겠지만) - 국내까지 물건이 도착하면 해외배송 회사에 전화를 걸어 국내 배송회사와 국내배송 번호를 확인한다. 물건을 받아 보니, 소박하고 단순한 갈색 박스가 인상적이었다. 샤오미 회장이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열렬한 추종자라고 하더니, 제품의 디자인과 포장까지 애플을 판박이처럼 따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설픈 포장보다는 차라리 잘 하는 기업을 따라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법 같았다. 위의 제품, 샤오미 블루투스 스피커는 26.69달러로, 3만원 정도다. 가격이 싼 듯 하지만, 성능과 비교할 때 적당한 가격이고 '대륙의 실수'라고 할 만큼 대단한 성능은 아니었다. 피스톤 3 이어폰은 2015년 형으로 17.99달러인데, 이 제품은 가격 대비 성능이 꽤 괜찮은 물건이다. 진짜 '대륙의 실수'라고 할만한 물건은 바로 이 체중계인데, 블루투스와 스마트폰 앱을 연동해 체중을 잴 때마다 그래프로 저장되어 체중 관리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도 18.99 달러로 매우 낮은 가격이어서 가격 대비 성능과 품질이 매우 훌륭한 제품이었다. 샤오미 제품처럼 성능이 좋고 가격이 싼 제품들이 중국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한국의 IT기업들이나 전자제품기업들이 상당한 위협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제조 단가는 한국과 중국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서, 원가를 얼마나 낮게 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
    • 생활
    • 물건들
    2021-07-29
  • 천규석을 읽는다
    천규석을 읽는다 천규석은 농부다. 우리나라에 이제 약 300만 명도 안 되는, 인구의 6%에 불과한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한국의 농부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가장 노령화된 집단이기도 하다. 농가 인구의 고령화는 31.8%로 우리나라 평균인 11.3%에 비하면 무려 세 배가 높다. 천규석은 늙은 농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급진적이며 단호하고 날카롭다. 그의 주장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몽상가’, ‘비현실주의자’, ‘정신나간 늙은이’로 매도한다. 천규석의 선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그를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는 데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천규석은 비타협적이며 논쟁적인 인물이다. 천규석은 오래 전부터 한국의 농업이 살 길에 대해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광야에서 외치는 외로운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농민은 줄어들고, 늙었으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 기업농, 대규모 영농 복합단지, 단위 면적 당 생산을 늘리기 위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 단일 작물의 대량 생산, 공장 방식의 작물 재배, 유전자 변형 등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 천규석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천규석의 급진적이고 격렬한 주장을 뒤집어 생각하면, 반자본, 반경쟁, 반도시, 반물질주의다.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자본주의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전복적인 주장이며, 자본주의를 극복해야만 가능한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천규석의 주장은 자본주의에서 태어난 노동운동의 한계조차도 뛰어넘는 급진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질타이기도 하다. 6%의 사람들에게도 읽히지 않는 천규석의 주장이 왜 옳으며, 지금 우리가 천규석을 읽지 않으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게 될 지를 그의 저작을 통해 알아보자. 천규석은 현재 일곱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땅덩이와 밥상 [창작과비평] 땅 사랑 당신 사랑 [명경]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실천문학] 쌀과 민주주의 [녹색평론]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실천문학]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 가 발병 난다 [실천문학] 윤리적 소비 [실천문학] 천규석은 일관되게 한국의 농업을 비판한다. 그것은 잘못된 정부의 정책일 때도 있고, 농사를 짓는 농민들일 때도 있다. 현재 한국의 농업은 법, 제도, 정책, 행정, 농사 기술, 농사를 짓는 농민의 생각 등 모든 면에서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한국의 농업이 피폐해지는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 한국 농업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부분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과 농민을 희생시키며 추진된 ‘근대화’라는 것은 천규석의 주장대로 전면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비판만 한다면, 많은 학자들이 하듯 그도 한 명의 비판적 이론가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천규석은 대학을 마치고 고향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는 명망가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며, 지식인연 하지도 않는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한국의 농업과 농민의 삶과, 농사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체제와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시작했다. 그의 말은 곧 그의 삶이며, 그의 몸짓은 곧 그의 언어이다.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농사와 농민을 가까이 하게 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시골에서 살며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는, 농민들은 소위 ‘관행농’이라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농기계의 도입,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한 농민들은 당연하게 화학비료를 논밭에 퍼붓고, 제초제와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농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양평 지역은 그나마 농약과 비료를 쏟아 붓는 관행농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곳임에도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유기농 인증은 각종 농약 사용을 3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땅의 토질을 검사해 합격해야만 받을 수 있는데, 여기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가에는 혜택이 많이 돌아가므로 군청과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민에게 유기농 인증을 받으라고 권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농민은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에는 농약을 치지 않거나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치더라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따로 유기농 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급형 농사를 짓는 소농의 경우, 한 해 먹고 남은 농산물을 알음알음으로 팔아 가용으로 쓰는데, 이들에게 유기농이란 의미가 없다. 쌀농사는 우렁이 농법(이 농법에 대해서도 천규석은 날카롭게 지적한다)으로 하고, 밭농사는 주로 고추, 마늘, 깨, 콩 등인데, 농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고추의 경우는 농약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소출을 위해 몇 차례의 농약을 뿌리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쉽게 ‘유기농’을 말하지만, 천규석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에서의 ‘유기농’은 대부분 거짓이다. ‘유기농’을 한다면서 비닐하우스에서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오직 천규석 뿐이다. 어느 지역을 가 봐도 유기농을 한다면서 비닐하우스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 또한 마찬가지다. 심지어 유기농을 몇 십 년째 하고 있는 농민도 비닐하우스에서 밭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매도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농사지을 땅이 좁아서 단위 당 소출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고, 특수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변명들이 모두 구차하게 들리는 것은, 천규석의 말이 옳기 때문이다. 지금 도시에 공급되고 있는 채소는 농약과 복합비료 범벅이다. 특히 비닐하우스에서 짓는 작물은 그 안에 닭똥, 복합비료, 농약투성이며, 비닐하우스 내부에서 채소와 농민 모두 농약에 중독된 상태라고 고발한다. 천규석은 한국 농업과 관련한 모든 부문을 두드린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가장 핵심이 되는 씨앗의 출처는 다국적 곡물자본인 카길, AMD, 루이 드뢰피스, 몬샌토 등에 종속되어 있고, 모든 동물의 사료와 식품의 주원료인 옥수수 역시 곡물자본을 통해 수입 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수입 사료를 먹은 소, 돼지, 닭의 분뇨로 비료를 만들어 그것을 밭에 뿌리고, 수입한 씨앗으로 식물을 키워 먹는 상황을 많은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식량 자급율이 겨우 26%에 불과하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겨우 2.5%의 먹거리 자급률이니, 이것은 한 나라의 농업이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인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정부는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기조로 값싼 노동력의 수급을 위해 구조적 이농(離農)을 유도했다. 농산물 가격의 통제를 통해 도시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라는 현재에도 농업의 자본과 도시에 의해 수탈, 착취당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농, 대농 위주의 농업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우루과이라운드, WTO, FTA 체제에서 산업경쟁력 위주의 정책을 일관하고 있으며, 농업의 피해와 포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 농업의 총체적 문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사의 기초가 되는 씨앗, 비료, 농약, 퇴비 등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강요된 농산물 가격의 낮은 가격은 농사를 기계화, 개별화 노동으로 전락시켰다. 70년대부터 시작된 비료, 농약에 의존하는 화학농업이 농사를 망치고 있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농산물의 유통 경로는 농민을 착취하는 구조다. 현재의 농협은 농민을 이용해 돈을 버는 금융기관이자 유통회사일 뿐이다. 정부는 농토의 비율을 계속 줄이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농지를 쉽게 매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농민이 농산물 가공업을 쉽게 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농민은 농협을 통해 농사빚을 지고 헤어날 길이 없는데,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외국 농산물의 수입으로 쌀과 농산물 가격의 폭락은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농촌문화와 생산문화의 파괴주범은 도시의 상업주의적 소비문화와 제국주의적 속성 때문이다. 식량(먹거리)을 수입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민족과 국가의 존립을 포기하는 것이다.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 노동력의 공급원이 되는 농산물 저가격 구조,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는 제도를 타파해야 한다. 한국의 대표 자본가 모임인 전경련의 한 자본가는 한국의 모든 농업을 폐지하고 그 땅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수출하고 쌀은 수입해서 먹고 살자는 말을 했다. 자본가에게 농업은 쓸데없이 땅이나 차지하고 있는 애물단지 이상이 아니다. 그러나 농업은 한 나라를 유지하는 근본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문화와 예술의 탄생지이며, 생태계를 유지하고, 중금속 오염과 수질 오염 등을 정화하는 자연치유 능력까지 갖춘 생명 공생 과정이다. 천규석은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 ‘진정한 노동해방도 도시와 공장 안에서 노동자가 자본가나 경영자와 평등해지는 것이 아니고, 지속 불가능한 이 공업산업사회를 해체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촌공동체를 다시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목표이자 진보 운동의 목적이기도 한 자본주의 해체와 그 대안 사회의 구현을 뛰어넘어 ‘인간 해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천규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를 ‘순진한 몽상가’라거나 ‘현실을 모르는 낭만주의자’라거나 ‘이상주의자’라는 딱지를 쉽게 붙인다. 천규석이 주장하는 사회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내용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천규석은 일관된 주장을 펼쳐 왔다. 비료, 농약, 제초제로 망가지는 땅은 화학농, 유기농을 넘어 생명공동체 농업으로 이행해야 한다. 노동자에게 생활공동체, 조합운동을 확대하자. 계절식, 완전식, 조화식, 소식의 자연건강식과 생명공동체가 대안이다. 이웃공동체와 공동체 생활양식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증산을 위해 비료, 농약의 과다 사용이 문제이며, 식량이 부족하면 공동체로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유기농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농민 자신의 생산축소, 도시인의 소비축소, 모든 사람의 욕망축소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유기농공동체 운동은 인간이 욕망축소에 기초한 자급자족적, 공동체적, 지속적인 삶 운동이며, 공생적인 농업문화의 주체성과 자존심의 부활 운동이다. 천규석은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든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 공동체’의 발기문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1) 모든 생명은 유기적 연관 속에서 더불어 무한하게 공생한다. 2) 비료 농약 생활하수 공장폐수 대기오염과 산성비, 오존층 파괴, 지구 온실화 등의 복합오염에 죽어가는 땅을 살린다. 3) 무농약 저공해 계절농산물의 직거래를 원칙으로 한다. 4) 농촌과 도시가 함께 사는 삶이다. 5)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6) 한살림 농사는 이웃 농민과 두레로 지어야 한다. 7) 돈많은 사람의 개인건강식을 위한 유통업소가 아니다. 8) 한살림 물품은 가격이 아닌, 생명가치로 따진다. 9) 물품 이용은 5세대 이상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 봉사자를 통해 공동구매한다. 10) 이웃과 대화를 통한 자기변화를 거듭해야 한다. 11) 자원을 절약하고 재생 순환시키는 구체적 생활실천을 한다. 12) 쓰레기 없는 세상을 지향한다. 13) 스스로 공생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린 세계이다. 14) 이웃 생명을 위한 자율적 봉사와 희생을 도모한다. 15) 생명의 유일한 도리이자 의무이다. 16) 민족주체의 밥상공동체다. ‘한살림 공동체’를 위한 내용이지만, 천규석의 생각이 어떠한가를 잘 정리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천규석은 농사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도 있다. 미래의 공동체 농장을 운영하기 위한 실천적 원칙들인데, 아래와 같다. 1)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재료로 농장을 유지(자연농법) 2) 동물을 키워 퇴비를 자력으로 생산 3) 가축은 그 농장에서 나오는 식물로 사육 4) 재배되는 식물의 다양화(공생농법) 5) 유기물질의 순환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6) 토지 내의 규소의 순환을 강화 7) 토양, 동물, 식물의 균형적 상태를 유지 8) 파괴된 환경이 복구되어야 한다 9)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윤작을 한다 10) 풍토 기후에 맞는 적지 계절농을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공동체 농장을 유지하는 철학적 원칙도 제시했다. 1) 너무 많은 시간 육체적 노동에 혹사당하지 말라 2) 농장을 위해 외부로부터 구입하는 물품을 최대한으로 줄이라 3) 농업을 돈이 아닌 정신적인 면을 더 중시하는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라 이와 같은 원칙들은 천규석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기준이다. 천규석은 ‘소농’, ‘가족농’, ‘소규모 공동체’, ‘자급자족형 공동체’, ‘두레농’, ‘공생농두레’ ‘지역자급자치공동체’ 등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천규석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분명한 공동체의 모습이 드러난다. * 소농을 확대한다. 소농 한 가구는 도시의 스무 가구와 농산물을 직거래 한다. * 소농은 두레로 확대한다. 두레의 다섯 가구는 공동생산과 함께 도시의 이백 가구와 농산물을 직거래 한다. * 농사는 완벽한 순환농으로 한다. 퇴비도 자체 생산, 쓰레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 모든 학교(유치원부터 대학까지)와 학교급식을 농가(농두레)와 직거래 한다. * 노동조합이 있는 곳부터 공장, 기업의 식당에 농가(농두레)와 직거래 한다. * 도시에서 귀농하는 젊은이들을 농두레에서 흡수해 농사를 가르친 후 함께 농두레에 참여하거나 독립 소농으로 자립한다. * 도시의 조직-노동조합, 시민단체, 동호회, 회사원(들), 향우회, 동창회, 아파트 부녀회, 주민단체 등-은 농촌에 있는 땅을 매입해 그 지역의 농두레에 농사를 맡긴다. * 농두레에서 지은 농산물은 위에서 말한 도시의 조직에서 직거래로 공동구매한다. * 농산물 가공 역시 농민이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여기서 천규석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에너지 자급과 관련해 필자가 자급자족공동체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태양광 발전’, ‘지열 발전’, ‘풍력 발전’이었다. 기존의 화석연료의 반생태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그마져도 곧 고갈될 날이 머지않았으니 당연히 자연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천규석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자급자치공동체’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여기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 체제 옹호자들은 수출을 해서 먹고 사는 현재의 상황을 모르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천규석의 주장대로라면 백 년 전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진보며, 인간다운 삶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진보적이라는 사람들 대부분도 미래의 전망에서 ‘농업’을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천규석이 말하는 농업의 미래를 바탕에 놓지 않고 대안 사회를 말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또다른 연속이며, 모래성 위에 쌓는 건물과 같다. 천규석은 지금과 같은 국가간 무역이나 심지어 공정무역이라고 불리는 중개무역 조차도 ‘국제분업에 의한 비자급적 시장 수탈을 공정무역의 이름을 빌려 옛 식민지 땅에서 현재와 미래까지도 계속 연장 확대하려는 신식민지주의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천규석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문제는 많다. 현재의 강고한 자본주의 구조를 극소수의 공동체 운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와, 외국과의 무역을 줄여간다 해도 국민 모두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역량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삶의 질은 담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다. 우리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국가 단위의 자급자족 모델은 쿠바다. 쿠바는 미국의 무역제재로 인해 스스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식량자급률 95%를 이루며 자급자족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것도 화학농이 아닌 소농 위주의 유기농으로. 하지만 우리는 분단 상황이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의 힘에 의해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못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쿠바와 엄연히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고, 안타깝게도 그 조건이 몹시 불리하고 열악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천규석을 읽어야 하고, 천규석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미래의 패러다임이 너무도 분명하게 ‘농업’으로 이행하기 때문이다. 21세기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파괴로 인한 피해만으로도 과학기술을 부르짖는 자들의 말로가 어떤가를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고층빌딩, 첨단 가전제품,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텔레비전, 냉장고, 대형매장 등 생활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재에 비해 천규석의 공동체는 분명 낯설고 힘든 세상이다. 물자는 흔하지 않고, 마트에도 상품은 넘쳐나지 않을 것이며, 도시는 축소되고, 도시의 온갖 소비적 상업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소비,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사라지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발적 노동을 하고, 자신과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자기 수련, 학습과 취미 생활이 늘어나고, 경쟁이 사라진 공간에는 협동과 화합의 문화, 예술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도 민중들의 자발적 공동체는 ‘두레’로 나타났고, 작은 공동체와 마을 단위의 두레는 자급자치를 바탕으로 다른 공동체와 다른 마을과 연대하면서 지역문화를 꽃피웠다. 역사는 달라도 인간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경쟁이 아닌 공동체이며, 두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제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바탕으로 강고하게 번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체제의 한계가 뚜렷이 보이듯, 그 종말도 머지않았음을 천규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천규석의 ‘공생농두레’는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철저한 계급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노동에서 해방되는 길,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 인간으로 독립해 스스로 먹거리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자급자립공동체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고, 대안 사회를 꿈꾸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불온하다면 천규석은 불온하다. 그 불온함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두려움의 표현이고, 무지와 이기심에서 나오는 불안함의 표현이다. 자신이 가진 알량한 기득권이나 약간의 물질적 자산을 잃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진정한 진보’로 나아가지 못하겠다고 완강하게 버티는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얻는 교훈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 같아도 이미 그 수명은 다 해가고 있고,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수탈한 결과 번성할 것만 같던 자본주의 체제는 곧 정점을 지나 추락하게 되고, 대안 사회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때 천규석은 모두가 다함께 사는 사회, 인간 뿐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면 천규석은 비현실적 인간이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걷고,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두 가지로 부른다. 멍청한 사람이거나 선지자거나. 천규석은 멍청한 사람일까, 선지자일까. 우리 사회에서 노구의 몸으로 홀로 ‘자급자족두레공동체’를 외치는 사람은 천규석 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작지만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고, 폭풍우를 몰고 오는 한 점 구름 같은 존재다. 그가 이 땅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참고문헌 이 땅덩이와 밥상, 천규석, [창작과비평] 땅 사랑 당신 사랑, 천규석, [명경]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천규석, [실천문학] 쌀과 민주주의, 천규석, [녹색평론]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천규석, [실천문학]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 가 발병 난다, 천규석, [실천문학] 윤리적 소비, 천규석, [실천문학] 녹색평론 농민신문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애플은 삼성과 다를까?
    애플은 삼성과 다를까? 지난 10월 말, 경향신문에 삼성과 애플의 3분기 실적 발표가 있었다. 삼성은 매출액이 52조 1800억원, 영업이익이 8조 1200억원이었고, 애플은 매출액이 39조 4500억원, 영업이익이 12조원이라고 했다. 영업이익에서 온갖 경비를 빼야 순이익이 나오므로, 이 돈이 다 삼성이나 애플의 주머니로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한 분기(3개월)에 저 정도의 돈을 벌었다는 건 어떻든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삼성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반노동자’ 기업이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노동자의 권리, 노동자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죽어나가고 있어도 삼성은 물론, 이 사회도 무신경하기만 하다. 그리고 애플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세계 곳곳에 있는데, 얼마 전,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폭스콘’이라는 회사에서 어린이 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되었다. 삼성은 우리나라 기업이고, 삼성의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는 물론, 정치까지 흔들릴 정도다. 심지어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들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재벌 기업인 것이다. 반면 애플은 미국 기업이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병으로 사망하자, 세계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추모했다. 나 역시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만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면, 내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듯, 그렇게 추모했을까? 여기서, 많은 사람은 이율배반의 태도를 갖게 된다. 애플은 기업이고, 기업은 ‘이윤’을 발생시키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한다. ‘착취’라는 말이 잔인한 단어 같지만, ‘착취’라는 말 외에는 어떤 단어로도 기업의 생존을 설명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자본가였을까? 이건희 회장이 자본가라는 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동의하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본가? 경영자(CEO)? 과연 정체가 뭘까? 왜 우리는 자본가는 비난하고, 한 회사를 이끌며, 회사의 이윤을 극대화 한 스티브 잡스는 비난하지 않는 걸까? 한 가지 질문. 선량한 자본가는 정말 존재할까? ‘선량한 자본가’라는 문장은 ‘선량한 살인자’와 같은 뜻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장(비문)’이다. 자본가 개인의 성향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자본가의 속성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지 않으면 존재할 의미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고 본질이다. 기업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도,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적당히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경쟁의 논리’ 즉, 자본의 논리가 학교 교육은 물론, 사회 곳곳에 모두 적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학교에서 성적으로 경쟁하고, 개인은 개인끼리, 조직은 조직끼리, 기업은 기업끼리 치열하게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은 피땀을 흘리며 쥐어 짜이고 있다. 노동시간은 길어지고, 컨베이어 벨트는 더 빨리 돌아가고, 노동자 숫자는 줄이고, 임금은 줄어드는 현상이 왜 생길까? 그것도 경쟁 때문이다. 노동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먹고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결국 노동자들도 생존을 위해 경쟁해야 하고, 노동시장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자본가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요구해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스티브 잡스가 ‘자본가’가 아닌 ‘혁신적 리더’라고도 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연봉도 1달러 밖에 받지 않고, 대단한 부를 누리는 다른 자본가와는 다르다고 한다. 자신이 청렴하고, 부자가 아니라고 해서,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자본가’라는 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미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들에게 원가를 줄이라는 요구를 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가 절감’이라는 말은, 제품을 생산하는 비용을 줄이라는 뜻인데, 원료비와 기계에 들어가는 비용 외에는 노동자의 임금 뿐이다. 그리고 원료비와 기계에서 ‘이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동자의 ‘노동’에서 이윤이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배웠다. 물론,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재료와 공장 설비에서 원가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원가 절감’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라는 말과 같다. 애플과 거래하던 중국의 ‘폭스콘’은 이윤이 겨우 1%에 불과했지만, 거기서도 더 낮추라는 요구를 애플에게 들었다고 했다. 애플과 거래하는 국내의 한 기업은 심지어 0.004%의 원가를 절감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고 했다. 하청 업체에 단돈 1원이라도 적게 주면, 그 돈은 결국 삼성이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 원청 기업의 이윤으로 돌아간다. 사무직 노동자와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문제지만, 이윤의 대부분은 자본가와 주주들-대주주들-에게 집중되므로, 앞에서 쓴 3분기 실적의 대부분도 불과 몇몇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는 뜻이다. 결국, 애플도 삼성과 다를 바 없는 기업이고, 그들도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해서 자본가와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라는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문, 방송에서 애플의 신제품을 사려고 애플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애플 제품을 들고 환호하는 소비자를 인터뷰하며 애플 제품이 놀라운 신기술의 집합체라고 보도하는 동안,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기업의 본분은 '깨끗한 돈'을 버는 것이다
    기업의 본분은 ‘깨끗한 돈’을 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기업이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옳은 주장 같지만, 이는 왜곡된 주장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그리고 법에 따라 정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 단순하고 명쾌한 과정이다. 다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에서 온갖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문제인 것이다. 이윤 추구를 위한 활동이 불법으로 이루어지면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모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힘들고 어렵게 번 돈을 사회에 내 놓을 때는 좋은 뜻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대개 권력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해 탈법, 불법을 통해 돈을 긁어모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예전에 안철수 교수도 주장한 바가 있듯이, 기업의 역할은 깨끗하게 번 돈으로 세금을 정당하게 내면 되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제도 정비를 통해 탈법, 불법을 저지르면 기업이 망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정당한 경제활동을 통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만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니, 대기업 자본가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느니 하는 요식행위가 오히려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정부가 세금을 정확하게 걷고, 탈세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쪽박’을 찬다는 엄정함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렇게 걷힌 세금을 알뜰하게 쓴다면 지금의 예산으로도 우리나라는 훌륭한 복지국가가 될 것을 확신한다. 기업 역시, 돈을 버는 과정이 투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에 대해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충분한 임금과 사회 수준에 걸맞는 복지 제도를 갖춰야 한다. 노동자의 피땀을 빨아 먹는 흡혈귀와 같은 모습이 바로 '자본가의 얼굴'임을 자본가 스스로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이 고용한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과 복지를 제공하면, 그 노동자는 다시 받은 임금을 생활비, 문화비, 여가활동비 등으로 쓰게 되어 사회 전체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게 된다. 기업, 특히 주식회사의 경우 자본가나 전문경영인은 '주주의 이익'을 가장 우선하고 있는데, 주주의 이익을 위해 실제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자의 임금, 복지 등을 소홀하게 한다면 '깨끗한 돈'을 번다고 할 수 없다. 깨끗한 돈이란, 제품(또는 서비스)의 제조 단계부터 그 과정이 투명하고,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가 사회 수준에 걸맞아야 하며, 노동조합 활동의 인정, 아동 노동력 착취의 근절, 이주노동자나 여성노동자의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과 원자재를 착취하지 않는 공정한 무역 등 고려해야 할 내용이 많다. 그래서 까다롭고 힘들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잘 지키는 것이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이며, 자본주의가 진화하는 길임을 자본가들은 알아야 한다. 일반 시민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도 기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쯤으로 여기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기업에 대한 정당한 감시와 비판은 지금보다 더욱 날카로워야 하지만, 기업이 깨끗한 돈을 벌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업으로 하여금 권력이나 사회에 눈치보지 않도록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 2세, 3세로 이어지는 세습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비판하고 바꾸도록 해야 하지만, 기부금이니 찬조금이니 성금이니 하는 따위의 ‘코묻은 돈’을 빼앗는 것 같은 치사함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고, 실제 사회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자본주의 나라라도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기업의 투명한 경영과 정당한 세금 납부, 모든 국민들의 높은 세금 부담률을 통해 교육, 의료, 육아 등의 분야에서 획기적인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박노자 교수의 출산기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여당의 예산 날치기와 같은 폭거는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세금을 정당하게 걷는 만큼 그것을 사용하는 것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피묻은 돈’을 주머니돈처럼 함부로 쓰는 것 자체가 범죄행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정당한 방법을 통해 번 ‘깨끗한 돈’은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는 과정을 통해 인정하자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박하고 몰염치한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천민자본주의 국가에서 ‘깨끗한 돈’을 만들 수 있는 제도와 감시와 시스템이 갖춰지려면 많은 시간과 혹독한 시련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자본 흐름의 투명성을 담보하고, 지하경제를 (거의 완벽하게) 조세 정책의 거름망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이윤의 흐름이 불법과 탈법의 지하수로 흘러나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소수 기득권자와 자본가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할까. 투명한 과정을 거쳐 깨끗한 부를 축적할 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기업 경영이 투명하면 사회가 투명해진다. 기업이 정직하면 사회가 정직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허파와 같은 역할이다.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것인지, 오염된 공기를 마실 것인지에 따라, 몸 전체가 건강할 수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교황을 저주하는 개신교
    교황을 저주하는 개신교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개신교 집단의 저주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무신론자가 보는 이번 사태는 한편의 희극이자 흥미진진한 종교전쟁이기도 하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결국 다수의 인간들이 믿는 '종교'라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비이성적 도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유럽계 교황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어도, 그의 출신은 여전히 이탈리아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인간적인 면에서도 그는 수 억명의 가톨릭 교도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이른바 '구교'가 가지고 있는 보수적 틀을 깨고, 성소수자, 제3세계 인민의 굶주림, 강대국의 폭력,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 물론, 그 역시도 체제 내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 하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불교 다음으로 가톨릭이 비교적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래서일까. 성서근본주의자들인 한국의 개신교 집단의 이성-그들에게 '이성'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겠지만-을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기독교에서는 구교든 신교든 같은 '성경'으로 신을 믿는다. 그들이 믿는 신은 유대인들의 민족신인 야훼이며, 무슬림이 믿는 알라이며, 러시아의 동방정교회며, 영국의 성공회다. 그 전에는 이집트와 중동의 고대신화에서 비롯한 태양신이었으며, 그 신은 결국 인간의 무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이다. 즉, 수 천년 전에 무지하고 미개한 인간들이 만들어 낸 상상의 이미지를 지금,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의 인간들이 그것을 '신'이라고 칭하며 역시 다수의 무지한 인간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과학기술문명은 최근 수 천년 사이에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발달했지만, 인간들의 지성과 지혜는 그렇지 못한 이중성을 띄고 있고, 그것이 바로 불행의 근원이기도 하다. 수 천년 전의 미개한 인간은 자연 현상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신'을 믿었지만, 오늘날의 유신론자들은 스스로의 미개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덜 진화한 인간들이기에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종교사업을 통해, 어떤 자들은 돈과 권력을 얻기도 한다. 한국의 개신교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도 미국의 개신교 영향을 듬뿍 받았기에 종교식민지로 종속된 종교부역자들이 더욱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친일파가 일본놈들보다 더 악랄했던 것을 보라. 필연적으로, 종교를 사업으로 여기는 자들은 반자본주의적 발언을 하는 교황이 마땅치 않은 것이 당연하고, 무지와 몽매의 상태에 있어야 할 신도들이 종교와 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어떤 목사는 교황을 두고 사탄이니 악마니 하는 발언을 했다. 아무리 가톨릭이 싫고, 자신들의 정체-사기꾼, 개독, 종교장사꾼-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다 해도, 동업자에게 하는 말 치고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한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요단강을 건너갔다.' 개신교에서 교황을 사탄, 악마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신교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으며, 개신교가 한국에서 종교가 아닌, 종교장사를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들은 교황의 '약간' 진보적인 태도에도 이렇게 더러운 본색을 드러내며 야만적인 행패를 부리는데, 하물며 진짜 사회주의적, 아니 북유럽의 복지국가적 태도를 보이기만 해도 한국 개신교의 목사들은 마치 미친개처럼 으르렁거리며 자신들의 사업을 방해하는 사람을 물어뜯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개신교가 유지된다는 것은, 그들의 먹잇감인 멍청하고 어리석고, 미개하며 정신적으로 진화가 덜 된 인간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증거다. 교황이 한국에 와서 이런 미개한 상황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큰 소득이겠다. 어떻든, 같은 신을 믿는 자들이 미치광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조금 더 진보적인 태도를 보일테니까.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숙주나물 공장에서의 사흘 1 추석을 앞두고 형제같이 지내는 동무의 부탁으로 숙주나물 공장에서 일했다. 명절(추석, 설) 앞이면 늘 많은 물량을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다. 단 사흘만 일하기 때문에 일손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점도 있을 듯 하다. 첫 날, 아침에 두 동무를 만나 개군면에 있는 순대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양평에서 약 30분 정도 달려 이천의 어느 한적한 마을 외곽에 자리잡은 숙주나물 공장에 도착했다. 판넬로 만든, 근처의 여느 공장들과 똑같이 생긴 푸른지붕의 공장은 그리 크지 않았고, 콘크리트가 깔린 마당은 깨끗했다. 숙주나물 공장의 사장이 동무의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장화로 갈아 신고, 장갑을 낀 다음-작업복을 갈아 입거나 하지 않고-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한 일은, 박스로 포장된 숙주나물을 공장 바깥에 쌓았다가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이었고, 이 일이 끝자자 공장 안으로 들어가 각자 주어진 일을 했는데, 나는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거의 대부분 숙주나물을 큰 통에 싣는 작업을 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숙주나물 공장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면, 공장 내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한 곳은 숙주나물이 자라는 공간이다. 가운데 작업 공간의 양쪽이 모두 숙주나물이 자라는 창고 같은 공간인데, 왼쪽에 두 곳, 오른쪽에 한 곳이 있고, 한 곳의 넓이는 약 50평 정도 되어 보였다. 설날 전에는 모든 공간에서 숙주가 자란다고 하는데, 추석 때는 두 곳에서만 숙주가 자라고 있었고, 예전보다 물량이 줄었다고 한다. 숙주는 녹두로 만든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녹두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원산지 표기가 되어 있다. 녹두를 먼저 살균 소독한 다음 배양하는데, 바닥에 놓인 녹두가 콩나물처럼 자라기 시작하면, 계속 위로 솟아올라 수 십 층의 두께로 쌓인다고 한다. 숙주가 자라는 공간은 어둡고, 사람 머리 위의 높이에서 자동으로 물을 뿌리는 장치가 되어 있어, 계속 물을 뿌려주기 때문에 숙주는 밤낮으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자란 숙주나물을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밖으로 가져오면, 스테인레스로 만든 수조에 넣는다. 숙주나물을 가공하는 기계 설비는 매우 간단하게 되어 있다. 이 공장에서는 ㄱ자 모양으로 꺾인 기계 설비였는데, 이와 비슷한 콩나물 공장에 가보니, 더 간단한 일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숙주나물을 물 속에 담가 녹두 껍질을 제거하는데, 이때 계속 많은 물이 수조로 들어간다. 즉 지하수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수조에서 숙주를 풀어헤치면 녹두 껍질이 먼저 가라앉고, 풀어진 녹두는 두 개의 철망을 지나면서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물기를 털어내는 바이브레이터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일정한 중량이 되면 비닐 봉투에 담기는데, 나는 바로 이곳, 비닐 봉투에 담기는 곳 옆에 서서 숙주 나물이 담긴 비닐 봉투를 다시 옆의 큰 통에 담아 놓는 일을 했다. 중량대로 담긴 숙주나물 비닐 봉투는 박스 포장을 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박스에 담긴 다음 곧바로 납품을 하게 된다. 숙주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은 상품을 '찍어 내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숙주 나물이 농산물(1차 상품)이긴 하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순간, 더 이상 '1차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이 아닌, 대량 생산되는 '2차 상품'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숙주 나물을 생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곳은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곳이다. 이곳은 매일 아침마다 하루의 물량표가 붙어 있고, 그 물량에 따라 일정한 용량-1, 2, 3.5, 4, 5, 6, 8, 10kg-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이다. 용량이 작은 것은 약 3초마다 하나씩 상품이 나오고, 용량이 커도 15초면 하나의 상품이 나온다. 즉,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숙주 나물이 봉투에 담겨 나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루 약 9시간 정도 꾸준히 나온다. 모든 과정은 지극히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어서 머리를 쓸 이유도, 필요도 없다. 1kg짜리 숙주 나물 100개, 3.5kg짜리 숙주 나물 50개, 10kg짜리 숙주 나물 80개... 무게는 자주 바뀌고, 그것을 세팅하고 숙주 나물을 비닐 봉투에 담는 작업을 체구가 작은 베트남 여성 노동자가 맡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산된 다양한 비닐봉투를 커다란 통에 담는 일을 했는데, 나오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통에 담는 것도 몸을 빠르게 놀려야 했다. 통이 가득 차면 박스에 담는 곳에서 통을 가져간다. 비닐 봉투를 박스에 담는 작업은 베트남 남성 노동자가 맡아서 했는데, 박스를 접는 손이 매우 빨랐다. 박스 작업은 밴딩 기계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박스를 접고 비닐 봉투를 넣은 다음 곧바로 밴딩 기계에서 밴딩을 한 다음 수동 컨베어벨트 위로 밀어 놓으면 박스를 쌓는 사람들이 출입구 쪽에 박스를 쌓아두게 된다. 박스 작업은 속도가 매우 빨라서, 봉투에 넣는 작업이 박스 작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작업 과정에서 조금씩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개입해 이러저러한 일들을 끊임없이 한다. 공장 청소도 매우 중요한데, 식품을 다루는 공장이라서 깨끗하긴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숙주 나물의 잔해와 박스, 포장끈 등 지저분한 것들이 생긴다. 작업하는 중간 중간, 이런 쓰레기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공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힘들다기 보다는 무엇보다 단순 반복의 지루함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집에 있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서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였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니, 한 시간, 아니 십 분이 지나가는 것도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공장에서는 일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냈다. 아침 9시가 넘어서야 일을 시작하고, 11시 조금 지나면 간식 시간을 주었다. 빵, 토스트, 음료수, 과일 등이 매일 조금씩 바뀌면서 나왔고, 간식과 매 끼니 식사는 사장의 부인이 직접 만들어 주었다. 간식을 먹고 나서 점심은 오후 2시에 먹었다. 일의 성격을 보면, 이런 방식의 시간 배치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너무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서 노동자들이 몹시 지루하게 시간을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3 이주 노동자.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모두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모두 네 명. 한국 노동자는 한 명. 현장에서 고정으로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섯 명이고, 그외 시간에 관계 없이 나타나서 일하는 사람이 두어 명 있었고, 상품(박스)을 물류 회사로 실어가는 트럭 기사가 있다. 즉, 생산을 맡은 노동자는 베트남에서 온 젊은 노동자들이 전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들은 이곳 공장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이 있다고 하는데, 명절처럼 바쁜 날이 아니면 통상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 또는 6시까지 노동한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간간이 들어보면, 이들은 회사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으로 약 12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를 받는 듯 하다. 베트남 노동자의 신분은 '산업연수생'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고, 정부에서 정해 준 월급의 기준이 있는 듯 하다. 월급 120만원이라면, 한국에서 최저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급급하겠지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비용을 감안하면, 이들이 받는 임금 수준이 터무니 없이 낮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절대 임금 기준으로 보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보다는 낮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는 것은 분명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이주 노동자나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려는 영세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가)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 뛰어 드는 노동자들이 3D 직장을 싫어한다는 언론의 보도나 방송이 자주 나오는데,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것은 정작 자본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노동자라 하더라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 임금 120만원이면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생각인데,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저임금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한국 노동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최저임금이 150만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하루 세 끼의 식사와 잠자리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면, 그 노동시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자본'은 국적이 없다. 따라서 '민족'이나 '인종'과 같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노동자'는 '인종'과 '언어'에 의해 그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멕시코 노동자가 미국으로 이동하고,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한국과 일본 등으로 이주하는 것이 그렇다. 이주 노동자의 활용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효과가 있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서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는 불안한 상황이 조성된다. 4 영세 자본가. 자본가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국적'과 '인종'에 관계 없이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면, 자본가는 자본가들끼리 이윤을 놓고 경쟁한다. 특히 소규모 영세 자본가의 경우, 그들은 안팎으로 압박에 시달린다.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모든 기반 시설을 마련해야 하며, 임금, 복지, 사고 등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밖으로는 같은 영세 자본가와 경쟁해 시장을 확보, 확대,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고, 최대의 이윤을 위한 적정한 상품 가격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숙주 나물 공장의 예를 들면, 공장을 마련하고, 생산 설비를 갖추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즉 누구나 '영세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영세 자본가에게 '안정'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가 크던 작던, 자본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한다. 자본주의가 '이윤'을 토대로, '경쟁'을 매개로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며, '자본가'에게도 적용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경쟁에서 살아남은 1%의 자본가는 이런 시스템이 마음에 들 것이고, 만족스러울 것이다. 결국 우리는 1%의 '자본가'들을 위해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차 농산물인 숙주 나물을 한 명의 자본가가 생산하는 것이 몹시 낯설고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농산물이라면 오히려 시골의 마을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생산하는 것이 훨씬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텐데, 자본의 힘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생산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영세 자본가'가 더 자주, 더 많이 출현하는 것은 '자본'이 주는 매력이 위험(리스크)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이 공장의 사장도, 자신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얻는 이익이 위험보다 크기 때문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장을 운영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정부의 정책, 시장의 변동, 거래처의 상황 등-에 의해 영세 자본가는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창업을 하는 영세 자본가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험을 극복하고 얻는 열매가 더 크고 달콤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5 공장에서 사흘 노동을 하고 나서, 근육통과 두통으로 조금 고생했다. 덕분에 몸무게도 조금 빠졌고,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많이 사용해서 저절로 운동을 했다. 하루 9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고, 단순 반복 작업으로 지루함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가장 끔찍하다. 사람은 기계의 부품이 아니다.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하루 16시간 노동부터 아동노동-심지어 4살짜리까지-과 위험한 노동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이 인간의 존재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단순 반복의 지루한 노동일수록 노동 시간을 짧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하는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하며, 인간의 삶에 기여해야 하며, 인간의 존재를 빛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노동'의 의미이자 가치인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나는 줄곧 주4일 노동과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능하다. 주5일 노동이 현실인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금은 자본의 위세에 눌려 노동자가 위축되어 있는 상황임에 틀림 없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주4일 노동,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해야 한다. '노동'의 주체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노동 시간을 일했지만, 한국 사람인 나는, 베트남 노동자보다 약 2배의 임금을 받았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편도선이 붓다
    편도선이 붓다 편도선이 부었다. 꽤 오랜만이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과 왼쪽 뒷머리에 전달되는 통증이 심각하다. 이 느낌은 오래 전에 자주 겪었던 바로 그 '편도선염'에서 오는 통증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30년도 훨씬 더 전에, 나는 자주 편도선이 부어 고통스러웠다. 침도 삼키지 못하고, 열까지 높아져 밤새 끙끙 앓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고, 메스로 부어 있는 편도를 찢고 피고름을 빼냈다. 편도선이 붓는 이유는,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편도선은 우리 몸의 건강을 점검하고,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따라서 편도선이 붓기 시작하면 그만큼 몸이 무리를 했으니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려서 그런 상식을 알 리 없었던 나는, 아니,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런 '몸의 경고'를 들을 만큼의 여유조차 없었기에 날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과 왕복 6시간의 출퇴근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새벽 첫 차를 타기 위해 일어나면, 베갯잇이 코피로 물들어 있었고, 세수를 할 때마다 세수대야는 붉은 핏물이 들었다. 그리고 편도선이 붓기 시작했다. 삶이 고통스럽다던가, 힘들다던가 하는 느낌 조차도 갖지 못할 만큼 어리석기도 했고,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때여서, 편도선이 부을 때마다 죽을 만큼 힘든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개돼지처럼 묵묵히 살아갔다. 우습게도, 죽을 만큼 힘들 때는 오히려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거다. 그때 의사는, 스무 살이 넘으면 편도선이 붓는 일은 거의 없을 거다,라고 말했다. 아직 어려서 면역력이 약했던 때, 힘겨운 육체노동을 했기 때문에 편도선이 자주 부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무 살이 넘으면서 편도선이 붓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그때는 이미 힘에 겨운 육체노동에서도 벗어난 상태였다. 침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에서 오전에 병원에 가야하나, 더 참아볼까 고민하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 의사는 먼저 부어 있는 편도선에 마취액을 뿌렸다. 몇 분을 기다려 의자에 앉자, 고름을 긁어낸다며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내라고 했다. 의료기구가 입에 들어오자 욕지기가 났다. 본능적인 몸의 반응이다. 욕지기와 함께 눈물이 나왔다. 몇 번의 욕지기를 한 끝에 처치는 끝났다. 생각보다 쉽고 짧게 끝난 것이 신기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것일까.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 시간도 짧았다. 메스로 편도선을 찢을 때의 그 통증과 뱉어낸 피고름의 끔찍한 형상을 기억했던 내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주사를 맞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아 와 약을 먹었다. 하루가 지나자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침을 삼키는 것도 부드러웠다. 현대의학의 혜택을 톡톡히 본 것이다. 이틑날 병원에 한 번 더 간 것은, 거의 의례적이었다. 이미 외과적 처치만으로도 상황은 끝난 것이고, 만일을 위해 소염 주사를 더 맞고, 약을 하루치 더 처방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편도선의 통증은 사라졌지만, 약을 먹고 나자 위가 쓰리고 아팠다. 약이 너무 독했나 보다. 간헐적으로 위를 훓고 지나가는 통증 때문에 새벽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목의 통증보다는 덜 하고, 참을 수는 있었지만,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간헐적인 통증도 꽤 고통을 주었다. 부모님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 받아, 살면서 큰 병치레를 하지 않은 것을 늘 부모님께 감사한다. 가난하게 자라는 아이가 병치레까지 한다면 얼마나 살기 고역이었을까.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편도선이 붓는 것 말고는 병원에 가 본 일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특별히 아픈 곳이 없으니 마음으로 늘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다. 다만, 한동안 편두통에 심하게 시달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이번에 편도선이 부은 것이 큰 사건이었다. 편두통이 심할 때는, 러시아 혁명 이후 많은 혁명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혁명이 성공한 이후에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정치적 탄압이 아닌 다음에는 거의 지병 때문이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편두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말한다면, 어리석다고 말하겠지만, 그만큼 인간은 질병 앞에 무기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편두통이든, 어떤 질병이든 견디기 힘든 선까지 치달으면 인간은 생존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존엄성을 지킬 수 있기도 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불행한 삶이다. 가난해도 건강한 사람은, 희망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하면서 어리석게 살아갈 것인가, 병약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겠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존재의 기본은 '건강하게 생존'하는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일본의 군국주의화
    일본의 군국주의화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래 쓴 내용은 사실에 기초했음을 밝힙니다. 일본의 급격한 군국주의 배경과 결과현재 상황-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후 일본 전역에 방사능 누출-아베 정권, '천황제' 부활을 공식적으로 선포(주권부활의 날)-중국과의 영토 분쟁 조장(센카쿠, 다오위다오) -한국과의 독도 분쟁 조장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 조장-도쿄지사, 이슬람 비하 발언일본의 아베 정권이 극우정권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국수주의적이라는 것 역시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일본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극우, 군국화는 극우세력의 의지에 앞서, 일본이 처한 상황이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겠다. 물론 일본 정치가 극우와, 군국화 하는 것은 당연히 일본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빠르게 만들고 있는 외부 환경이 바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에 대해 함구와 비공개로 사실을 숨기고 있으나, 상황의 심각함은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거짓말을 한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일본 동북부 전체는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이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수산물은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오염덩어리가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남아 있는 여러 기의 발전소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앞으로 발생할 지진에 의해 붕괴될 경우, 일본 동북부 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 전체가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초토화 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사실과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 거짓말은 할 수 있지만, 방사능 피해로 인한 참담한 미래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짧게는 몇 년, 적어도 20-30년 내에 일본에서는 무수한 기형생물, 기형인간들이 태어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일본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일본 정부는, 일본이 스스로 붕괴하기 전에 전쟁이라도 벌려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원하고 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국내의 심각한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는, 전쟁만이 해결책이자 탈출구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무력을 증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웃 나라들과의 분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무력이 준비되는대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남한)을 침략할 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일본이 침략했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다시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일본이 자기 혼자만의 의지로 전쟁을 일으키기는 어렵겠지만, 일본은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알면서도 초기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목적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전쟁에서 지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 초기의 무차별적인 파괴와 학살로 세계의 분노를 유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의 침략 전쟁이 시작되면 유엔은 다국적군을 구성해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저지하고, 일본 본토를 점령해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를 장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원하는 시나리오이다. 유엔에 의해 장악된 일본 사회는, 자신들의 비용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방사능 오염 지역을 처리하게 될 것이고, 일본 국민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게 만들 것이다. 일본 열도는 거의 비어 있게 되고, 인구 2억의 일본은 적게는 2-3천만 명에서 많아야 5천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게 되는 작은 나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일본 인구는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고, 각 나라마다 '일본촌'이 생기며, 그들은 초기에 3D 업종에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나중에는 일본인 특유의 근면성과 아이디어로 그 나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본의 입지가 강화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유엔은 일본 열도 전체를 '관리, 감독'하게 되고, 시간이 많이 지나 방사능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지역부터 외국에 살던 일본인들의 재정착을 유도할 것이다. 문제는, 일본과 붙어 있는 한국의 경우, 일본에서 날아오는 방사능 피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가장 단적으로 '갑상선암'의 발생이 꾸준히 증가하게 되지만, 이것이 일본에서 날아온 방사능 때문인가를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를 지속적으로 입으면서도 항의를 하거나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남한은 초토화되고, 남한의 경제, 사회 상태는 20-30년 정도 후퇴한다. 북한의 변수는, 남한이 일본에게 침략을 당했을 때, 남한을 도와 일본을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초토화된 남한을 얕보고 다시 남한을 공격해 '북조선식 통일'을 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북한은 생존하거나 소멸하게 될 운명에 놓인다. 일본의 처지를 표현하는 가장 적당한 문장이 바로 '불감청고소원'이다. 강렬하게 원하고는 있으나 차마 말은 하지 못하는 상태, 일본이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국가의 재난을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고 있으나, 자기들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고,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방사능에 찌들어 기형인간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은 전쟁을 불사할 것이고, 수 천만 명이 죽어도, 그들의 목적은 일본 열도를 벗어나는 것이니,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 진화론과 창조설
    진화론과 창조설 자주 가는 어떤 게시판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에 관한 개신교도의 글을 읽었다. 창조론은 '론'이 아니다. 믿음이고 신앙이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믿는 믿음이지 과학적인 논쟁거리가 아니다. 한마디로 창조신앙이다. 그러므로 창조론이라 말하는 창조신앙과 과학의 귀납적 사고의 진화론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과학적으로 진화론이 완벽하게 증명이 된다고 해도 창조론(창조신앙)은 변하지 않는다. '창조론'을 '창조설'로 수정한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이 과학적 근거에 바탕한 '논리'라면, 기독교의 '창조설'은 말 그대로, 어떤 근거도 없이, 오로지 '설'로만 주장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즉, '창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제시할 수 없는 '자기모순'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진화론'에서도 무수한 오류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당연하다. 과학이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완벽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순간은 이전에도 없었고, 인류가 멸종하는 순간까지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인류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가장 올바른 이해의 과정이며, 적어도 현생 인류의 수준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 '지적 활동'이다. 반면, '창조설'은 어떤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있는 그대로 믿으라는 말은, 현재 한국(남북한)의 조상이 곰이었음을 그대로 인정하라는 말이다. 너는 인정할 수 있나? 우리 조상이 곰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한국인으로 기독교인 자들은 자신의 조상이 '곰'이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나? '단군 설화'는 역사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대목이다. 이걸 두고 기독교도들은 '우상숭배'라고 한다. 대단한 자가당착이고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당연히 '단군'도 창조했을 것 아닌가?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는 또 다른 '우상숭배'가 아닌가? 세계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토템과 설화와 절대자의 존재는 그럼 어떻게 설명할 건가? 소위 '창조과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창조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이론과 논리를 체계화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창조과학'에서는 지구의 탄생과 인류의 출현을 지금부터 약 6천년 전이라고 주장한다. 역사를 조금만 배운 사람이라면, 이집트의 역사, 중국의 역사만 해도 이미 6천년은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을 아니라고 박박 우긴다면, 대체 누가 잘못된 건가? 현대의 과학자들은 전부 바보 멍청이거나, 기독교도들이 믿는 신을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진화론'을 선택하게 된 건가? 오로지 '기독교'를 반대하기 위해서? 진화론이 탄생한 것도 바로 '기독교 국가'에서였고, '진화론'을 가장 많이 연구하고, 진화론과 관련한 과학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도 바로 '기독교 국가'였다. 그렇다면, 진화론을 배출한 바로 그 '기독교 국가'에 가장 큰 문제와 모순이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가? 과학적으로 진화론이 완벽하게 증명된다고 해도 '창조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상식과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생 인류의 출현은 약 4백만년 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창조과학'에서는 지구의 탄생이 불과 6천년 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6천년 전에 하루에 하나씩, 일주일만에(정확히는 6일만에) 빛과 태양과 지구와 인간과 모든 생물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인데, '창조설'을 믿는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어떻게 두 가지의 완벽하게 다른 이론을 정신적인 혼란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옛날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고 믿었다가, 이제는 우리 은하계도 우주의 변방일 뿐이라는 사실까지 확인되었음에도, 여전히 '창조설'을 믿는 고학력자들의 머리 속에는 대체 어떤 생각이 들어 있을까? 또한, 자신들이 믿는 '창조설'은 그야말로 특정한 종교의 특정한 '주장'일 뿐이다. 헌데 그런 일방적인 주장을 공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자신들이 스스로 '론'이 아니라 '설'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현대 과학이 밝힌 '진화론'과 동등한 대접을 해달라는 것은 무모하고 무례한 요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의 기독교도들 가운데 95% 정도는 '진화론'이 무엇인지? '창조설'이 무엇인지조차 알 지 못하는, 올바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종교이든 그 종교를 자신의 '기복'을 위한 활동으로 이해할 뿐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그럼에도, '창조설'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창조설'로 현대과학에 도전하는 행위는, 그들의 세속적 권력이 '합리성'과 '과학성'을 무시할 만큼 커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돈과 권력을 장악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대중의 '의식'까지 지배하려는 의도야말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자들의 음모인 것이다.
    • 칼럼
    • 백건우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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